감정의 근육과 지성의 근육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

by 장영철 Francis

어찌하다 보니 가지고 있는 오래된 만년필이 3자루나 된다. 프랑스제 파커, 독일제 슈퍼 로택스, 이탈리아제 다킨스다. 파커는 너무 낡아 뚜껑이 헐거워져 쓰기가 불편하지만, 슈퍼 로택스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난 그 당시엔 유명했던 독일제 만년필이라 아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지금 소장하고 있는 이 펜은 몇 해 전에, 어릴 적 그 추억을 상기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구매한 만년필이다- 로즈 우드로 만든 다킨스는 예쁜 딸이 내 이름을 각인해 선물한 거라, 아주 중요한 순간에만 잉크를 담는다.


붓도 여러 자루 있다. 오래전에 붓글씨를 배울 때 갖췄던 붓부터 몇 해 전부터 쓰기 시작한 캘리그래피 전용 붓까지, 한 10여 개가 될 듯하다. 연필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습관 때문에 연필은 여러 타스나 된다. 나는 연필심을 칼로 날카롭게 갈지 않고 남들과 좀 다르게 연필의 나무만 커팅한다. 말 그대로 무딘 연필이다. 그 건 내 연필꽂이나 책상, 가방에 심지어 차에도 뒹굴고 있다.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칠 때나 책을 읽을 때도 연필은 메모나 밑줄을 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이런 각기 다른 필기구인 만년필에 잉크를 넣고, 붓에 먹물을 찍고, 연필을 깎은 후 종이에 첫 글씨를 쓰던 중, 언제부턴가 내가 특정한 문구를 자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의 근육 & 지성의 근육...이라는. 이 나이가 돼보니 육체의 근육을 키운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나마 남아 있는 근육이라도 잃지 않고 챙기기만 해도 감사할 일인데 그래서 ‘감정과 지성의 근육’을 키우고 싶은 무의식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새 봄맞이 구례 산수유 출사를 간다는 동우회 연락을 받고 참석하기로 맘먹었다가 당일 새벽에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고 비몽사몽 늦잠을 자던 나는, 문득 왜 이렇게 피곤하고 바쁠까? 되짚어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과 지성의 근육을 위해 나는, [화-성경공부, 수목-대구에서 수업, 주말-클래식, 미술과 철학 강의 그리고 기타 연주] 등으로 일주일의 오후 시간들을 쪼개어 쓰면서 보내고 있다. 그나마 주일과 월요일 저녁이 좀 한가한(?) 편이다. 그러나 그때도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일을 (일주일에 2편 정도의 글을 쓰자!) 위해 노력하지만 요즘은 참, 여의치 않다. 최근에 글을 쓴 것도 거의 한 달 전일이었다. 그래도 3월 들어 선물 받거나 구매한 책 10여 권을 침대 머리맡에, 거실 테이블에, 이제는 내 두 번째 서재가 되어버린 아들 방 책상에 흩트려 놓고 시간 나는 대로 읽어내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2시간의 성경공부, 4시간의 철학과 사해 문헌과 2시간의 문학 수업 그리고 각각 2시간짜리 쇼팽이나 인상주의 드뷔시의 전주곡을 들으며 프렐루드와 오버추어를 이해하는 시간이, 인상파로 이어지면서 쿠르베, 마네, 고갱, 세잔 등을 만나는 시간... 또 민 폐 아닌 집 폐지만 스트로크로 내려치는 내 기타 소리로 힘을 얻어 일주일을 살아 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만일 이런 것들을 돈 받는 조건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내가 좋아서 하기 때문에 자정 가까운 시각 귀가 길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단지 기분 상으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사실은 솔직히 말하면 몸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ㅠㅠㅠ-


경기도 화문석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꽃 花자에 무늬 紋를 쓰는 花紋席과 꽃무늬가 없는 無紋席. 강화도에 가면 살 수 있는 화문석과 무문석 중 비싼 것은 당연히 수공이 더 들어가는 화문석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한다. 화문석을 만드는 장인은 무늬를 넣는 재미에 즐겁게 작품에 임하지만, 무문석은 지루한 노동이라서 기피한단다. 그래서 상인은 무문석을 화문석보다 더 비싸게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 화문석 만드는 장인의 심정으로 몸은 고달프지만 흥미를 가지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즐기고 있던 중, 우연히 읽던 책에서 내 시선을 한참 머물게 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You won't be able to change anything in your life if you keep only what you want in your head.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신의 머릿속에만 간직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하고 볼 일이다. ‘즉. 실천.’


돌이켜 보니 이 나이 전까지의 삶은 의식주를 위한 리빙적인 단순한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진선미를 찾는 라이프 적인 삶을 살고 싶다, 아니 살 거다.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들어섰다. 새로운 출발이다. 나는 내 삶을 이런 동사형으로 만들 거다. <걷다... 읽다... 쓰다>라고. 그럼으로써 내 감정의 근육과 지성의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나 내일 만년필이나 붓 혹은 연필을 손에 들게 되면... 감정의 근육, 지성의 근육 밑에 이렇게 첨문(添文)할 거다. 꼭! “생각하는 자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어쩌면 올 연말에 나는 하늘을 붕붕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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