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 호반 길 호반광장에는 빨간색 우체통이 2개가 있다. 일명 <느린 우체통>이다. 무료 엽서에 사연을 담아 왼쪽 통에 넣으면 6월 말에, 오른쪽 통에 넣으면 12월 말에,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로 발송된다. 마침 한 커플이 각기 무슨 사연인가를 적어, 6월과 12월 우체통에 한 장씩 넣는다.
무슨 사연을 적었을까. 그 우체통에 엽서를 담는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의 이 행복한 흔적의 기억들을 그렸을 거다. 그 짧고 긴(?) 시간이 지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보낸 그 엽서를 받아 보았을 때, 이 행복(현재)이 그때의 그 행복(과거)이기를 소망하면서.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을 원하고, 믿고, 확신하는 마음에서 보냈다면, 꼭 그렇게 되길 소망해 본다. 비록 나는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몇 개월 후 받게 된 엽서로부터 애잔한 사랑, 아픈 추억이나, 마지막 이별의 상흔을 도지게 하는, 가슴 저밀게 하는 비수일 수도 있다. 그때 그 우체통이 빨간 이유는 한 없이 흘린 슬픈 눈물에, 온몸이 붉게 물든 것이라 여겨질 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서로 간에 호감이나 사랑 같은 감정이, 영원하기를 기대해 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삶에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 더 흔하고 흔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날 문득 다가 온 행복이 우리에게 오래 머물 것이라 생각했지만 도리어 그것은 -되돌아보니- 더 큰 슬픔이 되어 한참 동안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아픔의 기억들.
건너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경계에 서있는 이에겐,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의자를 비워둘 때의 그 쓸쓸함 가진 이에겐, 우체통은 그리움으로 문신이 새겨진 붉은 심장일 것이다. 숨 쉴 때마다 신음을 동반하는.
우체통을 뒤로하고 돌아오면서 수상공연장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해는 지고 있고, 길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수년 전 통영의 청마문학관 앞 긴 계단 길을 오르던 기억을 더듬는다. 청마 유치환에게 우체통과 파도와 깃발은 간절한 그리움이었고 허무였으며 외로움이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니 내 삶에서 청마의 시는, 역설적이게도 어두운 밤에 영롱한 별빛이었다.
지극히 허전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희멀거니 퇴색한 헌 손수건 같은 구름 조각을 볼 때,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오늘 이 시간까지 진실로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왔으며, 살고 있는지, 또한 살 건인지. 나는 세상의 울타리 안과 밖,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산다는 것은 지금처럼 저물어 가는 것이다. 더 저물어 어두워지기 전에 나도 작은 엽서에 짧지 않은 글로 마무리해야겠다. 꿈같은 인연도 있지만 상처 입은 인연도 있기 마련인 삶에서, 설령 그것이 마지막이 될 지라도.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바람이 불고 눈 내리고... 비 오고 또 바람이 불지만 부재는 그 흔한 꽃 한 송이도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산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고 쓸 것이다.
그러나 그 엽서는 발송도 수신도 반송도 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그 느린 빨간 우체통에서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다시 한번 호반광장 길을 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늘은 그 우체통 가까이 가기엔 발목이 너무 저리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