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다
지난 주말 토요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와 동해안 북쪽으로 길을 더듬었다. 물론 출사가 핑계다. 오랜만에 바다 일출을 찍었고 오메가도 보았다. (일출의 형태가 오메가 글자처럼 되는 현상을 말함) 그러다 영덕을 지나 울진을 향하다 말고 후포 항에서 차를 돌렸다. 멀리 올라가 봤자 1박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아서다.
내려오는 길 영덕 가까이에 있는 청소년 해양수련원 바닷가 바위에 낀 녹색 이끼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파도가 좀 세게 치면 nd 필터(파도 혹은 물결이 거품처럼 찍힘)를 끼고 찍고 싶었지만 파도가 거의 없었기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경주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이 책 저책을 뒤적이다가 다음날인 주일 새벽에 다시 동해를 타고 올랐다. 전날 만난 이끼가 눈에 계속 아른거려서다. 전날 새벽 6시경에 해가 떴던 것을 체크하고 있었기에, 해 뜨는 모습도 또 덤으로 눈에 담아 둘 요량이었다.
새벽 5시 30분경, 영덕 인근 강구 항에 여러 척의 배가 들어와 장사진을 이룬 것을 무심코 보고 지나쳤다. 그러다 말고 급히 차를 되돌렸다. (맞다. 오늘은 저들의 삶의 현장을 스케치하자) 아직 날은 어두웠지만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의 서치 라이터가 훤한 대낮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항에 들어온 배에서 전일 잡은 이런저런 물고기들을 박스별로 분류해 내려놓으면, 경매인이라는 모자를 쓴 사내가 특유의 목소리로 경매를 시작했다. 그 앞에는 각각의 번호가 새겨진 모자를 쓴 중매인들이 손가락으로 가격 흥정을 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실제로 보니 흥미로웠다.
계속 들어오는 배들의 하역과 경매가 방해받지 않도록 망원렌즈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역시 여기서도 힘든 일은 동남아인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근로자들 몫이었다. 고단한 배들마다 적지 않은 생선들을 쏟아냈다. 만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이 어둡지는 않아 보였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들. 행색이 초라한 한 사내가, 자기 허벅지만 한 물고기를 하선 작업을 하던 뱃사람으로부터 한 마리 얻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히죽거리는 게 보였다. 얻은 게 분명하다 카메라로 이런저런 것들을 찍고 있었기에 분명 내가 봤다. 돈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선한 손길이었다.
아귀인지 뭔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서너 마리의 물고기가 배 옆 한 모퉁이에 누군가에 의해 놓여 있었고 잠시 후 서너 명의 아낙들이 그런 자리가 익숙한 듯 다가와한 마리씩 챙겼다. 절대 두 마리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없었다. 선한 배려에 대한 무언의 약속인 듯했다.
도시 사람으로 보이는 가족들이 차를 몰고 와 경매받은 중간 상인들에게 오징어를 흥정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행동거지와 말투로 봐서 처음인 것 같지 않아 보이지 않는 그들은, 막 경매에서 낙찰받아 살아서 물을 내뿜는 오징어를 한 마리에 오천 원씩에 흥정했다. 나무박스에 일정한 마리씩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중간 도매상에게 그런 거래는 귀찮은 일로 보였다. 하지만 어린아이까지 동반한 그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응했고, 네 마리를 사니 한 마리 덤으로 챙겨 주는 선한 맘이 정겹기만 했다. 사실 그런 자리에서는 소매가 거의 성사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며칠 전 김치 부침개를 해 먹을 생각에 마트에서 중간 정도 크기의 오징어 한 마리를 9천 원에 떨리는(?) 손으로 구매한 적이 있기에, 그날 내가 본 착한 가격과 한 마리 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 해가 완전히 밝고 항으로 들어오는 배가 없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도 이끼를 찾아, 위 바다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한 시간 넘게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멸치 한 마리 얻지도 못했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조우한 작지 않은 감동에,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났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은,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한 장도 찍을 수 없었다.’라는 모순에 사로 잡혔다는 것이다. 수십 컷의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담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혹은 봤던 것 중에서 <선한 모습>은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능력의 한계와 무능함에 대해 먹먹함에 느끼다가, 문득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 랩 되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감독: 벤 스틸러)라는 영화 중 험한 오지에서 몇 날 며칠 눈 표범을 기다리던 사진작가 숀 (숀 펜 扮)은, 막상 눈 표범을 대하지만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그 옆에서 이유를 묻는 월터(벤 스틸러 扮)에게 그가 속삭인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을 뿐이야.”
나는 영화 속의 숀같이 안 찍은 것이 아니라 못 찍은 경우니, 같은 경우라 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나는 그날 그 장면들을 내 머릿속 기억이라는 암실에, 아날로그 필름처럼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자위하고 합리화하며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자, 날씨는 가을을 향해 힘차게 내 달리고 있었다.
<은빛 물고기가 허공을 갈랐다. 촬영을 멈추고 다가가 손으로 만지고 싶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