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무창포 바닷가에서

by 장영철 Francis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남편, 아버지- 가출해 주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다.”


박범신의 소설 <소금>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지인이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 깊은 산골에 들어 가 혼자 독야청청하면 살 생각이 있는가?


그 질문에 나는 한 순간도 주저함 없이 <없다>라고 답했다.


우선 독야청청 -이런 건 학식 높은 선비나 하는 거다-이라는 단어는 나와 맞지 않을뿐더러, 아직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지인은 내가 요즘 턱수염을 깎지 않고 다니는 걸 보고, 무슨 Tv 프로그램의 제목인 <자연인>을 연상하는 듯 했다.


지난 주말엔 충남 보령에 있는 무창포 바닷가에서 카메라를 손에 들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밀물 땐 섬이었다가, 썰물 땐 인공다리로 인해 육지(?)가 되어 버리는 일명 <닭 벼슬 섬>을 마주하고 앉아서.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읽는다.


달아난 바닷물이 남기고 간 속살들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가득하다. 그래도 계속되는 파도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게와 조개들이 소곤소곤대는 소리...


(아... 여기서 이렇게 멈추고 싶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고 있다)


시간은 결코 느리거나 빠른 것이 아니지만 그 때 그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다고 흐르는 시간이 멈출 리 만무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 시간 안에 나는 머물고 싶었다.


몇 컷 사진을 찍던 카메라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이런 건 사진으로 남기면 안 된다. 내 가슴 속에 남겨 둬야 한다라는 생각에. 오롯이 그것들이 있는 그대로 내게 체화(體化) 되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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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란 장소가 아니다. 시간도 아니다. 천국이란 바로 완전한 경지를 뜻한다>




그 바닷가에서 이대로 며칠만이라도 '돌'이 되어 볼까? 라고도 생각했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정말로 내게, 중요한 것은 여기 무창포 바닷가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깐"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우리앨런 감독/ 오웬 윌슨 주연>에 나오는 대사다.


2000년대에 살고 있는 영화 속 주인공 '길'은, 내내 진정한 황금시대는 비오는 파리의 거리에, 예술가들과 작가가 있는 1920년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1920년대의 사람들은 1890년대를 황금시대라 일컫는다. 그렇다면 1890년대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살고 있는 1890년대가 진정한 황금시대라고 생각할까? 아니었다. 1890년대의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가 진정한 황금시대라 생각했고,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생략-


나는 가출을 꿈꾸지 않는다.


깊은 산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무창포 앞바다에서 돌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를 살건, 그 어디엘 간들, 늘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아니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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