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abula rasa

<안동역에서>와 <고전음악>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며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by 장영철 Francis

얼마 전에 올린 글의 방문자 수가 미스터리하게도 수 백 명을 훌쩍 넘겼다. 그 글 이후에 몇몇 사람이 클래식에 대해 직, 간접적으로 물어왔다. 그러나 클래식에 관한 내 지식이 미천해 말해 줄 것이 없었다. 단지 좀 ‘쉽게 접근’하는 나만의 노하우? 그건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내 경험담을 풀어 본다.


몇 해 전 어느 술좌석에서 성당 후배가 <안동역에서>라는 노래를 맛깔나게 불러, 생전 처음으로 들은 적이 있다.

[...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 데 /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어렵지 않은 이 트로트(뽕짝) 곡과 가사에 꽂혀, 나는 그 노래의 앞뒤 모르는 부분은 생략하고, 이 소절만 가끔 흥얼거리곤 한다. ‘그리움’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 기타를 만지작거릴 땐, 전주곡에서 나오는 Dm6와 Am6 코드를 치면서 기차 기적소리를(?) 내며 신나게 즐긴다.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쇼팽의 작품 중에 <Etudes Op.10 No.12 in C minor 'Revolutionary'>라는 곡이 있다. 풀어쓰면 ‘에튀드(피아노 테크닉을 익히기 위한 연습곡) 12번, 작품 10, C 마이너, 혁명>’ 통칭 심플하게 <혁명>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풍 전등 하에 처하자, 먼 타국에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만든 곡이다. 격렬하다. 뒤로 갈수록 점차 감정을 고조시켜 나간다. 섬세하고 열정적인 빠른 곡이다. 그런데도 멜랑꼴리 하다. (나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이 이상의 감상평을 할 재주가 없다)


두 곡 모두 ‘그리움’을 노래하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동역에서>를 따라 부르면 상대적으로 수준이 좀 낮고, <혁명>에 관해 아는 척하면 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혹 우리 다운 것에 대해서는 낮춰 보고, 서양 것은 무조건 맹목적으로 내면화하려고 하는 사대주의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클래식을 또 다른 말로 ‘고전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클래식의 우리말 번역이 고전음악은 아니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 까지 (약 1백 년) 유럽에서 유행한 ‘문학, 미술, 음악’ 같은 예술 분야의 공통적인 경향과 특징을 보여주던 ‘고전주의’가 성행하던 때 유행하던 음악을 이르는 말이다. 대략 바흐에서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까지.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 ‘17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음악’을 고전음악, 혹 클래식이라고 부른다.


달리 말하면 고전음악은 고상한 것이라고 보다는, 한 때 유행했던 음악이다. 그런데 그게 그 어느 시대 음악보다 형식미와 내용에 있어 균형을 갖춘 조화로움으로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뿐이다. 만일 <안동역에서>가 이 조건에 충족된다면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트로트의 고전 곡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 음악은 대부분의 곡 제목도 그렇고 내용이 어렵다고 한다. 지루하다고 한다. 30여 년 전 나도 그걸 극복할 요량으로 <클래식 명곡 대사전>(이성삼/세광 음악출판사/835쪽) 구입해 본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 책을 몇 번 펼쳐 보았는지 세려 보니 열 번도 보지 않은 것 같다. 책은 내용이 광범위하고 어렵고 지루하고... 꼭 영어 사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 노력은 가상했다. 열심히 듣다 보면 언젠가는 뻥하고 득음(?)하겠지? 하면서.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음악과 멀어지고... 왜 그런 것일까? <안동역에서>는 한 번만 들어도 금방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데 고전음악은 결코 녹록지 않다. 돌이켜 보니 이유는 고전음악의 기본적인 ‘룰’을 등한 시 했기 때문이다. 마치 야구의 기본적인 룰을 모르면 야구경기가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이치와 같다. 비교적 룰이 심플한 축구 보듯이 <안동역에서>를 들을 수는 있지만, 축구 보듯이 고전음악을 듣기에는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다.


고전음악은 음악 외에 어떠한 사상도 표현하지 않는 절대 음악(교향곡, 소나타, 협주곡 등)과 표제음악(제목에서 뭔가를 암시)으로 구분한다. 쉽게 말하면 제목의 유무를 말하는 거다. 그러나 이건 절대적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곡이라도 어떤 사람은 절대 음악을 표제음악으로 듣기도 한다. 거기에 아리아, 카덴차, 레퀴엠, 푸가, 녹턴, 칸타타, 오라토리오, 수난곡 등... 작품을 들을 때마다 용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야구의 룰을 경기 볼 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참고 자료를 찾아보듯이.


우선 우리가 흔히 보는 광고의 배경음악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깔리는 곡들의 제목을 알아보자. -생각보다 우리 귀에 익은 곡이 많다- 그리고 그 작품의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 탄생 배경 등을 하나하나 재미 삼아 챙기면서 듣는 것이다.


전에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 이야기는 했으니 오늘은 음악의 어머니 차례다. 음악의 어머니는 여성이 아닌 ‘헨델’을 이르는 말이다. 그가 고전음악의 바탕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헨델은 바흐와 같은 독일에서 같은 해(1685년)에 태어났다. 바흐가 수학공식 대입하듯 음악을 만들었다면 헨델은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화려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바흐가 두 번 결혼해 스무 명의 자녀를 둔 반면 헨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바흐는 사후에도 오랫동안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헨델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이런 깨알 같은 지식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시 스타였던 헨델은 독일 최고위 귀족인 선제후의 현직 악장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연주 차 갔다가 영국으로 귀화해 선제후의 미움을 산다. 그래도 다시는 독일에 갈 생각이 없던 헨델은 여유만만했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영국의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독일의 그 선제후가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왕들은 서로 가까운 인척 사이였기에 이런 식으로 왕위가 계승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입장이 난처해진 헨델은 그 선제후 (조지 1세로 등극)가 어느 날 템스강에서 물놀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작곡한 그 유명한 관현악곡 <수상음악>을 연주한 것이었다. 영국의 새 왕 조지 1세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물론 그 일로 왕은 그동안 배신자(?) 헨델에게 쌓인 노여움을 풀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알고 이 곡을 들어 보면 입가에 미소가 그려질 것이다.


쇼팽의 <혁명>을 들을 때, 나는 총알 소리를 연상한다.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의 전투에서 튀는 총알... 어지러운 피아노 함성(?) 소리와 함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독일어)-환상, 꿈>를 듣노라면 중국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이 오버랩된다. 그 곡을 랑랑의 연주로 처음 접했던 기억 때문이다. 드뷔시가 인상주의의 시조임을 알고 그의 <아라베스크>를 들으면 그 곡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전적으로 내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트로트와 고전음악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나름의 개성과 가치를 어떻게 즐기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안동역에서>를 듣다 보면 내가 겪은 어떤 특정 사연이 떠올라 그 범주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때그때마다 상상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건 분명 확실하다. 여러 사연이 떠오른다.


이런 것들을 베이스로 하고 고전음악 cd 한 세트를 사서 듣는 것보다는, 일단 유튜브 등을 통해 듣기를 권한다. 반복해서 들어 보자. 그리고 어려운 곡도... 음악에서 현악기와 목관, 금관악기, 타악기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리듬에 몸을 맡기고 가락에 재미를 붙이고 화성의 아름다움과 빠르기에 관심을 가져 보자. 오늘부터 1주일 1곡씩 집중적으로 들어도 금년 말에는 30여 곡 가까이 고전음악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즐길 수 있다. cd 세트는 그때 구입해도 늦지 않는다.


그러면... 된다. 고전음악도 별거 없다. <안동역에서>처럼, 살다가 잠시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면 된다. 그건 포크, 발라드, 댄스, 락, 힙합도 마찬가지다. 무슨 종류의 음악이든. 고전음악을 가까이한다고 해서 고상한 삶을 사는 것이라, 속단할 일이 아니다.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음악은 침묵의 잔을 채우는 술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그 술이 양주면 어떻고 맥주, 소주, 막걸리... 뭐든... [한잔 또 한잔을 마셔도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다. * <별이여 사랑이여> 중에서


<cd를 세트로 구입하고 이런 책을 사서 영문법 공부하듯이 하면, 고전음악과 친해질 확률이 낮아진다. 시작은 일단 듣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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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전적 책은 클래식을 가까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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