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기원전
아주 오래전 (기원전 300년)부터 기록되었다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이니 사서오경(四書五經)이니 하는 것들이, 유교 교육 및 동양 교양의 핵심적인 책이라고 들어왔다. 그중 사서라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라는 것들과, 나는 평생 가까워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학부 때 <한문> 시간에 배웠던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소절인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술 단지 끌어당겨 자작하고/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만이 수십 년이 지난 요즘도, 간혹 홀로 술 상 앞에 앉아 되면 청승(?) 맞게 읊조리는 내 오래된 낡은 레퍼토리일 뿐이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논어’와 독대하고 ‘맹자’를 살폈다. 그렇게 공맹과 안면을 트고 호기심에 따로 ‘중용’을 구입해 읽고 있던 중, 이 봄에 <장자>를 만났다. 개인적으론 ‘대학’을 읽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그 ‘장자’를 찾은 생각이었다. 사서삼경 아니 사서오경에 들지도 못한 책을, 뭐가 그리 급하다고 찾아볼 생각을 했겠는가? 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장자가 여러 가지 것들을 대해 내게 화두를 던졌다.
장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세계를 외치는 공자와 맹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장자를 만나면서 들려다 본 ‘노자’의 <도덕경> 첫마디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다. 무슨 (독립) 선언문 첫마디 같은 이 글은 “우리가 이름을 붙이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그 본래의 순수한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도 이런 유사한 (내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임) 말을 한 이가 있다. “규정될 수 있는 신은 신이 아니다.” 철학으로 신을 구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도를 도라고 하는 순간... 신을 규정하는 순간... 그러지 말라는 말이 아닐까)
장자의 제자들이 썼다고 전해지는 ‘외편’ <추수>에도 이 도에 관련된 말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교조에 묶인 선비라는 사람들에게 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물 안에 개구리나 가을 들녘 메뚜기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다는 장자. 이런 장자에게 한 나라 재상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복수 강 낚시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장자의 시각에서 “공자는 교만한 사람이며, 탐욕적인 사람이고 표리 부동한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선 당연한 말일 수 있다. (이래서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도교’가 배척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제지간인 노자와 장자는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흥미를 끈다. [道可道...]라고 확정적으로 말한 노자와 달리 장자는 <소요유>에서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다. 그 크기가 몇 천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이 붕(鵬)이라고 한다.”
무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장자의 글은 허황하기 짝이 없는 가공과 전설 그리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다.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도와 함께 소요할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감성은 조석으로 들썩이며 이런저런 세상일에 엮기는 게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내게 장자 1편 소요유(消遙遊)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내가 무슨 수로 道를 알겠는가? 그냥 놀러 가는 거다(消), 그것도 멀리 가보는(遙) 거다. 거기서, 편히 다니면(遊)하면 족하지 않을까? 카메라를 들고 그래야 그나마 오래 살지 않을까?) - 莊子를 읽고 長者를 꿈꿔본다.
<나무 밑에서 개구리와 ‘369게임’ 중인 장자. 그는 기원전 369년에 태어났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