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름이 아니다
요즘 <唐詩 三白首>를 공부 중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 때 3백 여 개의 시 중 일부를 들려다 보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통일신라 이후 글 깨나 읽던 선비들은 이 시들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나도 그 시절에 태어났으면 그랬을 거라는 착각(?)으로 이리저리 뒤져 보고 있는 거다. 그러다 문득 <당시 삼백수>에 끼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어떤 면에서 낯익은 당나라 때 시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당나라 시절에 우리나라의 황진이 같은 설도(768-832)라는 기녀인 여류시인이 있었다. 그러나 수청 드는 그런 기녀는 아니었다고 한다. 두보가 세상을 떠난 해에 태어났다 전해지는 그녀가 쓴 시 <春望詞>(봄날의 소망)에 ‘동심초’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 동심초를 무슨 꽃 이름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김소월의 스승 김억(1896-?) 시인이 그 시의 3절을 번안하고 김성태(1910-2012)가 작곡한 가곡 <동심초>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면서 그냥 꽃 이름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꽃은 존재하지 않고 풀도 없다. 동심초는 보통명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래 시가 그 문제의 설도 시인의 시 <춘망사> 전문이다.
1절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欲問-묻고싶다/ 相思處-그리운 님 계신 곳
(꽃이 피어도 같이 즐길 이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묻고 싶어라 그리운 님 계신 곳/ 꽃 피고 꽃 지는 이 시절에)
2절
攬草結同心 將以遺知音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攬草-풀을 뜯다/ 將以-장차, 그로써/ 遺-보내다/ 春愁-그리움
(풀 뜯어 같은 마음 매듭을 지어/ 그대에게 보내려 마음먹다가/ 사무친 그리움 잦아들 때에/ 봄새가 다시 애타게 우네)
3절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佳期-만날 날/ 結同心人-그대와 한 마음으로 맺다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만날 날은 아득한데/ 그대와 한마음으로 맺지 못하고/ 헛되이 동심초만 맺고 있구나)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김억 시인 번안
4절
那堪花滿枝 翻作兩相思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堪-견디다/ 玉箸-눈물
(어찌하나, 가지가지 피어난 저 꽃/ 괴로워라, 서로서로 그리움 되어/ 아침 거울 속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봄바람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국 한시는 고체시와 근체시로 구분된다. 고체시(고시)는 음률이 자유로운 반면 근체시는 음률이 엄격해 율시라고도 불린다. 율시의 기본은 오언팔구(다섯 글자 여덟 구)다. 오언사구도 있는데 달리 오언절구라고도 표현한다. 즉 ‘다섯 글자로 네 구’를 의미한다. 상기 글이 총 4절(편의상 절로 나눠 놓은 거임)로 된 오언절구인데 3절에 나오는 空結同心草을 정확히 번역하면 윗 구절 <同心人이 사람과 한 마음으로 되는 것처럼, 同心草는 풀을 하나로 맺는다>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관광지에 가면 연인들이 그들의 영원한 사랑 결속을 위해 자물쇠를 걸어 둔 것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걸 동심초식으로 표현하면 ‘동심쇠’가 된다. 이 시구를 김억이 시인답게 이렇게 번안했다.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라고. 이래서 시인은 시인인가 보다.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 시를 조용히 읊조려 보자. 이럴 땐 소맥 한잔을 꼭 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시를 맨 정신으로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꽃이 피어도 같이 즐길 이 없고 /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 ...]
3절까지 읽고 나서 김억이 번안한 시를 한 번 더 읽고 나며 가슴이 먹먹해져 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절까지 읽기를 마치고 나서 <https://youtu.be/HAoFsFvTAFU> 로 가, 임형주를 만나보라. 소프라노 강혜정, 조수미 등의 버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임형주 노래가 더 좋았다. 남자가 불러 감정 이입된 까닭일 것이다. 그리고 나면 시를 읽을 때 먹먹했던 가슴이 무너지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이다.
설도 시인은 그 표현을 <춘망사> 4절에서 ‘玉箸’라고 썼다. ‘옥으로 만든 젓가락’, 눈물이 옥으로 만든 젓가락처럼 흘러내렸다고... 이 촌스런 표현을 좀 다듬어 보자. <구슬 같은 눈물 줄기>라고. 노래 듣기를 마친 당신, 지금 거울을 들러다 보라. 설도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은 피폐하지 않다는 거다. 그러나 피폐한 사람은 이 짧은 시 한 편에도 눈물을 흘린다. 피폐한 나는...
<김억 시인 번안 시 '동심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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