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abula rasa

子 曰

배우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by 장영철 Francis

이 땅에 ‘호주제(戶主制)’라는 게 있다. 아니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家長)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을 기록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면 ‘남자를 가장’으로 해서 가족 중에서, 남자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거다. 그래서 여자에게 있어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결혼 후에는 남편이, 남편과 사별을 하면, 갓난애라도 아들이 호주가 된다. 호주제 하에서 여자는 절대 호주가 될 수 없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이 제도는,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안’이 통과됨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자 며칠 뒤 ‘호주제 폐지’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라며, 어떤 이가 헌법소원을 제기해, 장안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 당사자는 남자였다.


지금은 악습이라고 불리는 이 호주제가 “미풍양속, 즉 인륜(人倫)이라고 주장”한 것은, 유학(유교)에서 시작됐다. 그 유학을 체계화한 사상가가 공자다. 그러니 그가 호주제의 원흉(?)이 되는 셈이다. 공자는 예수 탄생 5백여 전, -석가모니가 태어난 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해당 됨-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노나라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양친을 잃고 세상 허드렛일을 하며 힘겹게 산다. 그래도 삶의 ‘예의범절과 규범’을 공부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중년 이후에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게 되고, 노나라에선 법 집행을 담당하는 사구-오늘날 법무부 장관?에 해당 -라는 관직을 잠시 맡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한 정치 사상가였던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 제자와 ‘주나라의 전통적인 경전을 정비’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다.


공자는 말한다. 지배층이 예(禮)를 갖고 통치를 한다면, 피지배층인 백성도 진심으로 따를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 이처럼 법의 의한 통치가 아닌, <예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 그다.


우리는 흔히 부처의 자비, 예수의 사랑을 말하면서 ‘공자는 인(仁)’이라 한다. 인은 무엇일까? 공자는 ‘예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의 모습’을 인이라고 한다. 인한 사람이란 ‘예를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자신을 이겨서, 예를 회복한다는 의미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말한다. 예가 먼저 체화되어야 그 다음에 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많은 제자가 ‘인이 무엇인가?’라고 공자에게 직접 물어 본다. 심지어 번지라는 제자는 3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한다. 그 때마다 공자의 답은 다 달랐다. 제자마다 개성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이 이렇게 어렵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공자는 또 ‘서(恕)’를 말한다. “같다(如)와 마음(心)”으로 나누어 설명되기도 하는 서는,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다’는 말이다. 이는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원하지 말라”라는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


<를 갖추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의 원리에 입각한 군자>만이 공자의 주된 관심사다. 이 잘난 공자에게도 아킬레스건 같은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논어 / 양화편에서> - ‘여자와 소인(피지배층)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


이런 공자다 보니 그의 사상에 여자가 들어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호주제가 미풍양속이고, 남자만이 가장이 될 수밖에 없고... 하는 말이 일견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니다, 방금 이 말은 취소다. 요즘 같은 양성평등시대에 절대(?)해서는 안 될 말이다.


최근 새벽잠을 설치며, 회사에서 업무를 보다가, 심지어 잠시 서울에 가서도, 틈만 나면 논어를 이리저리 읽었다. 참고 서적도 몇 권. 물론 한문 실력이 가난해 주로 번역문을 읽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얄팍한 기억으로 원문도 가끔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학이편’에서 ‘요왈편’까지 총 20편에 들락거렸다.


누가 내게 논어에서 어느 대목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胎] <논어 / 위정편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같은 호주제를 한 측에서는 악습이라 하고, 다른 측에서는 미풍양속이라고 하는 상반된 입장에서, 중용(中庸)의 시각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 논어와 공자 덕택이다. 게다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그곳에 길(道)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신발 끈을 조였다.


경제적으로 공자에게 많은 도움을 준 거부인 제자 자공이, 어느 연찬에서 큰소리를 쳤다. “나는 남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공자가 말한 <서의 원리>를 감히 말한 것이다. 그 때 공자가 그에게 일갈했다. <賜也 非爾所及也> <논어 / 공야장편에서>- “사야!(자공의 이름) 아직 너는 그런 경지가 아니다.”


어떤 영역이나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으면, 스스로 허풍떨지 말 일이다. 자중하고 옷깃을 여밀 일이다. 깊어가는 가을 들녘 벼의 고개 숙임을 눈 여겨 볼 일이다. <배우고(學), 생각하기(思)>를 멈추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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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배우로 유명한 주윤발이 공자역을 맡았다. 책으로 만나는 공자와 다른 공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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