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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수 Jul 01. 2024

우울증은 나을 수 있는 병일까?

정신질환 치료기 (1)

우울증을 엿보다 - 2022년, 어느 봄의 일기


스물 세살.

백세 시대에서 인생의 4분의 1도 채 살지 않은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것 만큼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벌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이만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은 아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스물 셋 인생에서 패배주의적 사고가 서서히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그 지난해 부터였다.

사실 내 인생을 회고해보자면 빈말로도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테다. 엄마와 두살 터울의 오빠, 셋이서 내 공간 하나조차 없이 10평도 되지 않은 임대주택에서 부대끼며 살아왔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다행인 점은 엄마가 교육에 열정적이라 나도 어느정도 괜찮은 대학교에 입학할 정도의 성적은 되었다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인 패인 중 하나였다.


나는 언제나 돈을 벌고 싶었고, 부를 좇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돈을 벌기 힘든 것들.

선택한 개발은 나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주입식교육과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나는 대학원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 나락이었다.


생각보다 그동안의 나는 나를 좋아했었나보다.

남들보다 현저히 뒤쳐지는 나를 견딜 수 없어 매일 매일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취업은 쉬워? 공시는 쉬워? 무엇 하나 인생 쉬운 것 없고 심지어 건물주도 힘들다더라.

내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감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해온 것처럼 모든 것을 관두고 싶어졌다. 인생을 말이다.

내 인생의 봄은 이미 지나버렸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날.


4월이 되어 가족들과 아파트 뒷산에 올랐다.

앙상한 가지 속에서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가 조심스럽게 몸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아직 여린 이파리.

스물 세살의 나도 그러했을진데, 그 당시의 마음은 나의 존재가 말라비틀어진 고목이라 여겼다.

그러나 고목에서도 버섯이 자라고, 눈에 뒤덮여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가지 마디에서 다시금 꽃이 피어난다.


작년 이맘때

다시는 봄이 돌아오지 않을것이라 여겼던 그 순간

하지만 용케도 나는 거기서 살아남았고 오늘 개나리가 피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우울증 치료기 - 2024년, 여름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우울증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던 시절, 같은 대학원 연구실에 다니던 박사분께서 내게 글쓰기 재능이 있으니 브런치에 도전해 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에서 그렇듯 나는 끈기가 없었고 글을 딱 하나 작성한 채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앞서 발행한 글은 2022년, 우울증이 가장 극심해 지기 직전에 작성된 일기장에 가까운 회고였다.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희망에 젖어 그 글을 작성했다.

끝이라 생각했고 더 이어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던 내 삶에서, 시간이 흘러 어느덧 봄은 찾아왔고 나에게도 계절과 같이 봄이 찾아올 거라 생각한 것이다.

3년이 흐른 지금,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결론적으로 나는 우울증을 겪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다.


2022년 글을 작성한 시점의 나는 우울증의 바닥을 경험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에도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고는 있었지만 일에 단 일 초도 집중할 수 없었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기만 했었다.

그 이후로 병원을 두번이나 더 옮겼는데, 두번째 방문한 병원에서도 나는 큰 차도를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약을 먹는데 왜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라는 생각에 나을 수 있을 거라는 잠깐의 희망마저 짓밟아 버리기 일수였다.


2023년 3월에 두번째 병원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후, 반년을 없이 살아 금단 증상에 고통받았다.

우울증의 바닥을 경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집중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손이 떨렸다.

우울증 약을 의사의 처방 없이 한번에 끊어버린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의사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의 상황은 살펴보려 하지 않고, '저 우울해요'란 말 한마디에 손쉽게 용량을 늘려버리는 행동이 과연 내게 옳은 것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간 정말 인생이 나락으로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23년 9월, 세번째 병원을 방문했다.

이번에 방문한 병원은 기존의 병원과는 달랐다.

현재 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슬픔을 겪고 있는지 의사 선생님은 하나하나 꼼꼼히 들어주셨다.

기본 진료가 20분이 넘어갔다.

5분 안에 약을 처방하고 끝나던 병원과는 달랐고, 나는 다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조금이나마 갖게 되었다.

(물론 앞선 두 병원에 대해서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치료 방식이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저 나와 맞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싶다.)


순조롭게 병원을 다녔지만 내 주변 상황은 순조롭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배신 당하거나 따돌림 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대학원 졸업 이후,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생겼던 마음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비교적 빠른 취업을 하고 직장에 입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집중력과 나약한 정신력으로 회사에서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해당 문제를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신 뒤 말했다.


ADHD 치료에 사용되는 콘서타를 한 번 써볼게요.

ADHD라니.

사실 우울증을 겪으며 ADHD를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앞서 얘기했던 대학원 박사분도 ADHD였고, 내게 자가진단 표를 보여주며 한번 체크하고 확인해보라 하셨다.

그러나 ADHD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과만 얻었을 뿐이었다.

내가 알기로 어린 시절부터 해당 증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우울증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집중력이 높아 수월히 학창시절을 보낸 모범생이었다.

당연히 ADHD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주의력 결핍이 동반되었을 때 해당 약을 사용하면 좋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ADHD의 대표적 치료 약물인 콘서타를 복용하게 되었다.


해당 포스트의 제목으로 '우울증은 나을 수 있을까?'란 의문을 달았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렇다'다.

콘서타를 계기로 내가 천천히 변화해갔기 때문이다.

물론 약 복용이 드라마틱하게 내 인생을 바꿔 준 것은 아니다.

내게 나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 여럿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음 포스트로는 나의 우울증을 심화시킨 사람과, 반대로 우울증을 치료해준 사람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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