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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수 Jul 13. 2024

우울증은 어떤 사람이 걸릴까?

정신질환 치료기 (2)

OOO한 사람은 우울증에 잘 걸린다!


우울 증상이 시작된 건 2020년 하반기부터였고, 제대로된 진단을 받은건 2022년 3월이었다.

2020년 하반기엔 여러 일이 있었다.

코로나로 고등학생 때부터 고대하던 교환학생이 취소되고, 운전 면허를 따려다가 대차게 실패하고, 대학교 전공이 정말 나와 맞지 않는데 연구실에서 일을 하며 스펙을 겨우겨우 쌓아 나가던 때다.


내가 병원을 전전하며 들은 말은,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진짜 나의 격차를 줄여나가라는 말이었다.

나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너무나 높은 것에 반해 내 능력치가 낮아서 생기는 우울감이었던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전공을 잘 하고 싶었지만 동기들보다 현저히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비교를 통해 끝없이 나 자신을 깎아 내렸다.

그렇다면 나처럼 비교를 숨쉬듯이 하는 경쟁 지향적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것일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사실 그렇다.

우울증에 잘 걸리는 사람, 잘 안 걸리는 사람이란 없다.

멀쩡히 사회생활 하고 있는 사람 같은데 속으로는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내 주변에는 꽤나 학벌 좋고 직장도 잘 자리잡은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하냐 물으면 단연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 ADHD,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겪고 있는 병명도 다양하다.

나는 그저 내가 쓴 글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병을 겪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정신병도 유전이란 말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이 말이 맞다면 필시 엄마에게서 전해져 내려온 속성일 터였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한,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란 말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흔한 일이다.

폭력적이고 경제적이지 못한 아버지의 밑에서 자란 유년 시절.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이라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한부모 가족이었기 때문인지, 엄마가 힘들지 않게 나라도 잘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에서 인지, 어릴 때부터 성숙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애늙은이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나는 묘한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인생의 고난을 더 겪어왔어, 하는 마음.

결손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상위권에 맴도는 학교 성적으로 난 개천에서 난 용이야, 하는 생각.


은연중에 다른 아이들을 얕잡아 보곤 했다.

타인과의 비교가 숨 쉬 듯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의 결점을 발판 삼아 나를 드높이는 게 익숙했다.

선천적인 낮은 자존감과 남보다 우월하다는 알량한 자존심을 가진 채,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나는 영어에 자신이 정말 없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정 반대인 수학이었고 실제로도 수학 성적이 제일 좋았다.

그 다음이 국어.

그저 외고는 수학여행을 해외로 간다는 로망에 사로잡혀서 덜컥 지원을 했고, 붙었으며, 입학했다.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으며 담임 선생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넌 외고 왜 왔냐?"

국어 수학 1등급에 영어 4등급이었나.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입학 초기에 정말 우울해 했었다.

친구도 사귀기 힘들어 해서 혼자 다니다보니 더욱 속상했다.

내가 그렇게 사교성이 없는 편도 아닌데, 공부를 못하는 편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게 억울했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와서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이렇듯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우울증 증상 중에 하나였다.

우울증 검사지로 검진 받으며 놀라워했던 사실이 기억난다.

그 당시 나는 교우관계와 성적 때문에 알량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고, 낮은 자존감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그 이후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비록 영어는 못하지만 수학과 국어를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며 다녔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우울증에 걸릴뻔 했지만 잘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인 자존감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앞서 말했듯 2020년, 다시 두각을 드러내고 만다.



정신병이 유전이라고?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정신병도 유전이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엄마한텐 정말 미안하지만 내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엄마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상호관계를 맺으니 그가 가진 사상과 삶에 대한 태도가 내게 그대로 배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소극적인 사람이다.

친구도 거의 없다.

식당 주문도 잘 못하고, 20대에 취직을 못해서 30대가 되어서야 혼자 집에서 일을 하는 직업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더욱 내성적이 되었고 종래에는 식당 서빙 알바도 무서워서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도전하기를 두려워 하지만, 자존감은 낮아서 무시당하기는 싫어했다.


내 성격의 내성적이고 자존감이 낮은 부분은 엄마에게서 왔다.

어렸을 때 어딜 가기만 하면 '애가 참 숫기가 없네요' 하는 말을 번번히 들어왔다.

그럼 엄마는 '왜 날 닮아서 너희(나와 오빠)는 그렇게 숫기가 없니?'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성적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걸렸느냐 말한다면, 아니다.

그러면 내가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걸렸느냐 한다면, 어느정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럼 결국 모든 게 엄마 탓이냐 하면, 이는 절대 아니다. (물론 내 생각이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는 대학교, 알바, 직장을 거쳐오면서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 전의 나는 혼자 책을 읽으며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책벌레였고 또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 생각은 우울증에 걸린 내가 우연히 고등학교 3학년 일기를 발견한 후부터 사라졌다.


고3이 받는 스트레스는 모두들 다 알것이다.

나 또한 그동안 투자한 학원비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을 잘 가야한다는 사명감에 젖어 있었고 그만큼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인생의 암흑기라고도 볼 수 있을 때 쓴 일기는, 생각 외로 긍정적이었다.


오늘은 공부를 얼만큼 했고, 얼만큼 남았으니 내일도 힘내자는 말.

오늘 친구와 무슨 얘기를 해서 즐거웠다는 말.

본래의 나는 다양하고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게 그 일기에서 증명 되었다.


태초부터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의 특성이란 없다.

나는 그동안 줄곧 모든 일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사람인 만큼 기본적으로 우울함이 깔려있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우울한 상황이라면 '나는 우울증에 걸릴만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생각보다 너는 긍정적인 사람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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