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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수 Jul 19. 2024

20대는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정신질환 치료기 (3)

네번째 정신과


새로운 소식이 있다.

한 분기 전, 이사를 가서 기존에 다니던 정신과와 멀어졌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기 때문에 옮겨야 한다 생각은 줄곧 하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대부분은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의 권유에 떠밀려 새로운 정신과 초진을 예약하고, 드디어 지난 화요일 방문했다.


초진은 약 30분 정도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검사와 내 주변 환경을 묻는 질문이 계속 되다, 한 질문이 들어왔다.

"이렇게 정신과 다니는 건 처음이세요?"

당연히 아니다.

벌써 네번째 병원이니 말이다.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 후 기존에 복용하고 있던 약을 보여드렸다.

지난 브런치 글들을 보셨다면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항우울제와 함께 '콘서타'라는 ADHD 계열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약을 보더니 단번에 난색을 표하셨다.


콘서타를 쓰셨군요...

침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

사실 콘서타를 복용한 이후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우와, 어쩌면 내 인생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의사 선생님의 생각은 반대셨나보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이런거죠. 

진통제는 약을 낫게 하진 않지만 고통을 줄여줍니다.

이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하는게 콘서타예요.

각성제 계열이기 때문에 당연히 약효는 들겠죠. 강한 약이니까요.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요.

약효가 드는 약도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제 정신과를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녀야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덧붙이셨다.

"물론 그 선생님이 약을 잘못 사용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동안 약을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선택하신 것일 수도 있어요.

혹시 그동안의 처방 내역을 출력해서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선생님은 약의 구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약은 나눴는지, 이 약은 왜 복용하기 시작했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셨다.

"혹시 괜찮다면 콘서타를 빼고 진행해도 괜찮으실까요?"

난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난 전문가의 말에 쉽게 동의하는 편이다.

두 전문가의 말이 상이하더라도 말이다.

이전 병원에서 선생님은 내가 워낙 눈치가 없고 분위기 파악에 능통하지 못하다보니 주변 사람의 의견을 듣고 동화되어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셨다.

그런 내 습관이 한번 더 발휘된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렇게 지난 화요일부터 콘서타를 뺀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걱정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다.

콘서타를 복용함으로써 내가 다시금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매우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은 내 일상에서 가장 큰 직업적인 부분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는데, 콘서타는 이 부분에서 효과적인 작용을 해주었다.



우울증의 이유


내가 우울증에 걸리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나의 전공 때문이다.

나는 인공지능 개발자다.

흔히 아는 챗지피티, 뭐, 그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개발자 맞다.

그러나 이 분야가 나와 잘 맞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고개를 저을 수 있다.

나는 개발에 적성이 없다.


이를 처음 깨닫게 된건 대학교 1학년 필수교양 수업에서였다.

우리 대학교는 2학년 때 전공을 지정하게 되어있었고, 나는 당시에 전공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국문학과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느정도 갖고 있던 상태였다.

처음 접한 코딩 - 파이썬 프로그래밍은 내게 있어 블랙홀이었다.

에러만 난무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와, 나 진짜 개발자 못하겠다, 생각한 내가 어떻게 인공지능을 전공하게 되었느냐면...


우선 나는 돈에 미친 사람이란 걸 알아주시길 바란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게 크다.

그래서 내 진로를 정할 때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정해두고 해당 길로 진학하기 위해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국문학과에 진학해 소설이나 쓰고 있었을 난데, 갑자기 인공지능이라는 신설과가 생긴 것이다.


인공지능?

솔직히 말해 아는 거 하나도 없지만 진짜 멋있다.

심지어 개발자면 돈도 잘 벌겠잖아?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해당 학과에 지원했다.

학점 순으로 당첨되는 학과이기 때문에 애매한 내 성적으로는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거의 아슬아슬하게 인공지능 학과에 붙었다.

그렇게 내 전공이 정해진 것이다.


2학년 때까지는 나름 괜찮았다.

나처럼 멋있어보이는 과 타이틀에 끌려 진입한 사람이 많았는지, 코딩에 특출난 재능이 있지 않은 나같은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름 위안을 얻으며 살아갔다.

그러나 3학년, 코로나가 터지고 교환학생이 좌절되고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나는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3학년 쯤 되자 주변엔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 밖에 남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동기들은 복수전공을 해서 다른 과로 옮길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아... 그래도 그동안 해온게 아까운데 그냥 졸업할까? 란 생각에 우물쭈물하던 상태였고, 그러다보니 복수전공으로 도망칠 길에 들지 못했다.

이제 꼼짝없이 인공지능 개발자의 길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겁이 매우 많고 인생의 정도라고 정해진 길을 따라온 사람이기 때문에 변칙적인 삶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 당시의 나는 정말로 내가 재능도 없는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성적은 나날이 떨어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나마 졸업을 얼른 해서 취직을 얼른 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인공지능을 학부 내에서 모두 섭렵하기란 매우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는게 일반적인 관례다.

모험성이라곤 없는 나는 그 관례를 벗어나고 취직하고 싶어했지만, 개발을 잘 하지도 못하는 내가 과연 석사 타이틀도 없이 취직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다행히 학부 수업을 진행하며 나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이 계셔서 대학원 진학은 수월했다.

자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장학금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안 다닐 이유가 없었다.

2년 정도 죽었다 생각하고 연구 경력을 쌓아서 졸업하는 게 내게 남은 최선의 선택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이 선택지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최악의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말았고, 우선 학부 연구생으로 연구실에서 공부를 진행했다.


그 후로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삶이 시작됐다.

나는 매일 밤 고민했다.

정말 이 길이 맞나? 나는 개발을 하고 싶은게 맞나? 애초에 내게 개발 재능이 있긴 한가?

하루에도 수백번씩 자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고 연구실 월급이 나오는 안온한 삶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시간을 보냈다'고 서술했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나에 대한 자괴감과 비관, 삶의 무의미함, 자살 사고까지.

그러다 정말 견디다 못해 찾은게 정신과였지만 그닥 큰 차도는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히려 내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병원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라니.

나는 평생 이런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

이런 삶이라면 살아야 할 가치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이 반복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겁쟁이었고, 내가 죽은 뒤 슬퍼할 엄마가 불쌍해 죽지 못했다.

죽을 깡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암흑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길을 걷다, 졸업 이후 취준 기간에 지난 병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콘서타를 복용한 이후로 나는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회복이 아니었다니.

사실 이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지만 반대로 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다시 천천히 치료하면 되지, 이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콘서타를 복용하지 않은 지 3일차인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울증은 치료가 될 수 있는 병인가?


나는 지금 회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응당 당연하지만,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이 일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라도 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애를 써야하지만 쓸 수 있는 애가 없다.

그저 겁이 많아 관둘 수 없어 회사에서 시간만 죽이는 삶.

다시 우울증이 극심했던 시절로 돌아가고만 것이다.


이번주 동안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이제 슬슬 상사의 윽박에도 퇴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뭘 하며 살아가야 하지?

경제 활동을 해야 앞으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을 텐데.


잘 모르겠다.

20대는 무엇하나 정해진 것 없고 사회에 휘말리는 시기라고들 한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시달리는 걸까.

30대가 되면 나아질까.

버티면 나아질까.

내가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드는 생각은, 어서 다음  병원 예약에 방문해 이런 내 상태를 말씀드려야 한다는 거다.

그때까지만 참는 거다.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이란 병은 안그래도 난이도 높은 내 인생의 난이도를 급속히 높혀주었다.

참 감사하다.

언제쯤 이 병을 이겨내고 내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치료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치료되었고, 성장했다.

이 점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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