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아니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주말 아침, 시험기간이라 학원에 가야 하는 딸을 챙기느라 잠이 달아났다.
계획되지 않은 등산을 다녀오기로 마음먹고
가방을 꾸렸다.
그동안 챙길 필요가 없었지만 쌀쌀해진 탓에 장갑과 마스크, 핫팩, 따뜻한 캐모마일 차,
누군가 간식을 나눠주면 답례로 줄 사탕까지 준비했다.(산에서 나눠 먹는건 흔한 일)
내 취미가 되어가는 등산이 두 번째 계절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목적지가 없었는데 불현듯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선생님, 나 보은 살면서 한 번도 속리산을 안 가봤네. 같이 가실까요?"
"좋죠~등산화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등산화는 꼭 있어야 덜 고생해요."
"앗!!! 그런가요... 없는데. 그럼 운동화로 가능한 산부터 가보고 속리산 가요."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이렇게 보은군민인 윰선생님을 위해
청주시민인 내가 먼저 속리산 답사를 가기로 했다.
(평상시 짓궂은 장난 많이 하는 사이)
속리산은 두 번 가봤다.
직장에서 법주사 템플스테이로 지인과 함께 한 번.
남편과 한 번.
세 번째는, 네 번째를 위해 혼자 갔다.
등산객들이 많다는 소식에 서둘렀는데 주차장이 매우 한가했다.
'단풍철이 끝난 건가? 왜 한가하지?'
산이 높아 우선은 주위를 둘러보는 건 내려오며 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올랐다.
욕심내지도 말고, 자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하면서 말이다.
초입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는데
앞서던 어르신 두 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는 조용하게 오르는 걸 좋아해서 이럴 때는
앞서가는 편인데 산이 산이다 보니 부득이 듣게 되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는 서울에 살고 전국을 이렇게 다닌 지 오래되었어요"
"좋은 산 많이 가셨겠어요."
"그럼요. 그런데 속리산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왜요?"
"나이가 드니까 무릎도 허리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사실 오늘도 마음은 자신이 있는데 몸이 따라줄지 모르겠어요"
"어허~~ 왜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세요. 생각하는 대로 되는 거잖아요. '할 수 있다.
내년에도 단풍 보러 와야지' 하고 생각하세요."
"그건 그렇죠~허허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각자 오신 등산객이었고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이셨다.
두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고 나는 숙연해졌다.
요즘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생각했다.
최근 읽은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에서 봤던 글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살아온 기간이 늘어날수록 반대로 추억은 점점 짧아지기 때문이다. 즉,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과 불쾌했던 사건들은 삭제되어 남은 기억이 추억이 되는데 생각보다 추억이 적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추억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위 어르신처럼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그 와중에도 달랑달랑 어르신의 배낭에 매달린 쓰레기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어르신의 자연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올라 가시는 내내, 내려 오시는 내내
그런 마음만 가득 차있길 바래본다.
또 마음속으로 두 어르신에게 말을 건넸다.
"내년엔 속리산 단풍이 더 예쁠 테니
그때 다시 오세요."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나도 쓰레기봉투를 챙겨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첨언-내가 정상을 만끽하고 내려올 때쯤 산악회, 가족 등...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왔다.
내가 일찍 온 것이다.
그럼 그렇지,
늦가을 속리산은 넘 멋진 곳이니까.
"힘내시라. 조심하시라."
먼저 인사를 건내는 나...많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