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주황색 구두

by 오롯이

여름이 자신의 기세를 한껏 떨칠 때

우리 부모님의 일터 인 고추밭에 고추는 아주 잘 익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작지만 일손을 보테러 친정에 왔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고추와 관련된 일을 하러 밭을 쫓아다녔었다.

고추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내 기억 그 시절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으로 기억한다.

내 발은 체격에 비해 225m로 작다. 또 결혼하고 발가락을 본 남편은 신기한 듯 말하기도 했다.

"발가락이 왜 곧게 펴있지 않지??"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늘 작은 신발이 될 때까지 신고 낡아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야 바꿀 수 있었다.

시골 농사꾼의 형편은 다 그렇지 않았을까?

그러니 발가락도 발도 크지 못하고 제한적인 신발 안에서 웅크린 체 거기까지만 자란 것 같다.

한 번은 학교에 갔는데 친구의 주황빛 구두가 너무 예뻐 보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에 신발은 구두로 사야지!!'

생각해 둔 구두가 있어서였을까 지금 신는 운동화가 너무 싫었다. 빨리 닳기를 바래 험하게 뒤축을 꺾어 신고 질질 끌고 다녔었다. 아마 엄마가 직접 보셨다면 등짝 스매싱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라던 새 신을 사는 날이 왔다.

풍산 오일장에 가는데 엄마가 나보다 큰 노란색 고추포대를 들고 가는 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신발 사러 가는데 왜 저걸 들고 가지?'


(지금도 거실엔 말린 고추의 매운 내가 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렇게 고추포대를 머리에 이고 풍산 가는 11번 버스를 탔다.

엄마는 나보다 고추포대를 먼저 버스에 싣는다. 차비를 내고 자리를 찾는데 자리를 차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고추포대들이었을 만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넘어질까 뒤에 서서 나를 감싸주신 엄마가 또렷이 기억난다.


(참! 나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비 편도 70원, 왕복 140원을

분홍빛 지갑에 매일 아침 넣어 주시며 "꺼내지 말고 꼭 가방에 넣고 다녀라~"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


드디어 버스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 서 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낯선 아줌마들이 서로 고추포대를 끌어내린다. 너무 순식간이라 뭔가 놀랐지만 나중에 알았다. 고추를 사려는 소매업자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절대 넘기지 않았다. 중간 마진을 남기게 해 줄 분이 아니셨다.

장 어느 한 귀퉁이에 서서 고추 포대를 열어 보이시고는 그냥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손잡고 장을 구경해야 하는데 왜 여기 서있는지 물었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걸 팔아야 신발을 사지"

아.... 나는 너무 싫었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고 가는 것도 창피했고

살듯 말 듯 흥정하는 사람들도 미웠다. 더 최악은 엄마가 나를 두고 잠깐 어딜 간다고 간 것이다.

'잠깐이라더니 거짓말!!' 나는 금방이라도 울듯 사방을 둘러 엄마를 찾았다.

마침 어떤 아줌마가 다가와 엄마를 찾았다.

이 아줌마까지 가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곧 올 거라고 하얀 거짓말을 했다.

근데 정말 다행히도 엄마가 왔고 그 아줌마와 흥정을 하시는데 다행히 그 아줌마에게 고추를 팔았다.

"원래 근 보다 좀 더 넣었니데이~"하며 아줌마를 보내고 드디어 기다리던 신발을 사러 갔다.


나는 난전에 있는 신발 중 주황색 구두만 찾았다.

근데 운명인 건가, 정말 내 취향에 적중하는 주황색 구두가 가지런히 있는 게 아닌가!!!

엄마에게 손짓하며 저거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시골 촌에 사는데 막 신어도 오래 신을 수 있는 운동화를 사주려는 엄마와

나름 취향저격인 구두를 고집하는 나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엄마는 캐릭터 전략으로 날 설득시키려 하셨지만 나는 전혀 관심 없이

입만, 오리주둥이처럼 댓 발 나왔다.


주황색+유광+살짝 뾰족한 코+검은 신발끈으로 리본 묶은 구두!!


결과는 내 뜻대로 구두를 샀다.

그때 그 행복함이란... 동요처럼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그대로였다.

그 구두를 아끼면서 신었고 한참을 신으니 작아져 발이 아팠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끝까지 신었었다.

지금이야 옷차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신는 구두와 운동화가 많지만

내 어린 시절 신발은 정말 발을 보호하는 그 자체였다.


지금 거실에 매운 내 가득한 고추포대들이 돈이 든 자루와 마찬가지였다는 것이 찡하고 뭉클하다.

새벽 고추따기
말린 고추
공판장 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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