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쌀이 빠르게 줄고 부엌 바닥마다 검은깨 같은 쥐똥이 떨어져 있었다. 흰 쌀밥을 한 숟가락 떼어다 쥐약을 섞어놓았다. 오늘 아침 쥐가 죽어있었다. 내 오른팔 하나만큼 큰 쥐였다. 약 때문에 내장이 녹아내린 쥐가 피거품을 물고 있었다. 밑으로 무언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새끼 쥐였다. 죽음을 앞두고 예정보다 빨리 새끼를 밀어내려 했던 것 같다. 그 전에 모두 죽어버렸지만. 맥이 쥐의 꼬리를 잡았다. 잔반을 모아두는 플라스틱 통으로 가서 그 안에 쥐를 던져 넣었다. 왼쪽 새끼손톱을 입에 넣고 빨다가 물었다. 그리고 씹었다. 떨어져나온 손톱을 입안에서 굴리다 삼켰다. 맥이 쓰레기통 뚜껑을 닫았다.
맥이 부엌을 청소하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맥이 내 치마 뒤를 가리켰다. 거기 붉은 흔적이 있었다. 점점 커졌다. 나는 욕을 내뱉었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다리 사이를 닦았다. 생리대를 차고 돌아와 밥차를 옮겼다. 식당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어린아이나 장애아가 있는 방에는 밥을 직접 가져다줘야 했다. 허리가 아팠다. 다리 사이가 축축하고 힘이 없었다. 저녁밥을 먹지 않고 바로 방에 들어가 쉬었다. 침대에 눕자, 입안부터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당직실로 갔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보육교사가 있었다. 돌아가기에는 배가 아팠다.
배가 아파요.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거 아니야?
생리예요.
생리에는 약이 없다.
타이레놀 한 알만 주시면 안 돼요?
잠이나 자.
지금 필요해요.
보육교사는 슬슬 짜증이 치미는 것 같았다.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뺨을 맞을 것이다. 그래도 비켜서지 않았다.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았다. 뺨을 맞는 것보다 더 아팠다. 밤은 길었다.
무슨 일이야?
고개를 숙였다. 엄마가 뒤에 서 있었다. 보육교사가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놨다. 나는 보육교사의 발끝을 쳐다봤다. 엄마가 당직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랍을 뒤져서 약통을 꺼냈다. 그 안에서 타이레놀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두 손으로 받았다.
방으로 돌아와 약을 먹었다. 고통을 참으며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깼다. 내 앞에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맥이 보였다. 맥은 자기 팔을 내밀었다.
이건 내가 여섯 살 때 처음으로 낸 상처야.
내 옷장을 뒤져 꺼낸 원피스를 자기 몸에 대보고 있던 제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도. 그것도 세 번이나.
제이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건 손금이었다. 제이가 자신을 놀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맥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맥은 지금까지 세 번은 넘게 그었다. 맥이 정확하게 몇 번인지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많이 그어서 생각도 안 나기 때문이다.
난 열 번도 넘게 했어.
제이가 맥에게 혀를 내밀어 보였다. 맥의 온몸이 피처럼 붉어졌다. 맥과 제이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어제 입소한 아이가 방 한편에서 울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랬는지, 목에서 날카로운 쇠붙이로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몸을 비틀어서 침대에 피가 묻었는지 확인했다. 내 엉덩이 부근에는 전날 묻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물로 지웠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옷이 마르자 갈색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흐릿하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피를 흘렸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의 갈색이었다. 엄마는 밑으로 피를 흘리는 게 내가 죄인이라는 증거라고 했다.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죄가 없고, 죄를 모른다고 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침대 밖으로 내려갔다. 내가 처음 구원의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써온 이층침대는 초등학생 용이었다. 몸을 한껏 구부려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싸구려 매트리스는 바닥보다 나은 게 없었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스프링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석 달에 한 번 구원의 집에 후원자들이 찾아온다. 오늘은 후원자가 오는 날이다. 구원의 집 안에 모든 문이 활짝 열린다.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에게 밥차를 가져다줬다. 빠르게 식사를 끝낸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기 위해 한 층 밑으로 내려간다. 봉사자가 오는 날은 조용하고, 후원자가 오는 날은 분주하다. 봉사자는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는 동선으로 허드렛일하다 떠난다. 후원자는 아이들과 만날 수 있다.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가 있는 방에 들어가 아이들이 직접 쓴 편지를 받고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후원한다. 점심시간이면 위층은 한산해진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비상계단을 오른다. 모르는 아저씨가 복도에 서 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지나친다. 문득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몇 살이니?
열다섯 살이요.
생리 중이니?
엉덩이에 묻은 핏자국을 본 모양이다. 나는 몸을 돌려 엉덩이가 보이지 않게 한다. 뒷걸음질 친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어른이 된 거야.
나는 아저씨로부터 멀어지려 했지만, 아저씨가 앞을 막아섰다. 뒤돌아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저씨는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간다. 가을이 지나서 해는 점점 짧아졌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불을 켜지 않았으므로, 하루의 절반은 어둠 속에서 걸어 다녀야 했다.
*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친엄마를 기억했다. 엄마는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가 해다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제이와 나는 불을 켜는 법을 몰라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그 빛으로 생활했다. 우리의 얼굴은 보통 파란색이었고, 가끔 노란색이나 빨간색이 되기도 했다. 실제의 피부는 햇빛을 보지 못해 흰색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만화 주제가를 불러 제목을 맞추는 게임을 했다. 주로 내가 문제를 내고 제이가 답을 맞혔다.
뭔가 잊어버린 듯 자꾸 불안한 마음만 생기고 하루 지나고 지나도 허전한 마음뿐이야.
다다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해. 오늘은 어떤 사건이 날 부를까.
명탐정 코난.
나는 일곱 살, 제이는 열 살. 우리는 남매였다. 우리는 늘 함께했다. 엄마가 아빠에게 맞고,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켰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숨었다. 구걸이란 아빠가 엄마를 때린 다음 날 아빠가 앉은 자세다. 용서란 아빠가 엄마를 때린 다음 날 엄마가 밥상에 올리는 반찬이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말한다.
알겠니, 네가 아빠를 챙겨야 해.
아빠는 아프다. 그래서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이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도 아빠가 아프기 때문이다. 엄마가 일을 나가고, 누워있던 아빠가 나를 부른다. 아빠는 맨날 나만 불렀기 때문에 나는 아빠가 싫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반지하다. 어둠 속에서 종종 부엌 찬장을 지나다니는 쥐와 눈이 마주치곤 한다. 나는 쥐가 싫다. 엄마는 식은 밥에 쥐약을 박아 쥐를 죽인다. 나는 죽어버린 쥐를 생각한다.
일을 하러 갔던 엄마가 돌아온다. 엄마는 늘 아주 천천히 걸어온다. 나는 텔레비전 선반을 밟고 올라가 엄마가 오는 것을 언제까지고 바라본다. 마침내 엄마가 보이지 않고 속으로 일부터 백까지 센다. 그러면 아주 천천히 문이 열린다. 엄마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빠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빠의 뜬 눈, 입가에 침이 흐른다. 엄마는 아빠를 흔들어본다. 아빠는 움직이지 않는다. 죽었다. 사람들이 와서 아빠를 데리고 간다. 엄마는 나와 오빠 손을 잡는다. 아빠는 불에 타서 한 줌의 재가 됐다. 보지는 못했다. 그저 작은 항아리에 담겨 유리관 안에 들어갔던 것을 기억한다. 아빠의 이름도 얼굴도 흐릿하다. 가장 선명한 것은 엄마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엄마가 나의 손을 잡고 명령한다.
알겠니, 네가 오빠를 챙겨야 해.
엄마가 간다.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나와 제이를 두고 사라져 버렸다. 모르는 아저씨가 시장에서 나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경찰 아저씨는 경찰차에 나와 제이를 태워서 구원의 집에 데려다줬다. 그 전날 밤에 시간이 너무 늦어서 우리는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나는 제이의 손을 잡았다. 버려지는 것이 뭔지 만화영화로 봐서 알고 있었다. 우리는 늦은 밤에 만약 서로 떨어지게 돼도 서로를 잊지 말자고, 어른이 되면 꼭 함께 살자고 말했다.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구원의 집에 왔다. 몰랐는데 제이는 멀미를 심하게 했다. 몇 번이나 토해서 차를 두 번 세워야 했다.
구원의 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2층짜리 목조주택이었다. 어떤 시골 마을 주변에 산과 논밖에 없는 외딴곳에 홀로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갓난아기처럼 작았다. 일곱 살이 아니라 다섯 살인 줄 알았다고 아저씨가 그랬다. 아저씨가 떠난 후 새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사무실로 갔다. 나는 너무 큰 소파 위에 기어 올라가 앉았고, 그 안에 균형을 잃고 반쯤 누워있었다.
귀머거리는 아니라던데. 잘 들어라.
나는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린 끝에 소파 밖으로 두 발을 내미는 데 성공했다. 엄마는 그날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말하는 내내 목소리를 높였다. 귀가 윙윙 울릴 만큼 크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나는 오줌을 쌌다. 엄마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졌고, 누군가 들어와 우리를 데리고 나왔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모여있는 큰 방에 갔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서 하루가 다 지나도록 축축한 바지를 입은 채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맥이 다가왔다. 맥이 내 바지를 벗기고 새로운 바지를 꺼내주었다. 나는 맥이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맥은 나를 데리고 모래사장으로 갔다. 모래사장이라기에는 한쪽에 크게 쌓아놓은 흙더미였다. 반대쪽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구덩이는 텅 비어 있었고, 그 옆으로 무언가 잔뜩 든 마대가 있었다. 맥은 그걸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아니면 다른 아이가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는 구덩이 옆에서 모래를 파고 성을 쌓았다.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와서 우리를 멀리 쫓아버렸다.
*
원장 엄마는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매일 몇 명씩 돌아가면서 엄마와 함께 밥을 먹는다. 엄마는 늘 식사 전에 기도한다. 한번 기도를 시작하면 도통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감사해야 할 것이 나보다 많은 모양이었다. 밥을 먹은 후에 다시 반성 기도를 한다. 오늘의 잘못한 일을 고백하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 엄마는 오늘 무슨 죄를 지었냐고 묻지 않았다.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말했다. 무릎걸음으로 엄마에게 기어갔다. 엄마 손에 손톱깎이가 들려있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엄마가 내 손을 가져간다. 이미 물어뜯어 짧아진 엄지와 새끼손톱이 눈에 박혔다. 엄마는 손톱깎이 사이에 검지 손톱을 바짝 밀어 넣었다. 둔탁한 파열음이 귓가에 닿음과 동시에 새하얀 고통이 손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관통했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었다. 손을 빼내려 했지만,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 손을 아프게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거칠고 투박한 손안에서 내 손은 붉게 물들었다가 하얗게 질렸다. 두 번째 손톱이 손톱깎이 사이로 밀려들어 갔다.
엄마는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는 신의 몫이다. 두 번째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에 나는 소리 질렀다. 손끝에 피가 맺혔다. 열 손가락의 손톱을 모두 잘린 후에 나는 엄마 방 안에 있는 다락으로 들어갔다. 일어날 수도, 앉을 수도 없고 몸을 웅크리는 게 고작인 작은 공간으로 죄를 지은 아이들이 며칠씩 들어갔다가 나오는 곳이다. 손끝이 아파서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끝에 피가 돌지 않으면 조금 나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팠다.
옛날에 어느 겨울밤의 일이다. 아침 일곱 시가 지났는데도 해가 뜨지 않았다. 그러니 겨울이 분명했다. 나는 방 안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공기 중에 퍼졌다. 방은 겨울에는 추웠고, 여름에는 더웠다. 살려주세요, 배가 고파요, 추워요. 세 마디 말이 메아리처럼 겹쳐서 유령처럼 복도를 떠돌아다녔다. 나도 그 말을 따라 해 보았다.
살려주세요. 배가 고파요. 추워요. 그러다 포기했다. 포기를 깨우친 후부터 모든 게 쉬워졌다. 그 모든 일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나마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뒤척이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아주 얕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누군가 마주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착각인가 하는 순간 누군가 벽장 문에 달린 자물쇠를 만졌다. 자물쇠가 부서져 나가고 문이 열렸다. 문밖도 안과 같이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손을 뻗었다. 누군가 내 손을 마주 잡아 왔다. 나보다 손이 조금 더 컸다. 다듬지 않은 손톱이 길게 자라있었다. 팔을 만져보았다. 지나치게 마른 팔이었다. 구원의 집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는 그렇게 말랐으므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오빠?
아무 말도 없었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였다. 뜬 것과 감은 것이 거의 아무런 차이도 없어 눈을 감았다. 나는 제이의 손을 잡고 다락 밖으로 나왔다. 제이가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자물쇠를 부수고 도망쳤으니, 엄마가 화를 낼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제이도 죽을 때까지 맞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일 층 남자 화장실로 갔다. 제이가 준비한 의자를 밟고 환기용 창문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달빛 아래 내가 제이라고 믿었던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맥이었다. 후문 앞에 제이가 있었다. 울고 있었다. 제이는 원래부터 곧잘 울었다. 나는 그런 제이를 경멸하는 한편, 부러워하곤 했다. 아프면 아픈 대로 눈물을 흘리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울어본 일이 까마득했다. 우리는 깜깜한 밤을 달렸다. 셋이라 두렵지 않았다.
*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엄마의 말미암아 나는 더 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늘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이 길고 그 안에 새살이 차오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손톱이 자라면서 생기는 손톱과 손끝 사이의 틈이 나를 집요하게 쳐다봤다. 나는 뼈도 살도 말랑말랑하니 금방 틈 안에 살이 차오를 것이다. 엄마에 의하면 나는 ‘징그럽도록’ 빨리 자라는 편이었다.
손톱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만지고, 빨았다. 물어뜯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손톱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주먹을 쥐어, 손톱을 숨겼다. 손바닥에 닿는 약간의 손톱을 느꼈다. 다시 손을 펴서 손톱을 봤다. 손톱은 대부분 잘려 나가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손톱 냄새를 맡았다. 역겨운 냄새가 났다. 그게 내 냄새였다. 나는 생각했다. 살과 뼈 사이 그 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틈은 삶과 죽음만큼이나 까마득하게 멀었다.
물에 빠진 적이 있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구원의 집 아이들이 다 함께 계곡에 놀러 갔던 어느 날이었다. 맥에게 저 끝까지 가보자, 하고 천천히 걸어가다 갑자기 빠졌다. 나는 수영을 못했다.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려고, 숨을 쉬려고 온몸으로 버둥거리다가. 곧바로 체념해 버렸다. 안되는구나. 나는 안된다. 이제 끝이야.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가라앉았다. 침착하게 더 깊은 곳으로 내려앉았다. 밑바닥에서 나는 생각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형체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물귀신, 머리카락, 나뭇가지, 사고, 죽음, 물, 초록색, 이끼, 박테리아, 시체, 파란색, 차가움, 사후경직, 검은색, 상복, 119, 경찰, 데드라인, 신문, 눈물, 가족, 마지막으로 장례식장을 생각했다. 생각하는 데도 공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두운 녹색의 물 안에서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숨이 막혔다. 입을 크게 벌리고 물을 들이켰다. 코로 물이 들어가면 귀가 빠질 것처럼 매우니까. 입으로 물을 마셨다. 계속해서. 목 안으로 들이닥치는 물은 차갑고 비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살아있었다. 밑바닥에 서 있었다. 빤히 뜬 눈으로 수면 밖을 바라보면서.
땅 위에서 종종 숨이 막히고는 했다. 거대한 덩어리가 명치에 걸린 것처럼 아무리 크게 숨을 들이마셔도 닿지 않는, 채워지지 않는 어딘가가 남아있었다. 가끔은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고 싶었다. 명치에 칼을 박아 넣고 싶었다. 물의 밑바닥에서 나는 숨을 쉬었다. 채워지지 않는 어딘가까지 닿은 것 같았다. 편하고 들뜬 기분으로 물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나는 기침을 하며 바닥에 누웠다. 뒤늦게 갑작스러운 한기가 느껴졌다. 몸이 벌벌 떨려서 양팔로 내가 나를 안았다. 물 밖으로 나온 후 생각했다. 물속에서는 숨 막히지 않았다. 고요하고 차갑고 모든 게 선명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완벽한 숨이었다.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 것처럼 물속에 내 자리가 있었다. 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여 가족을 만들었다. 구원의 집을 나온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걸었다. 서로에게 기대어 잠들었다. 맥은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우리를 따라왔다. 개인주의와 의존주의 그게 우리의 법칙이었다. 도둑질은 제이의 담당이었고, 싸움질은 맥의 담당이었다. 나는 가끔 밥을 했고, 어쩌다 몸을 팔기도 했다. 돈은 거의 내가 벌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모계사회라고 할 수 있었다.
맥은 싫어했지만, 우리는 돈이 필요했고. 우리는 너무 어려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없었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구원의 집으로 다시 끌려들어 가서 이번에는 발톱까지 모두 잘릴 터였다. 그래서 내가 돈을 벌어왔다. 제이는 내가 처음으로 남자와 자고 온 날 위로한답시고 내가 많은 남자와 잘 수록 좋다고 말했다. 건강도 좋아지고, 돈도 생긴다고 말이다. 여자로서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말했다. 특히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내가 열 개의 훈장을 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난 지금 대장이라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제이가 하는 말은 거의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그걸 좋아했다. 울기만 하는 맥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열일곱 살이 되었다.
그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아저씨가 나를 때렸다. 더러운 게 싫다고 했다. 그게 나를 향한 말이었는지. 아니면 침대 시트가 더러워지는 게 싫다는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를 화장실에 집어넣었다. 그 화장실도 싸구려 붉은색이었다. 아저씨는 나를 벽에 밀어 넣고, 내 뺨을 몇 번이나 내려쳤다. 입안이 터져서 피가 흘렀지만,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은 붉은색이었고, 내 피도 붉은색이었으니까. 내 얼굴은 점점 더 진하게 붉어지다 결국에는 파랗게 변했다. 고막이 찢어지고 온몸이 파랗게 멍들 때까지 아저씨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생각했다. 이대로 나는 스머프가 되는 건가. 온몸이 파라니까.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한 가지 일만 반복하는, 처맞는 일만 반복하는 스머프가 되는 건가. 아저씨가 세면대에 돈을 두고 떠났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혼자라는 건 좋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때리지 못하니까. 나는 스머프처럼 파란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맥에게 안녕, 나는 몸 파는 스머프야, 하고 말했다. 맥은 질질 짜기 시작했다. 맥은 내가 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울었다. 그리고 내가 맞고 돌아오면 더 심하게 울었다.
맥은 내 핸드폰을 들고 외출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제이가 맥을 찾으러 갔다 왔다. 며칠 동안 제이가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파란 얼굴로 동네 피시방을 모두 돌아다녔다.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오니 거기에 제이가 있었다. 제이는 내 핸드폰을 들고 돌아왔다. 맥은 소년원에 갔다. 맥이 나를 때린 남자를 불러내 칼로 찔렀다. 그런데 그 남자가 변호사였다. 그래서 맥은 소년원에 가기로 됐다. 맥이 없으면 나는 숨이 막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맥은 나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맥, 너는 실패했다. 나는 너 없이도 살았다. 너 없이도 잘만 살았다. 정말 상상도 못 할 걸, 내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맥은 가짜 바다다. 화창한 날 하늘이 비춰 파랗게 보였던 물은 뒷골목에 고인 시궁창이었다. 하지만 나는 길가에 내던져진,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잠시나마 살아있는 것도 다행인, 멍청한 물고기다. 그러니까 맥의 비린내에 기대서 숨을 쉬어야 한다. 제발, 제발. 하는 마음으로.
제발, 제발.
*
맥이 떠난 후 나는 맥을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이는 그런 나를 경멸했다. 멍청하고 이기적이라고 했다. 제이가 대신 일을 시작했다. 제이는 19살이 되어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제이는 일을 다니면서 매일 조금씩 나를 더 싫어하게 됐다. 제이는 나 때문에 맥이 잡혀갔다고 믿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제이는 나를 두고 친구들과 몰려다녔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했는데, 언제부턴가 제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제이가 일하던 술집에 찾아가니 제이가 원룸을 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클럽에서 문지기로 일한다고 했다. 이후에는 삼십몇 살의 조폭이 제이를 사랑해 준다는 소문이 났다. 몇 달 후엔 제이가 게이 바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즈음 나는 맥을 기다리지 않고 잘 살았다. 제이도 잘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잘 살아갔다. 다시 제이의 소식이 들렸을 때, 제이가 게이 호스트로 일하다, 고추를 자르고 트렌스젠더 바에서 일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다 오십 살 먹은 유부남이랑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둘이 헤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유부남이 다시 제이를 찾아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제이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을 들은 다음 날, 나는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었다. 나에게까지 차례가 넘어온 제이의 얼굴은 소문처럼 완전 여자 같았다. 하지만 고추는 붙어 있었다. 제이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탄 게 제이 식 자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절반만 믿기로 했다. 나는 늘 절반만 믿었다.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절반의 불행을 상상했고. 아무리 불행해 보여도, 절반의 행복을 상상했다.
*
그 일이 있고 삼 년이 지났는데도 맥은 여전히 소년원에 있었다. 맥을 찾는 건 쉬웠고, 맥을 만나는 건 조금 어려웠다. 겨우 만나게 된 맥은 여전히 맥이었다. 조금 키가 컸나 했지만 앉아 있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맥, 제이가 죽었어. 나에게 연락이 왔어. 제이 핸드폰에 여전히 내 전화번호가 있을 줄 몰랐어. 왜냐하면 제이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거든. 그리고 네가 떠난 후 제이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이해 못 하겠지, 우리는 가족이니까. 아니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헤어진 후에 제이를 만났다면 제이가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아직도 얼떨떨해. 전화가 왔고 내가 경찰서에 가서 제이의 시신을 확인했어. 불쌍한 제이. 완전히 뭉개졌더라. 교통사고였어. 헬멧도 쓰지 않고 120킬로로 달렸대. 오토바이를 타고 그렇게나 달리다니.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 그래서 얼굴의 반절이 뭉개져 있었어. 온몸이 찢어지고 뭉개져 있었어. 생각해 봐, 맥. 완전히 뭉개진 제이를. 아무도 오지 않았대. 제이의 친구도 애인도. 그래서 나에게까지 전화가 온 거야. 제이를 확인하고, 제이 시신을 어떻게 할지 정하라고 경찰관들이 말했어. 장례를 치러줄 건지, 아니면 무연고자 처리를 해서 공립 묘에 묻을지. 찾아봤는데, 공립 묘라는 건 없어. 그냥 공원 어느 한쪽에 뼈를 뿌리는 거야. 무수히 많은 무연고자 뼈 위로 제이의 뼈도 뿌려지는 거야. 우리 그거참 싫었잖아. 다 같이 자는 거. 한 방에 누워서. 감히 뒤척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나는 뭔가, 책임감을 느꼈어. 제이의 몸을 어떻게든지 내가 완전하게 만들어줘야겠구나 하고. 완전히 편안하게 해줘야지. 그래도 될까? 넌 어떻게 생각해, 맥.
경찰들에게 기다려달라고 했어. 많이 기다려주지는 못한대. 앞으로 제이의 몸은 어떻게 될까. 나는 요즘 매일 그걸 생각해. 넌, 아니? 아무런 연고도 남지 않은 몸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장례식을 치르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 땅에 묻는다던가. 하다못해 뼈를 갈아서 항아리 같은데 넣고 그 항아리를 다시 유리 사물함 같은데 넣는 것도 돈이 필요하더라. 하지만 나는 돈이 없어. 내일까지 장례를 치러주지 못하면 제이는 어딘가로 가버린대. 그래서 말이야. 맥. 미안해. 제이와 나와 맥 너는 한때 정말 친했었잖아. 우리 같이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는 했잖아. 내가 너와 제이를 위해서 나를 팔았잖아. 그러니까 돈을 빌려줘. 삼백만 원만. 혹시 괜찮다면. 알아들어?
응.
얼마나 남았어?
이제 삼 개월.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제이는 죽지 않았어.
소년원에 제이가 찾아왔었어. 그리고 나한테 고백했었어. 사랑한다고. 나는 미안하다고 했어.
네가 제이를 죽인 거야.
그래, 맞아. 미안해.
그딴 식으로 굴지 마.
그럼 어떻게 할까.
그게 왜 내 탓이야? 너 이상하다고 해. 내가 너를 원망하면 그렇게 대답해.
그래.
이제 우리뿐이야.
그러게.
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죽을 거야.
맹세할 수 있어?
응.
맹세해.
나는 네가 죽으면 죽을 거야. 죽어버릴 거야. 더 이상 살지 않을 거야.
시시하게 살고 싶다며, 계속.
아니야.
네가 옛날에 그랬잖아.
나는 너랑 시시하게 살고 싶어.
네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넌 거짓말쟁이니까. 넌 제이를 죽이고, 거짓말만 하는 세상에서 제일 못 대 쳐 먹은 애야.
착해질게.
아니야.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너를 원망하면 그게 왜 내 탓이야? 너 이상해, 라고 말하랬잖아.
알았어. 미안해.
씨발, 그 미안하다는 말 좀 집어치워. 널 보러 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지 마, 다시는 미안하다고 안 할게.
나는 있잖아. 늘 내가 도마 위에 물고기 같아. 살려고 온몸을 버둥거리는데. 숨이 막히고 죽을 것만 같아. 결국 누군가 내리친 칼에 목이 잘리고 내장을 토해내며 죽을 걸 아는데, 근데도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죽을힘을 다해서 움직이게 되는 거야. 제발, 제발. 하는 마음으로. 그런 마음은 너무 시시하잖아. 제발, 제발, 이라니. 너무 시시하잖아. 나는 그래서 사는 게 시시하다고 생각해. 맥, 그거 알아? 우리는 물고기야. 아주 오래전에는 바다에서 살았대. 그래서 사는 건 너무 숨 막혀. 구정물 안에서 부레를 부풀려봤자. 폐가 썩을 뿐이잖아.
도망치는 건 내 주특기다. 하지만 맥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맥은 도망가 버렸다.
맥. 제이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그리고 나도, 나도 너 때문에 죽은 거야.
면회실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와 복도를 내달렸다. 나는 달린다. 구름 낀 하늘에 회백색 도로를 달린다. 숨은 입으로 쉬어야지. 나는 입으로 숨을 쉬는 종족이니까. 나는 입을 크게 벌린다. 맥이 먼저 죽을지, 내가 먼저 죽을지. 궁금하지. 정말로, 궁금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궁금하지.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