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해상(下)

by 소진

다 왔다.


인영이 소리쳤다. 그건 내가 학교가 있는 뭍에 배가 도착하면 하는 말이었다. 나는 노로 돌을 밀어냈다. 배로부터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발끝이 축축했다. 배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삭은 배라 작은 충격이었음에도 어딘가 구멍이 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노를 저었다. 인영은 배 밑에 차오르는 물을 손으로 휘저었다. 나는 배를 가라앉게 한 그 돌에 배를 대고 인영에게 넘어가라고 했다. 인영은 순순히 일어나 돌 위로 넘어갔다. 작은 배가 휘청였다. 나도 일어나 인영이 있는 쪽으로 뛰었다. 그리고 다 삭은 노를 멀리 던져버렸다. 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곧 완전히 가라앉아 수면 밑에 희미하게 잔상으로 남았다. 우리가 서 있는 돌은 수면 위로 올라온 부분이 적을 뿐 수면 아래로 거대한 산처럼 쏟아있는 모양이었다.


인영과 내가 올라선 돌은 딱 우리가 타고 온 배만 했다. 먼 해안선을 모두 훑어봐도 바다에는 인영과 나뿐이었다. 아빠와 경찰들이 오늘 내내 섬 주변을 수색할 테니 기다리면 우리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수영해서 해변까지 가볼 수도 있겠지만 평생 그렇게 긴 거리를 수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간에 힘이 빠져 죽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인영은 수영을 못했다. 바위를 크게 둘러 앉은 팔이 저려올 때쯤 나는 주변을 보며 힘껏 소리 질렀다. 그러자 귓가에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시 반복해서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이어졌다. 문득 깨달았다. 메아리였다. 내 옆에 있는 아기 절벽에 부딪힌 소리가 돌아온 것에 불과했다. 인영이 바위를 부여잡고 있던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제 인영은 양발로 바위를 딛은 채 바위에 기댄 모양이었다. 인영은 가방에서 물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인영과 같은 자세로 몸을 움직였다. 반쯤 눕듯이 바위에 기대니 훨씬 나았다.


해가 바다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완전히 지기 전에 수색대에게 발견 당하길 빌었다. 절벽의 이곳저곳을 눈으로 더듬어보았다. 만약 절벽 주변의 돌을 밟고 가까이 다가간다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아빠.


인영이 말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이한 어조였기 때문에 나는 일종에 감탄사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인영이 돌 밖으로 발을 뻗었다. 인영의 가방을 부여잡았다.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등골이 서늘했다. 인영이 멀리 돌 사이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제멋대로 쏟아있는 돌 사이에 검은 것이 보였다. 꼭 쓰레기를 뭉쳐놓은 것 같기도 했고 사람이 엎드려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멀었고 바위로 가려져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저게 왜?


아빠가 저기.


인영이 손가락으로 아기 절벽 위를 가리켰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까마득히 멀고 높은 어딘가에 인영의 시선이 가 있었다.


할머니가 아빠 어딨어?


그리고 인영의 손가락이 천천히 검은 것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마치 포물선을 그리듯이 인영의 손가락이 밑으로 하강하다 검은 것에게 가서 멈췄다.


그래서 바다에 갔어.


나는 인영이 가리키고 있는 쪽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영이 가리킨 게 정말 한 씨 아저씨일까 봐 두려웠다. 인영은 검은 것에 가까이 가겠다고 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인영에게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영은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했다. 인영을 말리지 않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왔다. 그리고 인영은 그게 뭐든 확인할 자격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소풍가듯 가방 안에 집어넣은 물건들이 떠올랐다.


물 한 병, 과자 한 봉지, 노트와 펜, 반쯤 젖은 휴대용 휴지가 나왔다. 잡다하고 쓸모없는 것들만 잔뜩이었다. 실종된 아빠를 찾으러 가는 짐으로 뭘 챙겨야 할지 생각해 보면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하루동안 쓸 만한 것을 주워담은 것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물에 젖으면 무거워질 만한 것들을 꺼냈다. 그것들을 바다에 던졌다. 그렇게 하니 남은 것은 과자와 물뿐이었다. 인영에게 혹시 물에 빠지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떠오를 수 있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몸은 원래 계속해서 가라앉는다. 만약에 저기에 도착하기 전에 물에 빠지면 몸에 힘을 빼고 하늘을 보고 있으면 내가 가서 구해주겠다고 했다.


인영아.


준비를 마친 인영이 막 다음 돌을 향해 뛰려는데 내가 붙잡았다. 인영이 돌아봤다. 아직 인영은 떠나지 않았는데 괜히 가슴 한 켠이 쓸쓸하고 적막했다.


아빠가 맞으면 어떻게 할 건데?


인영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떻게 하는지 모를 때 인영은 그렇게 하고는 했다. 인영은 다음 돌을 향해 뛰었고, 다행히 돌을 붙잡았다. 천천히 인영은 나아갔다. 몇 번 물에 빠졌지만 가방이 구명조끼처럼 물 위로 떠올랐다. 검은 것에 다가갈수록 촘촘해지는 돌 사이의 간격이 인영을 도왔다. 인영은 팔 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돌 위에 서서 인영의 뒤통수가 바위 사이로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 씨 아저씨가 절벽에서 떨어진 것은 이틀 전이었다. 바닷속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은 이년과 같았다. 저 검은 게 만약 한 씨 아저씨라면 물고기 밥이 되어 옷만 남았을 것이고, 아니라면 우리가 바닷가를 걸어오면서 보았던 것과 같은 쓰레기 더미일 것이다. 절벽을 살폈다. 해조류가 자라있는 높이를 보니 내 키보다 훨씬 높게 물이 차오를 모양이었다.


나도 움직였다. 해가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수면이 올라왔고, 어느새 물이 바위 위로 침범해 들어와 발 주변에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에 내가 오를 수 있을 만큼 완만하고 높은 바위를 점 찍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쏟아있는 돌 두 개를 넘어야 했다. 물에 뛰어드는 데 그리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인영은 이걸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솟아있는 돌을 하나씩 잡고 밀어내며 나아갔다. 바위틈 사이사이로 들이치는 파도를 몇 번 잘 못 들이켰다. 입안에 짠맛이 잔뜩 고였다. 나는 세 번째 바위를 부여잡고 반 바퀴를 돌아 내가 가려고 했던 바위에 도착했다. 내 생각보다 힘들게 바위를 기어올랐다. 두 개의 바위를 넘어오며 몸에 힘이 빠져서 그랬다. 물에 젖은 몸은 인영과 함께 뒤집은 배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바위 위로 몸을 올리고 그 위로 더 기어올라가자 다시 바다로부터 멀어졌다.


만약 해가 다 지도록 구조되지 못한다면 나도 인영이 간 길을 가야했다. 절벽을 기어오르려면 검은 것이 있는 쪽으로 가야 했다. 그 부분만 오르기 좋게 기울어져 있었다. 해조류도 잔뜩 붙어있어 잡을 것도 많아 보였다. 중간부터는 꺾여있어서 더 오를 수 없겠지만 일단 바닷물이 안 닿는 어디든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을 찾는다면 하루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만약 검은 것이 인영의 아빠라면 나는 그걸 볼 자신이 없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인영이 어서 도착해 그것이 흔한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서야 나는 인영이 목적지에 거의 다가섰음을 알았다. 만조가 시작되며 파도가 좀 전보다 거세졌다. 돌 사이사이로 천천히 스며들 듯이 움직이던 파도가 이제는 돌을 잡아먹을 듯이 거칠어졌다. 나는 몸을 숙이고 내가 올라선 돌을 부여잡았다. 인영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같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검은 것이 움직였다.


나는 내가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파도에 밀려 움직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달팽이처럼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적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인영이 마침내 목적했던 바위에 올라섰을 때 그건 돌 위에 아주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만약 사람이라면 전에는 상체가 다 올라와 있었고, 이제는 머리만 남아있는 것이다. 인영이 휘청거리며 검은 것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대부분이 인영에게 가려져 나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인영의 젖은 몸을 바라보았다. 인영이 그만 돌아오길 바랬다. 그러나 인영은 몸을 굽히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이제 손을 뻗으면 검은 것을 만질 수 있을 터였다. 인영은 그것을 보다 문득 나를 돌아봤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파도가 인영의 몸을 덮쳤다. 파도가 물러났을 때 거기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나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며 두 손으로 돌을 부여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차가운 물에 온몸이 떨렸다. 이대로는 물에 빠져 죽는 것보다 얼어서 죽는 게 빠를 듯 했다. 바다는 점점 짙은 색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늘은 검붉은색으로 역광을 받아 꼭 피를 뒤집어쓴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춥고 졸렸다.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서 큰 북을 두드리는 듯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도 소리를 들은 듯 빠르게 파도를 밀어붙였다. 나는 얼굴 가까이 튀는 물방울에 눈을 꾹 감았다.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아빠를 보러 항구로 달려갈 때마다 듣곤 했던 익숙한 뱃소리였다. 배가 오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한 손을 마구 휘저으며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올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소리 질렀다. 내가 여기 있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어른들이 나를 끌어올리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난로를 가지고 와 앞에 놓아주고 따뜻한 물을 마시게 했다. 어쩌다 거기에 있었던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쩐지 입이 딱 붙어버려 한참 후에야 배가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돌에 부딪힌 배가 가라앉아버렸다. 그게 전부였다. 그저 바닷가에 버려진 배를 발견했고, 녹이 잔뜩 슬어서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었던 그 낡은 배를 탔다. 나는 어른들에게 인영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배에 대해서만 말했다.


내가 보살핌에 둘러싸여 항구로 돌아왔을 때, 바다는 온통 짙은 남색으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어졌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굽이진 언덕을 올라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막 저녁을 먹으려는 참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꼴이 왜 그래?


엄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큰 상의 가득 채운 채, 서로의 팔을 부딪혀 가며 밥을 먹었다.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이 데이며 나는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몸에 큰 구멍이 생긴 것처럼 허기가 졌다.


인영의 할머니는 첫째 아들마저 잃어버린 후 시름시름 앓다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인영이 사라진 사실은 아주 나중에서야 알려졌다. 누군가 나에게 같이 다니던 친구는 어디 갔냐고 물으면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웃어 보였다. 내가 살던 바닷가 마을엔 바닷바람이 밤이고 낮이고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두려워하며 자랐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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