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낮게 나는 비행기 上

by 소진

얼마 전부터 좋아하게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여자고, 나도 여자다. 마음을 참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서 SNS라도 찾아보고 싶다. 우리는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곳에서 일한다. 그녀는 일층에서 일하고, 나는 오층에서 일한다. 그녀는 버스에서부터 사원증을 걸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걸어가서 뒤돌아 사원증을 보고, 이름을 알아내면 된다.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모든 일을 버스정류장부터 일층 로비로 향하는 길, 백오십 미터 거리 안에서 어떻게든 해내야한다. 모든 게 너무 어색해서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려는 걸 알아버릴 것만 같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때, 무난한 주제는 날씨와 식사다. 오늘 날씨가 좋죠? 이제 완전히 여름인가봐요. 식사하셨어요? 저는 이따 나가서 먹으려고요. 이건 약속된 만남에서의 경우다. 아무런 접점도 없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얼마 후부터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녀의 성격에 대한 여러 가지 경우를 만들어서 가상의 대화를 한다.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대화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녀는 무뚝뚝하거나, 친절하거나, 활발하거나, 음침하거나, 겁이 많거나, 대범하거나, 다정하거나, 순수하거나, 치졸하거나, 예의바른 사람일 수 있다. 결국은 다시 두 가지, 그녀는 나와의 대화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난 여자니까 상황이 났다. 적어도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말을 건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와 같은 성별만으로 친절한 대답을 기대해볼만 했다. 내가 저기요, 하고 말을 걸면 뒤 돌아서 나를 볼 것이다. 여기 인사부가 어딘가요? 괜찮은 생각 같았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모두 조합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하는 경우는 길을 잃었을 때, 그마저도 회사 내에서 길을 잃었을 때뿐이다. 더군다나 나는 인턴이라, 아직 회사 지리에 익숙하지 않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다. 인사부는 3층이었다.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1층으로 사라졌다. 3층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에 운동 삼아라도 애매한 거리다. 말을 걸고 마주 본 후 이름을 쳐다보면 많이 어색하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조금 이상해보이지만,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문제가 생겼다. 언제 말을 걸어야하는가? 출근 시간은 안 된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일하는 미친놈은 없다. 그 질문이 자연스러운 경우는 우연히 회사 안에서 마주쳤을 때. 아니면 퇴근 시간. 결국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또는 한 쪽이 간절히 상대를 필요로 해야 한다.

간절히, 얼마나 간절히 원해야 상대방이 나의 필요를 들어줄까.


나는 소위 말하는 중고 인턴으로, 이번 인턴을 합쳐 인턴만 다섯 번째였다.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여섯 달까지. 이년동안 인턴생활 중이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성별이나 나이같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리는 게 없어졌다. 전에는 입에 대지도 못했던 콩비지 찌개도 잘 먹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삼차까지 따라가 술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모두 다 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뭐라도 그렇게 많이 하면 적당히 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 정도하는 사람이라 안되는 걸까. 첫 번째 인턴에서 나는 내가 분명히 그 회사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내 온 하루를 회사에 받쳤다. 점심시간에 일하는 미친 짓도 했다. 모두 내가 가장 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막바지에는 회사 주변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며 지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이지수가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 이지수는 당돌해서 사회생활을 못한다고 뒷말이 나왔던 친구였다. 후에 알고 보니 회사 사장의 아내의 언니의 자식 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네 번, 나는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붙었다. 처음에는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주가 문제인가해서 이름을 바꿔서 액땜을 해볼까 생각했다. 세 번째 인턴생활 중에는 타로, 사주, 손금, 관상을 보는데 버는 돈을 거의 다 썼다. 결국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력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단순히 운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다.


그녀를 처음으로 본 건 인턴으로 뽑힌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사장이 계약직 사원들을 소집했다. 사장은 회사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명목 하에 권장 같은 지시사항을 내렸다. 큰 회의실에 모여서 지루하고 알 수 없는 연설을 들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배치의 회의실이었다. 중앙을 비워두고 테이블이 둥글게 한번, 더 크고 둥글게 한번 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요할수록 작은 원에 앉았다. 나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가장 끝에 앉았다. 사실은 모두 벽에 서 있기를 원해서 자리가 많이 비었다. 우리 보다 높은 직책의 사람이 일어나 손수 한명씩 가리키며 여기 앉으세요, 여기 앉으십시오, 해서 채워졌다. 그 중에 내가 걸려서 앉게 된 것이다. 나는 못 알아듣는 채 하며 몇 번이고 가슴에 손을 얹고 네? 하고 말했지만 결국 끌려가서 앉았다. 회사의 임원은 자꾸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하면 아주 좋다고 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전부터 내 반대편에 앉아있는 여자가 자꾸만 보였다. 너무 예쁘네. 그렇게 생각했다. 시선을 도무지 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참아보려고 했는데, 자꾸만 쳐다봤다. 주변을 부산스레 두리번거리는 척하면서 계속해서 쳐다봤다.


그 사람은 긴 생머리에, 늘 치마를 입었다. 베이지색, 핑크색, 흰색이다. 주로 베이지색을 입었다. 가끔 머리띠를 하거나 반 묶음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슴 밑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였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같았다. 귀걸이를 했다. 목걸이나 반지는 끼지 않았다. 두발자국 밖에 서 있어도 그 사람이 뿌리는 향수 냄새가 났다. 독특한 향은 아니고, 흔한 꽃 향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살 냄새와 섞여서 그럴 듯했다. 언제나 무언가를 잔뜩 짊어지고 출근하는데, 기본적으로 큰 가죽 쇼퍼백을 매고, 종이 가방을 하나 들었다. 물건들이 밖으로 조금씩 비어져나와있다. 걱정이 많거나,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종이 가방 안에는 도시락이 들어있다. 웃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얼굴을 보는 것이 늘 출근길이라 그럴 것이다. 웃는다면 오호호, 보다는 아하하, 하고 웃을 것 같았다. 키는 160이 조금 안됐다. 전체적으로 깡마르기보다 통통했다. 새침하기 보다는 새초롬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목소리는 몰랐다. 나는 그 사람이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 전에도 그런 타입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때는 중구난방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이상형이 좀 분명해졌다. 나는 똑똑하고 당찬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이지수도 좋아했다. 이지수와는 친해지는 것에 성공해서 한동안 잘 지냈다. 이지수는 첫날 부장의 칭찬에 말대꾸를 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혼자 회식을 빠진다던지, 맡은 프로젝트에서 자기 의견을 고집하느라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 했다. 다들 점점 이지수를 은근히 따돌렸다. 나도 그랬다. 아무도 없을 때는 이지수에게 친근하게 굴었지만, 누가 있으면 이지수를 모르쇠했다. 인턴 생활이 거의 끝나갈 때쯤 한번 이지수가 모두의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친한 척 했다.


지옥아, 오늘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너무 늦게,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그래, 하고 말했다.


가기 싫으면 말하고.


나는 또 너무 늦게, 그리고 작게 대답했다.


아니야.


이지수는 됐다, 고 말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회사에서 이지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만. 어색해하며 자리를 피한 건 나였다. 나는 쉼 없이 일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생각이 복잡해질 쯤 생각을 그만뒀다. 대신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하면서, 지적을 듣지 않고, 돈은 많이 받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세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것이 내가 살아오는 동안 늘 고민하는 것이다. 돈을 주는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서, 나는 늘 빠르게 정리 당해버린다. 이번에도 기간이 다 차는 날 잘릴 것이다. 그러면 한 달 정도 집에 박혀서 잠을 자고, 술을 마시면서 계획을 세웠다. 벌어둔 돈을 얼마나 오랫동안 헐어가면서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쯤에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가야하는지.


결론은 나에게 한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딱히 특별하지 않은, 다들 갖고 있는 그냥 그런 스펙. 아무래도 그래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게 아닐까. 남들만큼 간절하고 남들만큼 잘하니까. 눈에 띄지가 않는 게 아닐까. 하지만 특별한 건 어려웠다. 남다르지만 대중의 입맛에 맞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계약직의 근무시간은 협의, 임금도 협의였다. 협의라는 건 임금 뒤에 붙으면 적다는 뜻이고, 근무시간 뒤에 붙으면 길다는 뜻이었다. 제발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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