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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나 Sep 09. 2021

계족산 황톳길 송충이 전쟁

송충이랑 친해지긴 멀었다.




아직은 송충이를 만나기 전 즐거웠던 한때





  계족산 황톳길에 다녀왔다. 

 엄마, 아빠와 함께 다녀온 계족산 황톳길.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건강을 챙기는 시도를 하는구나.


 오전 6시에 출발하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나름 전날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지만 역시나 아침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제쯤 아침잠이 없어지는 걸까?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들 하던데. 아직 젊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는 걸까.


 결국 오전 7시가 돼서야 집에서 출발한 우리는 2시간이 조금 안 되게 걸려 계족산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계족산 황톳길의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다. 갈 때는 아무렇지 않게 갔던 길이 내려올 때는 힘이 들어 아까 이런 길도 걸어왔었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 길조차도 길게 느껴졌다. 황톳길이 끝인 줄 알았는데 차까지 아직 더 남았구나?


 좋음과 힘듦은 함께할 수 있기에 좋았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처음 황톳길의 시작에 도착했을 때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무도 황톳길을 올라가고 있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두 그 옆의 흙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왠지 모두가 신발을 신고 걷는 와중에 우리만이 신발을 벗고, 양말마저 벗어재낀 채 맨발로 걷는다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마냥 배덕감이 스믈 거리며 올라왔고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러웠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핑계로 그냥 신발을 신고 올라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이 영 상상이 가지 않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황톳길을 걷기 위해 2시간이나 걸려서 왔거늘.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결국 황톳길 근처에 앉아 무거워진 손을 놀리며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여기가 우리 집 안방도 아니고 이렇게 맨발로 다녀도 되나. 


 아무도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지만. 오히려 맨발로 걸어보세요, 같은 말이 써져있지만.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 신발을 벗은 곳에서 황톳길로 가는 길목은 생각보다 발이 아팠다. 맨발로 땅에 걷는 것이 내 상상보다 더 발이 아픈 일이구나. 커다란 지압판과는 또 다른 작지만 불편한 아픔이었다. 


 황톳길을 걷기 시작하며 엄마는 황톳길이 아닌 산길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며 족저근막염에 걸리신 분들이 그러고 나서 괜찮아지신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 엄마의 요가 선생님이 한때 맨발로 산에 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렇구나, 하고 들으면서도 믿기 어려울 만큼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를 믿지 않는 건 아니다. 사실임을 알고 있다. 실제로 등산을 가면 맨발로 걷는 분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 잠깐 사이에도 격하게 느꼈는데 도대체 어떻게 맨발로 다니실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도 언젠가는 자처해서 맨발로 산을 걸어 다니는 날이 올까.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르지. 나는 내가 성인이 되는 날도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황톳길은 처음에는 꽤나 단단해 크게 좋은 것도 색다른 느낌도 사실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걸으면서 어딘가 몽글몽글한 지점에 도달하면서 나의 기분 역시 몽글몽글하게 좋아졌다. 마치 어린 시절 갯벌에 들어간 느낌이기도 했고 찰흙놀이를 하는데 엄청 많은 찰흙을 사서 마구 밟아대며 노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지만 이제는 아이가 아닌 나도 좋아했다.


 길은 적당히 단단하며 말랑하기도 하고 좀 더 단단해지기도 하고 조금 더 질척이기도 했다. 질척이는 곳에서는 발이 푹푹 빠지기도 했는데 그게 조금 설렜다. 발가락 사이로 올라오는 황토의 느낌과 발가락 사이로 황토를 뿜어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이상하고 웃겼다. 


 맨발로 걷는 것은 생각보다 아프기도 했지만 확실히 발에 열감이 훅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황톳길은 미끄러운 탓에 빨리 걷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원체 빨리 걷는 편도 아닐뿐더러 부모님보다도 체력이 약했으니까. 특히나 완만한 길이었기에 좀 더 황토를 밟는 재미를 느끼며 천천히 나아갈 수 있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며 웃고 떠들며 나아가던 중 문제가 생긴 것은 송충이 때문이었다. 여름, 벌레가 많은 계절, 그리고 산. 송충이는 산의 식구였고 나는 그 산에 놀러 온 사람으로서 많은 송충이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송충이가 산의 식구라는 것은 알지만 송충이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서워하는 사람이지. 맨발로 걷는 도중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송충이를 마주치는 일은 내게 놀이공원 같던 황톳길이 지옥 길로 변하는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송충이를 예상치 않게 마주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왔고 온 몸에 송충이가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다. 겨우 송충이를 무서워하는 내가 싫기도 했다. 재밌게 잘 가고 있다가 이렇게 된 게 어쩐지 서럽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가 앞서가며 발견하는 송충이를 내 눈에 안 보이게 밀어줬지만 그들은 그들이 가던 길을 계속 갔을 뿐이고 나는 계속 송충이를 마주쳤다. 깜짝 놀라는 탓에 주위 분들이 더 놀랐겠지. 죄송합니다. 

 엄마의 표현으로는 초등학생처럼, 유치원생처럼 눈물이 차올랐다. 공포는 극에 달했고 스스로 감당할 수 범주를 넘어버린 탓에 정신은 피폐해졌다. 이렇게 글로 쓰면서도 부끄럽게도 나는 나아가던 길의 중간에 멈춰 서서 울음을 터뜨렸다. 울다가 그럼에도 나아가다가 또다시 송충이를 만났다. 결국 그렇게 두 번은 울었던 것 같다. 너무 힘든데 발을 씻는 곳은 이미 지나왔고 다음 씻는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겠는 상황에 같이 온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게도 집에 가고 싶다며, 송충이가 너무 싫다며 투정을 부렸다.


 결국 중간에 서서 물티슈로 대충 닦고 신발을 신었다. 

 신발을 신는 순간 웃기게도 그 얇은 신발 하나에 안정감이 올라왔다.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나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안전하지 않았던 게 아니고 지금도 송충이가 없어진 게 아닌데.


 물론 신발을 신고 보는 송충이도 무섭고 싫었지만 아주 살짝 깜짝 놀라고 피해 갈 수 있었다. 맨발로 만난 송충이는 근처도 지나갈 수 없었다. 마치 송충이가 커다란 괴물처럼 근처만 지나가도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엄마는 송충이가 자신을 괴물 취급한다며 나를 본다면 상처를 받을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송충이가 무서웠다. 걔도 내가 무서웠겠지. 내가 걔를 못 보고 잘 못 발을 디디기만 해도 걔는 목숨을 잃는데. 내 마음을 안다면 내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신발을 신고 나서는 마치 날아갈 수도 있을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마구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에 휩싸였다. 애초에 몸이 그렇게 힘든 코스가 아닌 마음이 힘든 거였기에 그 마음이 괜찮아졌으니 당연한 걸 수도 있겠다. 


 계족산 황톳길은 전부 돌면 14.5km의 코스로 둥글게 한 바퀴를 돌기 때문에 쭉 앞으로만 가면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꼭 전부 걸을 계획은 아니었기에 임도삼거리에 도달한 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14.5km는 굉장히 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어차피 어느 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거리는 두 배가 되고 완주하는 코스는 한 바퀴를 돌아서 돌아올 수 있으니 힘든 길은 아니라 완주를 하는 것도 생각보다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물론 다음번에는 신발을 신고 걷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내려오는 동안 내 생각보다 꽤나 많이 걸었다는 생각을 했다. 황톳길을 처음 밟았을 때는 황토를 밟는 신기함에 푹 빠져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흥분해 있었고 그 뒤에는 송충이를 신경 쓰느라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며 신발을 신고 난 뒤에는 해방감에 신이 나 있었는데 어느 정도 피로가 쌓인 뒤에 왔던 길을 돌아가니 분명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산에서 내려와 보리밥집에 가서 보리밥과 청국장, 도토리묵을 먹었는데 특히 진한 도토리묵이 일품이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내리기 시작하는 비에 딱 맞게 맞춰서 잘 다녀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 우리가 내려올 때 올라가던 꽤나 많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같이 온 강아지들이 비에 맞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걱정한 거에 비해서 비는 많이 오지 않고 지나가는 듯했지만 2시간이면 왔던 길을 돌아갈 때는 4-5시간가량 걸려서 돌아왔다.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2시쯤에 출발한 것치곤 굉장히 차가 막힌 날이었다. 사실 그걸 힘들다고 하기에는 갈 때도 올 때도 잘 자면서 온 딸이라 나는 할 말이 없지만. 아빠가 걱정되었다.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은 정말 사실이었는데 웃기게도 잘만 쉬면서 온 내가 골반이 아파왔다. 다리도 아니고 골반이 아프다니. 운동을 한참 안 하다가 요 근래 다시 시작했는데 안 하던 사이에 몸이 어딘가 많이 틀어지고 안 좋아진 게 분명했다.


 송충이……는 아직 이겨낼 자신이 없지만 건강해야지. 건강해서 비록 나는 푹 쉬면서 밥 얻어먹고 온 거밖에 없지만 이렇게 엄마, 아빠와의 시간도 더 많이 보내야지.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가 사준 것 보다 더 많이 맛있는 밥을 사드리고 엄마, 아빠를 차에 태우고 더 많이 좋은 곳에 같이 가야지.


 그러니까 엄마, 아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랑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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