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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나 Feb 06. 2022

퇴사 의사 전하기

퇴사하겠다고 말하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네, 죽겠어요.




 “저 그만둘게요.”


 퇴사 의사를 전하는 이 간단한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가. 대단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내가 그만둔다고 해서 이 직장에 영향을 끼칠만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결심한 순간부터 어쩐지 커다란 짐을 진 듯 온몸이 무거워진다. 묵직한 짐을 짊어진 채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TV 속 웃긴 방송을 보며 웃을 때도 어딘가 불편한, 온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차라리 빨리 출근을 하여, 빨리 이야기를 하고 이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영원토록 출근하는 시간이 오지 않아 이야기를 할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으면 하기도 하며, 갑작스레 묵직하게 나를 짓누르던 짐이 불기둥처럼 쏟아 올라 타오르며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직장을 그만두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그만두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의 끝에는 내가 더욱 행복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 의사를 전하는 그 짧은 순간의 부담감에 못 이겨 그냥 퇴사를 하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의 부담감에 시달리는 내가 싫다. 

 회사에서 본인들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 역시도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내가 세상 누구보다 소중하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를 위한 선택을 두고 소중하지도 않은 이들을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결국 이 부담감을 이겨내고 퇴사 의사를 전하고야 말 것이지만 나를 위한 선택을 행동하는 것에 이리 힘들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그만둔다고 해도 사실 회사는 조금 귀찮을 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 내가 그만두면 회사가 큰일 날까 봐, 회사 걱정을 해서 퇴사 의사를 전하는 것을 걱정하여 힘들어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를 다니는 도중에야 기왕이면 열심히 하면 좋고, 회사도 잘되면 좋다.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도 죄송하고 싫다. 그렇지만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사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실은 나 자신이 아니고서야, 나의 소중한 이들이 아니고서야, 별 관심이 없다. 당연히 그들을 일부러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고 기왕이면 다 같이 잘되고 편안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남에게 별로 큰 관심은 없다. 그들이 알아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할 뿐. 게다가 심지어 그런 관심 없는 이에게 소중한 나를 희생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냉정하고 누군가는 이기적이고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솔직한 내 마음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며,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퇴사 의사의 말을 꺼내는 것은 이렇게 힘든 걸까.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고 실제로 막상 사실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느끼지도 않으면서 왜 마치 죄를 진 것처럼 나 자신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게 되는 걸까. 

 퇴사 의사를 전한다고 해서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다회의 경험으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쉬운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붙잡으실 수도 있고, 그저 시원하신 태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사실 막상 이야기하고 난 뒤에는 내게 그들의 반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이 뭐라고 한들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건 내 자유고 나를 위한 생각과 판단을 그들이 막는다고 한들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 사실 죄책감이라는 말이 웃길 정도로 남 생각을 안 하면서 말을 꺼내는 그 순간만이 힘들다는 것에 더욱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왜, 도대체 왜 힘든 걸까. 사실 여전히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왜 힘이 드는 건지. 그러나 추측하기로는 아마 내가 남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남에게 보이는 나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내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남의 시선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나는 분명 남이 중요하지 않고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인지 나는 남이 보는 나조차도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있다.

 남이 보는 나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하고 싶은 욕망. 내가 의도한 모습으로 남이 나를 생각했으면 하는 욕망.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내 의도를 꼭 알아주리라는 법도, 의도대로 여겨준다는 법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고 내가 의도한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남이 생각한다는 생각이 끔찍하다.

 사실 남들은 내가 그만두는 거에 내가 남들에게 그렇듯이 아무런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욕을 하지는 않을까, 사실 상관은 없긴 한데, 욕해도 그만둘 거지만, 막상 이야기를 꺼내고 난 뒤에는 그러든 말든 하고 신경 쓰지도 않을 거지만, 정확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 그 상상이 제일 괴롭다. 막상 내게 욕을 한다면 내가 더 황당해하며 그 사람을 욕할 거지만 그 상황이 닥치는 것보다 그 상상을 하며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감정들을 혼자 상상하는 것이 제일 괴로운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런 내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고, 생각을 하고 사는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꽤나 사랑한다. 

 그렇지만 혼자만의 생각 끝에 괴로워하고, 심지어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일도 흔한 나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 하곤 한다. 퇴사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가 맞다고 생각하기에 결국 퇴사를 하지만 아직 시도해보지도 않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퇴사의 말을 꺼내는 것처럼 괴로워하며 결국은 해내는 것이 아닌 상상만으로 이미 시도하고, 종료하기도 하곤 한다. 퇴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무리 온갖 상상으로 말하기 이전부터 말하는 게 고통스러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맞는 것처럼, 막상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실은 그것들도 실제로 해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전혀 다르고 내가 그저 겁먹은 걸 수도 있는데. 심지어 그것들을 시도한 뒤에도 나는 실제로 그것을 하고 있는 나를 보기보다는 머릿속에서 나를 상상한 나를 보며 겁먹고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나는 생각보다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고 그런 나를 좀 더 믿을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그러한 생각들 끝에 또 다른 삶을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그 두려움 끝에서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 그렇게 겁먹고, 포기하고 나서도 돌아 돌아 결국 그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 이상 다시금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더는 나를 성찰하기보다 내가 아는 나를 믿고 응원해주자. 


 어차피 할 퇴사 의사 전하기, 좀 더 당당하게 하자. 나를 나 자신이 단단히 믿고 어떠한 이야기를 펼쳐야 남들 또한 더욱더 그런 나를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내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남의 눈치만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남이 나에게 설득될 수 있겠는가. 잘못한 일이라곤 전혀 없는, 그저 나의 사정에 의해 퇴사를 하겠다 이야기를 할 뿐인 일을 가지고 죄진 사람처럼 가서 말하면 상대방도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잘 마무리 짓고 나오면 되는 것을.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오버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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