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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Jan 06. 2023

강식당 보다 양수 터진 썰

나의 출산 일기


교습소 정리 후

갑자기 출산하게 되었다.

새벽까지 같은 건물의 선생님들과 이별 파티 겸 출산하기 전 수다를 떨다 들어왔다.

낮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배가 뭉치고 아파올 때가 있었다.

산통이라 생각도 못 했다.

진통이 시작되면 죽을 만큼 아프다는데

난 살짝 기분 나쁠 정도만 아팠다.

그리고 출산 예정일이 한 달이나 넘게 남았기에

더더욱 진통이라 생각을 못했다.


고요한 새벽,

신랑은 잠이 들고

난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폰으로 신서유기 찾아보았다.

출처:

https://m.etoday.co.kr/view.php?idxno=1582612


https://tvgeneration.tistory.com/m/6


신랑이 깰 까 조용히 낄낄 거리며 보다가

강호동 님과 이수근님등 멤버들이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는데 너무 웃겼다.

웃음을 참다 갑자기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신랑은 신서유기 재방하면 꼭 이 날일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좀 웃긴 일이다.]

침대에 일어나자 바로 뭔가 쏟아졌다.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난 침착했다.

이런 경험 처음인데도

너무 침착했다. 조용히 신랑을 깨우고 산부인과 응급실 갔다.

산모가 침착하자

의료진들도 신랑도 안심했다.


아이 심박수가 느려지는 듯했으나 다시 진정되었고

새벽인지라 아침이 될 때까지 분만실에서 아이 심장 소리 들으며 누워있었다.

신랑은 옆 소파에 뻗어 자다

간호사가 밖에 눈이 온다며 안 창문을 열어 보여주자 깼다.


엄마가 나를 낳을 때도 부산에 폭설이 내려

택시를 잡을 수 없자 수레에 올라 병원에 갔었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역아로 태어나 엄마와 내가 생명이 위험했었다는데

나도 그러면 어쩌지... 겁이 났다.

하지만 겁먹은 티를 내지 않았다.

태연히 눈을 보며

"눈 오는 날엔 핫초코 마셔야 하는데..." 하며 혼잣말을 하자 간호사가 피식 웃었다.

무통 주사를 놓아주어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이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리도 저리고 골반이 틀어진 거 같아 일어나 걷고 싶었다.


9시가 되자 의사 선생님도 오시고 엄마도 왔다.

"12시까지 더 지켜봅시다."

이 말만 남기고 의사 선생님이 나가셨고 난 또 방치되었다.

엄마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날 마사지 해주었다.

마사지해 주며 엄마가 혼잣말을 했다.

귀를 기울여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나쁜 건 저에게 주시고 아이랑 내 딸 건강히 출산하게 해 주세요."

이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닌가...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에게 말을 걸면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올까 봐 차마 말을 걸지 못했다.

좀 진정되었을 때

신랑에게 미리 사놓은 출산 가방 가져오라 시켰다.


진통도 못 느끼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또 무통주사를 놓았다.


아이가 나와야 하는데 의사 선생님 신호 할 때 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주사 때문인 건지 내 배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산모님 변비 때 대변 눈다 생각하고 힘을 줘보세요."

"저 살면서 변비 겪어본 적이 없어요."

그 긴급한 상황에 나의 대답에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빵 터지고 말았다.

"저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고 배에 힘을 못주겠어요 전 힘을 준다고 주는데 힘이 안 들어가고 힘을 못 내겠어요. 저 정신이 몽롱해져요."

"산모님 출혈이 많아요."

긴급한 상황이었던 건지

간호사가 배드에 올라와 내 명치에서부터 배 쪽으로 밀어냈다. 뱃속에 아이가 밀려 나오라는 듯 밀었다.

너무 아팠다.

신호에 맞춰 힘을 주지도 못하니 누를 수밖에 없었나 보다.


분만실 밖에 동생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아기 나왔어?"

이모 목소리 듣고서야

너무 작은 아이가 나왔다.

2.5 kg 도 안 되는 아기


"이래 조그만 아기를 커다란 아기 낳듯 힘들게도 낳았네. 나중에 배랑 가슴 쪽 아플 거예요."


아기를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작은 아기

얼굴이 진짜 주먹만 했다.


뭔가 애가 파랗게 보였다.


엄마가 다시 들어오고 날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보자 나도 눈물이 막 쏟아졌다.


1인 병실이 없어 계속 분만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룸 정리되면 입원실로 갈 수 있는 상황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다.


엄마에게 마실걸 달라고 하고

한 입 마시는 순간 올라왔다.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병실로 가기 위해

휠체어에 앉으려는 순간 난 기절했다.


온 세상이 하얀 공간이었다. 굉장히 고요했다.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그 공간에 있었다.

여긴 어디지?

텅 빈 하얀 공간을 돌아다니다

갈색의 작은 문이 보였다. 문고리를 잡고 열어보려는 순간


 문 쪽이 아닌

내 등 뒤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마구 들렸다.

난 문 다 뒤돌아봤다. 문 앞에 풍경도 살짝 보았다. 문을 열었으나 들어가지 않았지만

느낌 상 거기로 들어갔다면 한참 깨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정신 차려졌다.

엄마 아빠가 날 마구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난 입원실에 도착했었는데

침대에 누워야 하는데 내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목소리를 듣고 난 정신 차릴 수 있었다.


신랑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입원실로 옮기는 사이

아이는 대학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되고 있었다.


파랗게 보이던 아기... 문제가 있었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서 점심시간 신생아 실 돌아보다 울 아기 상태를 보았고 긴급 이송되어 살릴 수 있었다.


내가 기절한 동안 아이도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피가 나면 지혈이 잘 되지 않다 보니...


아이가 대학병원에 가고 있단 소식과 함께 또 쓰러졌다.


한참을 하얀 세상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신비로운 공간에선

아무런 소음도 고통도 걱정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평안했다. 이번엔 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문득 또 여기에 왔네? 하며 생각이 드는 순간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난 다시 눈을 떴다.




신랑은 홀로 대학병원에서 아이가 잘못될까 너무 겁이 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살면서 제일 많이 무서운 날이었다며 아이가 아플 때마다 생일 때마다 우린 이 날 일을 이야기한다. 또 신서유기 볼 때도 이야기한다.


곧 아이 생일 우리 부부는 또 추억하겠지. 그리고 의료진들께 감사함을 올리겠죠.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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