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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Feb 26. 2023

콧물이 나면 콩나물 시럽

대대손손 내려오는 레시피

어릴 때부터 코감기 걸리면 엄마는 항상 콩나물 시럽을 만들었다.

난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

콩나물 특유 냄새가 거부감이 들어서 마시기 전까지는 인상을 썼지만

막상 마셔보면

의외로 맛이 달달하고 좋아 단숨에 꿀꺽 마셨다.

하루 이틀 콩나물 시럽을 마시고 나면 거짓말처럼 코감기가 나았다.


어릴 적부터 병원에서 약을 지어오면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따갑거나 매스꺼워지는 경우가 있어

정말 순한 유아용 물약이 아니면

이렇게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약을 먹어야 했다.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음식이자 약인데

친구들에게 말해주니 생소해했다.


아이가 코로나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와중에

어제부터 코감기 증세가 왔다.


어제 오후부터 컨디션이 쳐지더니

콧물이 줄줄 나오고

밤에 잘 때도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오니

찡찡거리다가 울음이 터졌다.


오늘 오전 내내 찡찡거렸다.

집에 있는 코감기 약을 먹어도

딱히 효과를 못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트에서 콩나물 봉지를 보는 순간

아! 하며 떠올랐다.

콩나물 씻고 콩나물 대가리(자엽)를 다 떼어내고 하얀 배축과 뿌리 부분만 가지고 시럽을 만들 준비를 했다.


엄마에게 이게 맞는지 사진 찍어 보내는 여기에 설탕 더 뿌려주라고 했다. 총 4숟갈의 설탕을 뿌려 만들었다.

흑설탕을 얼마큼 뿌려야 할지 몰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콩나물에 고춧가루 무쳐 반찬 만들듯 무쳐주라고 했다.

전기밥솥에 보온 모드로 2시간만 그대로 두면 된다. 콩나물 양에 따라 다르지만 2~3시간 두면 된다. 절대 중간에 뚜껑을 열면 안 된다. 콩나물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너무 간단하게 아이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음식이었다.


두 시간 후 작은 보온 물통에 3분의 2 정도 담길 만큼 만들어졌다.


아이 12ml 정도 먹이고 신랑은 에스프레소 잔에 한 컵 따라 주었다.

비염이 심한 신랑도 효과 보길 바라면서

한잔 먹이고


외할머니 저녁 잘 챙겨드셨는지 안부 전화를 해보았다.

할머니는 증손녀 건강이 더 궁금해하셨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계속 고생하는 아이인지라 온 식구가 이이 걱정이 많다.


오늘은 코감기 증상이 보인다 하자


"콩나물 대가리 떼서 약 만들어 맥이라. 그럼 콧물이 뚝 떨어진다. 아 키우려면 엄마가 반 의사가 돼야 된다."


"어! 할매도 아네? 난 엄마가 자주 만들어줘서 먹어봤지."


"너거 엄마가 우째 알았긋노. 내가 해 먹였으니 알지."


전화 너머로 할머니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엄마한테 물어서 만들어 방금 먹였다. 이거 완전 대대손손 내려오는 음식이네. 효과 있으면 좋겠네. "


우리 집만 아는 레시피인 건 아니겠지만

우리 아이도 커서 아이를 키울 때

이 레시피를 알려주면 좋을 거 같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레시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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