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받을때 글을써요
“당신의 회사생활의 비상구는 무엇인가? 통장잔고? 가족? 일이 주는 보람? 주말? 그것이 무엇이든 꼭 기억하라. 비상구의 불은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는 걸” 김민철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에서 ‘당신의 회사생활의 비상구는 무엇인가? ‘란 질문에 멈짓했다. 현재 내 비상구에는 불이 켜져 있는가. 아 맞다. 비상구가 있긴 한가? 아마도 첫번째 직장생활에선 비상구는 회사 네임벨류가 주는 자긍심이었다. 그리고 한창 회사의 업이 호황이었고, 잘나갔을 때라 별 일을 하지 않았던 신입사원때도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았으니까. 그때는 통장을 보면 늘 배불렀다.
두번째 직장생활에선 공적 일이 주는 부담감과 보람, 그리고 호기심이 출구였고 비상구였다. 처음해보는 공무원 생활은 기업에 있을 때와는 굉장히 달랐다. 늘 훤히 들여다보이는 갑갑한 새장 속에 갇혀 일했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내가 하는 한마디 말과 행동이 내가 모시는 그분의 얼굴이었고, 내가 ‘트루먼쇼’의 짐캐리 근처 조연 정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거북스러웠다. 허나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행정과 복지를 접하고 공부하면서 알아갈 수 있어,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 적지 않는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점은 늘 반가웠던 포인트
세번째 직장생활인 현재에선, 스타트업이 주는 자율성과 직주 근접이 주는 편리함에 더해 퇴근 후 다른 생활에 몰입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로움으로 글쓰기 시간을 벌어주어 내 숨통을 트게 했다. 지금은 내 글로 이렇게 때론 지루하고, 때론 판에 박히고, 때론 숨막히게 재미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19년째 묵묵히 밥벌이를 하고 있는지도.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의 저자 김민철은 최근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하는데 추측하건데 아마도 본인 일로 건너가며 몇 권의 책을 낸 후 본인만의 글로 생각으로 사상으로 이 또한 건너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터. 그러고보면 글쓰기는 쓰는 이에게 다른 곳으로 건너갈 시간을 벌어주는 일종의 보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작가는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성공하는 것을 떠나 본인이 하고 있는 창작이나 글에 대해선 최선을 다해 마무리 짓는 ‘장인’이 되고 싶다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내게 가치있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써서 헌신하고 있다는 걸 직접 느껴야 그게 진짜 장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자리에서 본인의 글이 보이는가. 탈출의 수단으로서? 아님 마지막 보루로? 그렇다면 평생 함께 갈고 닦고 성장하는 장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