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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Nov 10. 2022

오늘은 어떤 그릇으로 일상을 품었는가

독서사색

에세이는 일상에 있었던 다채로운 감정들을 오밀조밀하게 글로 빚어내는 도자기 작업과 같다. 우울의 끝장을 보내고 있는 어떤 날엔 각지고 베일 듯하게 날이 서있는 내 마음 같이 반듯한 작은 네모를 품고 있는 간장종지그릇만하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휘몰아치는 날엔 그걸 다 담아낼 수 있는 빗살무늬의 냉면그릇처럼 작가가 품은 마음의 형태대로 크기대로


산책 도중 유독 붉었던 달이 하늘을 삼켰던 개기월식을 운 좋게 보았던 그날은 사실 한없이 침참하는 기분을 느꼈던 날이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사건에 휘말려 현재 곤경에 처해계시는, 4년 동안 가까이서 모셨던 보스에게 오래간만에 안부를 묻고 내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많이 걱정되고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듯 밀려왔다.


‘거봐 네가 거기 갑자기 간다 했을 때부터 그 집구석 그럴 줄 알았어, 그냥 싹 잊어버려.’ 나를 생각한답시고 하는 말들에 베어 서운하고 속상할 마음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근데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그런 너저분한 마음들을 한 두점씩 거두고 나는 책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 비스무리한 상황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또한 그런 시간들을 통해 거울 속에 비친 나와 직면하는 기회를 삼기도 한다. 나 또한 나에 대해, 혹은 남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백안시로 흘겨보고 있는 건 아닌지. 롭 무어의 <레버리지>에선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두 종류라고 했다. 하나는 시도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과 또 하나는 당신이 성공할까봐 두려운 사람


선택과 집중,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르고 그걸 지렛대 삼아 점프하라. 나도 나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타인은 진짜 어쩌지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러기에 쓸데없는 소모적인 것에는 귓등으로 가볍게 흘려버리고 비운다. 조금만 어긋나도 그럴 줄 알았다고 점쟁이 자세를 취한다면, 결국 당면한 내 작은 세상 하나도 바꾸지 못하지 않겠는가 하는 신념 하나로


고요하고 묵묵히 내 감정을 책임지고 나아갈 때 옳다고 차라리 무관심이 나은 불편한 시선들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더 디뎌야 할 때, 단단히 우리를 붙들어줄 버팀목, 바로 책이 있다. 계절에 맞춰 잔잔한 생활의 발견을 차곡차곡 담아낸 김의경의 <생활이라는 계절>을 보면, 저자의 경우 콜센터에서 일하던 중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있을까. 크게 기대할 것도 기댈 것도 없는 그럭저럭의 삶에서도 이처럼 행복한 장면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깜짝 등장하니, 우리 잘 다독여가며 일상이라는 그릇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보자. 땅 속 끝까지 기어들어가고픈 기분을 느낄 때는 남들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 기어이 살아내고 있는지, 부디 당신 그릇에 갇혀서 허둥대지 말고, 오직 책으로 오늘도 내일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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