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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Nov 07. 2022

됐고 취존

독서사색

“그런 책들 봐서 도대체 뭐해요? 시간 낭비하지말고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 책이나 읽어요.” 그럴 때가 있다. 한두번 가 본 건물도 아닌데, 아주 깨끗하게 닦여 있는 유리창이 출입문인 줄 알고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쿵하고 이마를 찧을 때. 이런 충고를 들으면 내 삶의 콘크리트 중심축인 독서를 고금리 적금이나 2023년 투자 핫한 지역을 점찍는 책들로 향해야 하는지 아리까리하다.


인정사정볼거없이 나의 쪽귀는 더 세차게 팔랑거린다.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책읽기인데 좀 더 효율적이면 안되겠니?‘ 마음 속 다른 한 켠에서 들리는 속삭임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아니 그깟 4캔에 일만천원짜리 맥주를 홀짝거리며 책 내 어깨넓이 만치 작은 책상을 두고 내 맘대로 고른 책들에게 레이저 뿜뿜 대는 초집중의 시간조차 맘대로 누릴 수 없는 건가. 책을 향한 외사랑에 계산하는 이 각박함에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효율’하면 떠오른 분이 계시다. 회사일보단 주식차트 보는 일에 올인을, 외유성 출장에는 어김없이 1번으로 손을 번쩍 드는데 늘 쓰이는 건 ‘나는 외벌이에 한 달 용돈 10만원’이라는 레퍼토리, 육아휴직을 하는 남자직원을 보면서 여유 많아서 좋겠다는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보는 건 당연하고, 회식할 때는 내 돈이 아니니까 비싸고 그동안 먹지 못했던 귀한 음식으로 주문해야겠다고 몽니를 부렸던 그


불쌍함과 동정, 비굴 교묘하게 그 경계를 넘나들며, 본인 돈은 어떻게 해서든 극렬히 아끼면서 내 돈 아쉬운 만큼 남의 돈도 귀하게 여겨야 할 텐데, 그리 보이지 않았던 이중성이 싫었던 거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어지간하면 저러겠어?’ 나보고 너무 팍팍하게 굴지 말라며 충고했던 사람들의 말을 뒤로 하고, 책을 두고 나의 아등바등이 10만원짜리 인생의 고군분투보다 치열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


묻지도 따지지 말고 취향존중! 사실 내가 책을 읽고자 하는 건, 효율성을 뒤로 한 한낱 여유부림이 아니었다. 내게 독서란 수많은 책들에 쓰여져 있는 것들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글 속에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고르고 취하는, 때론 버리고 덜어내는 내 삶을 효과적으로 살기 위한 일종의 나만의 도전이고 생존방법이었으며, 재테크였다. 마치 전례에 없는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얼음 꽝꽝 넣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그 결연한 마음처럼


어찌 보면 삶이라는 건, 각자에게 중요한 걸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각자에게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는 긴 여정이 아닐는지. 그래서 우리는 잠깐 보는 그 과정의 단면을 두고, ‘들인 품과 얻은 결과의 비율이 높은 특성’인 효율성에 대해 재단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거다. 둘 다의 단단한 중심축에는 각자 취향이라는 바탕이 있는 거고 한번 태어나고 지는 인생, 좀 더 의미있게 인간답게 각자 취향을 존중하면서 귀한 삶을 살아내었음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오빠, 돈은 많이 모았어요? 부디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시며 어디에 계시든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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