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으나 이게 내가 사십여 군데의 일터를 겪으며 얻은 미립이다. 일을 잘하는 요령만큼 일을 잘 못할 때 자존감까지 깎아내리지 않는 요령도 중요하다. 각박한 세상에서 잊고 살기 쉽지만, 일에서의 성과가 삶에서의 성과는 아니다. 일을 잘해도 못해도 삶에 대한 미립은 남는다.” (민바람의 낱말의 장면들, p77)
도대체 ‘미립’이라뇨...전 듣도 보지도 못한 단어였습니다. 이런 글을 보면 말이죠. 자꾸 위축이 되고 쪼그라듭니다. 나 같은 게 글쓰는 게 맞는가 자격이 되나 자꾸 되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립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맛의 책은 쓰지 못할거야. 하고 말이죠. 거의 차렷 경례하고 읽을 수준이고 하나하나 손으로 짚고 읽어야만 작가가 왜 그 단어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경험이 켜켜이 쌓였길래 글에서 풍미가 흐르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최소한의 이웃>에서 저자 허지웅은 그럼 경험이 많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그는 그렇지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대답합니다. 더 많은 경험을 재료로 사유를 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사람이 있다면, 똑같은 양의 경험을 비춰 봤을 때 잘못된 판단을 하여 일을 이상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는 거죠.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온 경험이 다채롭다고 글감이 많을 걸까요?
나는 나와의 많은 대화가 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경험을 쉬이 흘려보내지 말고 켜켜이 쌓아놓고 보는 거죠. 내 마음이 어떤지 나를 들여다보며 마음공부를 하는거죠. 그 과정을 통해 드디어 글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내 현재 수준과 내 기대 차이를 차분히 좁혀가는 것, 그게 글쓰기의 첫걸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미의 <글쓰기에 진심입니다>에서 ‘징검다리가 끊기지 않도록’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가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하면 주로 주위 반응은 다음과 같았죠.
“글 써서 돈벌기 쉽지 않아. “ 의 자조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책 안 봐” 팩트 폭격
“그거 가지고 뭐하게? 뭐 유명해지게? “ 자의적 해석
저자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을 빌어 글을 쓰든 그 무엇을 하든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일이라는 착각부터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우리 모두는 징검다리일 뿐이라고요. 난 이 징검다리가 나와 누군가를 잇는 다리라기보단, 앞서 말한 나의 현 주소와 내 예상치를 연결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짜 글쓰기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의 글을 독자들에게 팔아 명성을 얻는 것은 글이라기보단 대상을 향해 이야기하는 책 출판에 가까우니, 그냥 끼적이는 글쓰기부터 하는 데까지 후회없이 써내려가라는 격려를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과 나에게도 꼭 드리고 싶은 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