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일하는 공간인 장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직업인은 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브랜드로 되어간다는 것, 강민호 p58)
강민호의 <브랜드로 되어간다는 것>에서의 직장인과 직업인을 구분짓는 문구에서 내 눈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나만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직업인이 되어야 하는데요. 참고로 직업인은 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수행해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올해로 직장생활 20년차인 자칭 직업인인 내게 수십년을 버티기 위해 열정, 소명의식 중 무엇이 꼭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직업인에게 열정은 냉정하게 말해 옵션이고, 소명의식은 당연히 디폴트입니다.”
나의 소명의식에 최선을 다해 업을 수행하는 것, 그건 절대 기계적이고 수동적일 수 없죠. 또한 납득이 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조직에서 미주알 고주알 특히 권위만을 내세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적질을 하는 경우를 접하게 될 때(전문가에게 임파워먼트를 하지 않고, 지적질이 본인의 업무인 줄 아는...)는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백번 양보해서 주어진 일을 알잘딱깔센 하면 되는 주니어급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시니어 직업인에게는 통 맞지 않죠. 사실 내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작은 조직이라 1부터 100까지 모든 일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권한위임을 하지않고 즉 약은 약사에게, 치료는 의사에게, 특정 전문일은 관련 전문가에게 이 간단하고도 명쾌한 논리를 살포시 무시하고, 권위를 이용해 전문가와 비전문가 경계를 쉽게 넘나드는 것을 보고, 무력감과 더불어 내 지나온 경험과 세월을 괄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한 두번은 가뿐히 참고 지나갔으나, 세 번째 되어서 이윽고 결심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또 다른 내 자리 찾아 하루 빨리 떠나야겠다고요.
어찌보면 우리의 쓰기도 같습니다. 트리시 홀의 <뉴욕타임즈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을 보면 당신이 모르는 것을 쓰지 말 것이며, 나보다는 당신의 독자를 우선하고 위하라고 합니다. 아마도 내 전직장은 그게 피고용인 특히 직업인 대상 잘 알지도 못하고 쓸모없이 아는 체가 빈번했고 공감을 깊이 끌어내기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나를 포함해 몇 명의 시니어들이 퇴사를 하거나 준비하는 상황을 보건대 아마도 비슷한 연유로부터 비롯되었을 거라 충분히 짐작할 수있었죠.
결국 쓰기는 소통의 자세입니다. 글을 잘 쓴다면 상대방 즉 독자를 위한 그 태도가 좋고 곧으며 바른 거겠죠. 키케로의 말을 인용하며 맺고자 합니다. 쌍심지 켜며 맨 마지막에 특히 주목하시길…
“인류가 세기를 거듭하며 반복하는 여섯가지 실수가 있다. 타인을 짓밟는 것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믿음, 변할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일을 걱정하는 태도, 성취할 수 없으므로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사소한 일에 기우는 마음을 다잡지 않는 것, 정신을 발전시키고 개선하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자신이 믿는 바와 사는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