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본 자청의 <역행자>에서 유독 ‘배수진’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수진의 유래를 한번 찾아보니, '사지에 몰아넣은 후에야 살게 되고, 망할 지경이 되어서야 존재하게 된다'라고 병법에서도 이미 말했더군요. 스스로 싸워 이겨 빠져나올 수 있게끔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 저자 자청은 비로 글쓰기에 배수진을 쳤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게으른 동물이라고 하고, 목표를 세울 때마다 본인 자신을 믿지 않고 목적을 결국 이뤄낼 수 밖에 없는 컨디션을 만든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원고를 마감한다고 하고, 못 쓰게 된다면 얼마를 드리겠다고 배팅을 하고, 그 덕에 소기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해요.
이건 어떤가요? 젊은 작가가 출판계에 막 발을 들여놓을 때 다른 생계수단 없이 오직 글만 쓰면서 온 인생을 살겠다는 일종의 ‘배수진’도 진정 놀랄 만한 태도이지요. 이분들의 경우 다양한 글쓰기와 청탁과 출간, 강연으로 생계를 이어가고요. 그래서 이들이 쓴 에세이 같은 걸 보면 실로 처절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고개를 떨굴 정도로 숙연해지곤 하죠. <낀세대생존법> 공저자인 서서히 작가가 그러더군요. 그런 분들에겐 우리의 글이 진짜 글로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우리가 진정한 작가로 불려질 확률이 낮지 않을까 라고요. 빙의해본다면 전업작가들에겐 퇴근 후 글쓰기가 다인 내 경우의 배수진을 과연 진짜라고 생각할까 싶기도 합니다. 일종의 낭만적 놀이고 신선놀음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경우도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될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를 스스로 옥죄이고 쪽팔려도 무안해도 덤빌 것은 덤비고 칠 것은 쳐냈죠. 이직, 자격증, 공부와 똑같이 글쓰기도 사실 마찬가지였습니다. 얼핏 보면 작가가 다른 생계적 수단을 갖는 게 자기 글에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들 쉽게 말하기도 하겠지만요.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나름대로의 배수진의 글쓰기란 말이죠.
전업작가든 퇴근 후 작가든 닥친 을의 현실은 실로 냉엄합니다. 워낙 쓰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경력이 쌓인다고 책을 출간했다고 존중받는 게 아니라 갑인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 부리기 쉽고, 웬만큼 글 쓸 줄 알며 크게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에게 출간의 기회가 더 갈 수 밖에 없고요. 두 번째 책을 출간해보며 느낀 점은 글을 기똥차게 잘 쓰거나 왠만한 글을 잘 팔리게끔 마케팅이나 영업을 잘하든지 그렇지 않으면이 좁디 좁은 체제 안에 발을 온전히 발을 디디며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걸 더욱 실감한다는 거죠. 작가가 엉덩이 붙이고 글만 쓰면 다지, 직접 발로 뛰어야 하고, SNS까지 해야 해? 말간 얼굴로 물으신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작가 개인이 요구되는 여러 능력이 없으면 당연히 다음 글을 출판할 미래도, 작가로서 불리울 기회도 더 이상 없는게 직면한 현실인걸요.
그래서 책을 출간하고 이러한 현실에 콱 질려서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며 더 이상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실로 많이 봐왔습니다. 결국 각자 위치한 좌표에서의 마음 자세에 따른 실행인 거 같습니다. 배수진을 치고 일종의 결기, 굳은 의지를 담은 실천적 글쓰기...전업이든 파트타임이든 퇴근 후든 그 무엇이든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글쓰기. 어디에서 좋은 글이 잘 팔리는 글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나는 퇴근 후 배수진으로서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누가 뭐라든 내 생존방정식은 글쓰기로 풀어나갈 겁니다. 긴가민가 하신다면 여러분도 would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