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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Feb 25. 2024

톤이 중요한 글쓰기  

이런 적 있으시죠? 귀를 씻어버리거나 눈을 감아버리고 뜨고 싶지 않을 때 말입니다. 며칠 전에 딱 그랬습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소파와 물아일체 시키던 중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받게 된 전화, 30분 넘은 통화 끝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내가 그에게 부재중일 때 녹음하는 음성사서함인가? 하고요. 어쩜 내 최근 근황을 단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하는 건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손절하고픈 남들의 말들은 뜰채로 건져 딱 버리고 싶은 마음 뿐일 때 다시 떠오르는 생각 하나, 그럼 과연 내가 쓰는 글은?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인정욕구에 가득 차 주장과 고집만 가득한 글은 아닌지


최인철의 <굿라이프>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좋은 글과 좋은 삶에는 길이도 상관없고, 형식에도 제약이 없는 공통점이 있다며, 어떤 글을 좋은 글로 어떤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결국 '톤'이 중요하다 했죠. 맞습니다. 듣기 편한 말이 좋은 말이듯이, 읽기 편한 글이 좋은 글이죠. 술술 읽기가 잘되고, 읽다가 멈짓하지 않은 글을 쓰려면 우선적으로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빡빡하게 굴게 아니라 유연히 넘어갈 줄 아는 능수능란함이 있어야 하죠. 여기에 하나 보내고 싶어요. 설득 말고 납득이 가게끔 하는 반 일방적인 성향이 있어야 합니다.


균형잡힌 쌍방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 반 일방적인 성향,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한철환, 김한솔의 <설득하지 말고 납득하게 하라>에서 설득과 납득의 차이점이 나오는데요. 설득은 상대방이 수용하게 하는 것이고, 즉 원든 원치 않든 상대방이 100프로 받아들이게끔 하며, 납득은 스스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라고요. 만약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결과라 하더라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납득입니다. 대부분 우리의 글과 말은 인정을 받고 공감을 얻으려고 하는 목적이 다분합니다. 앞서 언급한 제 지인이 무차별적으로 속사포처럼 내뱉은 말도 그러했듯이 말이죠.  


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슈퍼 E라 더욱 느끼는 게 크죠. 사람은 단연코 혼자고 철저히 고독하다는 걸 말이죠. 허나 그럴수록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짜 자신과의 만남에서 복잡다단한 감정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해결하며 비워내어야 본인이 내뱉는 말과 쓰는 글에 있어서 반일방적이고, 청자 혹은 독자를 위한 톤 앤 매너가 적절히 지켜질 수 있다 생각합니다. 잘 보세요. 우리가 흔히 사건이 일어나 나의 감정이 생긴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사건 자체가 불안하고 초조한 나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과 해석이 내 감정을 만드는 것이죠. 그러려면 적절한 감정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여백을 위한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즉 그동안 쌓이거나 억눌렸던 감정 같은 걸 개워내고 털어내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같은 거 말이죠.


결국 나 자신에게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상이 있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 전에 내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숨고르기를 해야 합니다. 내 진실한 마음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나서야 결국에서야 나만의 글과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전화를 끊기 전 꽉 찬 오디오를 뚫고 이 말은 참 잘 한 것 같습니다. “나한테 묻지 말고 스스로에게 잘 물어봐.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이미 아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 언제부터인가 나도 글쓰기 전에는 공백의 틈을 늘 가지려 노력하고 있었죠.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내 진심을 들여다보는 시간 말이죠. 그 틈의 깊이와 빈도를 어떻게 해볼까 요모조모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일요일 밤이네요. 그나저나 내일 출근 때문에 얼른 잠을 청해야겠습니다. 일단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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