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짓기 좋은 친구, 글
인기 역사 강사 전한길의 에세이 <네 인생이 우습지 않다>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매듭’이었습니다. 저자는 공부에 매듭이 필요하다 했죠. 꾸준히 그 수준을 유지하고, 이것을 합하면 대나무로 치면 일종의 매듭을 만드는 것이라고요. 이걸 지치지 않고 얼마나 잘 만드는지, 그게 목표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계획이 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한동일의 공부법>에서도 열심히 살며 매듭지은 하루하루가 모여서 우리의 인생이 되듯 결심도 그렇게 매일매일 새롭게 하면 된다 했습니다. 저자들이 말했듯 공부나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직장 선배의 다급한 전화, 같이 일하는 후배에게 승진이 밀려 눈앞이 캄캄, 극도의 어지러움을 호소했죠. 쌉T인 저로서는 기껏 전화한 선배가 자칫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전제를 깔았습니다. “선배, 존경하고 사랑하는 거 알죠? 나 완전 T이니까 감안해서 잘 들어요.” 결론은 20년 넘게 쉼없이 달려온 선배에게 일종의 매듭이 맬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본인에겐 어떤 선택지가 있고, 뭘 원하는지 며칠 휴가를 쓰면서 잘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매듭은 아예 끝만 해당되진 않습니다. 무언가를 묶고 고정하거나 두 줄을 연결하거나 고정하는데 쓰이죠. 즉 한 부분의 완결이지만, 또 다른 연결이고 시작인 셈입니다. 우리는 매끄럽지 못하게 긴급하게 끝나거나 흐지부지한 것에 대해 미련을 갖기 마련인데요. 이른바 자이가르니크 효과라고 하죠.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결실을 이루지 못한 게 기억이 남기 마련이죠. 미완성 이펙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더 잘 남게 작업을 완결시키는 게 아니라 잠시 중단하고 이쯤에서 정리하며 다른 단계로 넘어간다면, 좀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이은하의 <너에게만 알려주는 무결점 글쓰기>에서의 글쓰기 정의를 보태어봅니다. “글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짙은 사유의 여정, 이것이 우리가 글쓰기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다. 내 삶의 이유,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 맞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면서 정리하기 위해선 글이란 녀석은 정말이지 딱 맞춤옷입니다. 책 읽기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며 논리적인 그 선배가 이참에 본인의 생각을 요모조모 글로 적어보면 좋겠다고 권유했죠.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불난 데 부채질 했으려나요? 실은 나 역시 동일한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비워내며, 내가 원하는 게 뭐고 할 수 있는 게 뭔지 따져보며 절치부심했던 기억이 나네요.
조금씩 글을 쓰며 앞에 놓여 있는 산을 하나둘씩 넘었던 거 같아요. 사실 우리 앞엔 산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졸업하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취직해야 하고 결혼이란 옵션을 저울질 하고 넘어야 할 산들 투성이죠.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이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거나 아예 통제구역일 때 이 단계를 끝맺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분환기를 위해서라도 글을 적고 메모를 했죠. 매듭짓기 위해 좋은 활용방안 글, 요즘 퇴근 후 방황하지 않고 컴퓨터를 켜고 TV를 등진 채 자리에 앉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이직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적응과 안착이란 또 다른 산을 넘기 위해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