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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l 08. 2024

적어보아요. 숫자든 그 무엇이든

적어보아요. 숫자든 그 무엇이든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토요일 오전 1시간 넘게 출판사의 작은 부스를 지켰습니다. 출판업계가 현저하게 즐어든 독서인구 때문에 난리인데요. 거긴 별나라 딴 세상이더군요. 3층의 전시장까지 들어가기 위해 서 있는 긴 줄을 보고, ‘아직 책을 즐기는 사람들은 생존해 있어. 내 책을 즐길 사람도 있을테지’ 란 아주 엷은 희망이란 걸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론 두 권의 책 저자로서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책 소개하고 책의 세계로 인도하는, 모처럼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행복’ 했죠. 문득 떠오릅니다. 누군가가 행복을 말하길 공개적으로 말해버린 행복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고 무릇 행복이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나만 느끼는 게 행복이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행복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거겠죠. 우리가 딱 행복하다고 정할 수 있는 그 마음 속의 수치나 데이터 같은 게 있는 만큼요. (그 당시 독자들을 만난 흥분과 기대, 설렘 56 %, 세 번째 책에 대한 뭔지 모를 걱정 23 %, 허리 아픔 12%, 그나저나 아들 기말고사 시험공부 잘하고 있나 걱정과 우려 9%)


박혜윤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는 건 산수가 아니니 오늘 보낸 시간의 결과를 알 수 없다고요. 그래서 소로는 그랬다죠? 모든 삶이 ‘개인적인 이유에 따른 비참한 실패’라고요. 생각해보세요. 한국에서 내노라한 대학을 나오고 중앙지 기자를 하다가 미국에서 석박사하면 관성의 법칙상 그렇게 쭉 살 법도 한데 말입니다. 저자와 남편은 일찌감치 은퇴를 해 미국 시골에서 생활을 하면서 만족스럽다고 하죠.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성공가도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난 후 개인적이고 특이한 환희라고 봐야 되나요?


이 책의 평을 보니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며느리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그럴만도 하다고 하는데, 돈이 없고 있고 간에 이 책을 보면 그럴 결심과 실행이 나를 포함해 아무나 그러기가 어지간히 쉽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매 챕터마다 수없이 내 안의 나와 스무고개하는 기분이어서 생각 끝에 정리하는 셈 치고 기어이 펜을 들었습니다.


1.   호밀빵 만들고 수확한 채소를 쪄먹으면서 살 수 있을텐가. (나 뻑뻑한 빵 싫어하는데 고기 엄청 좋아하는데, 식물 키우면 다 죽이는데)

2.   지금 듣고 있는 정사서 자격증 2급 나오면 시골에서 그리 살 수 있을까 (당장 들어가면 너무 어리지 않나. 나 고작 40대인데)

3.   남편, 아이에게 시골살이 설득할 수 있을까 (남편 질색팔색, 아이 이하동문, 첩첩산중, 점입가경)


자신이 원하는 삶을 알기도 알면서, 그걸 끝끝내 지켜가는 것이 둘 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지 않으면 주변 환경이 계속 바뀌는데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죠. 자신을 성찰하고 내가 뭘 원하는지 묻고 또 물으려 할 때 펜 하나면 충분합니다. 나를 배려하고 살피는 그 태도를 잃지 말아야 좀 더 바르게 살 수 있으며 결국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야 합니다. 정말 써야 된다고요. 쉬이 흘려보내지 말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를 지언정, 지금 내리는 변덕스러운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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