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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한다 Jul 09. 2024

단순함이 미덕

단순함이 미덕


여기 17년 동안 3천통의 편지를 쓴 분이 있습니다. 와 무시막지하죠? 장동철의 <제법 괜찮은 리더가 되고픈 당신에게>는 전 현대자동차 그룹 부사장이 후배들에게 쓴 편지 중 알토란같은 120편을 추린 책입니다. 보고 있으면 뭉근 마음 다독이는 핫팩 같이 느껴지지만 촌철살인의 간결한 문구들에 ‘앗 뜨거워’ 할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단순함’에 끌렸습니다. ‘단순’에 주로 붙는 말이 무식이지요? 사실 단순하려면 무식이 아니라 덜어내는 고도의 지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단순무식은 틀린 말이지요. 거추장스러운 것은 버리고 알짜배기를 남기려면 모든 걸 꿰뚫어보는 눈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고 도려내지요. 저자는 단순함은 고도의 세련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렸을 적은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복잡다단한 게 그렇게도 좋아보였습니다. 뭔가 멋(엣지)과 스토리(사연)를 둘 다 알뜰살뜰 챙긴 것 같았죠. 그래서 뭣도 모르고 뾰족한 칼을 여러 개 구비하고 다니며 여러 곳에 수시로 찔러댔습니다. 어떤 건 들어가지 않았고, 어떤 건 튕겨져 나오기도 했으며, 아예 구멍의 위치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40대의 이젠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가정과 직장생활의 일상에선 주로 뭉특하고 느슨하게, 중요한 결정에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지요.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핵심만 남기고 가지치기를 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하며 주기적으로 핸드폰의 주소록을 정리하기도 하고요.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자가 20년 가까이 매일 편지쓰기를 놓지 않은 이유는 소통하지 않는 선배들에게서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획일적이고 수직적인 회사 분위기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에게 후배들에게 쓰는 편지는 후배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소통하는 리더가 되기로 다짐한 계기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이 잣대를 우리 자신에게 대보면, 그 동안 쓸데없이 뾰족하고 복잡했던 건, 아마도 나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던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자가 매일 아침 7시에 메일 나중에는 30-40분 정도 시간을 들여 1장 정도 썼고, 그리고 중요한 건 익숙해지니까 처음에 2-3문장이었던 편지가 점점 분량을 더해가고, 쓰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는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우리도 나에게 편지쓰기를 통해 나와의 소통을 점점 늘려간다면, 나에 대한 불신도 나에 대한 불통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라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국 이 복잡미묘한 세상과 갈팡질팡 질곡의 내 마음을 이기는 것은 바로 간결함이며 이는 선택과 집중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요. 다시 가만히 나를 들여다봅니다. 혹시 너무나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 나의 역량을 총동원해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바로 쓰기를 통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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