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생
시설관리
자격증만 따면 세상이 열릴 줄 알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아르바이트하던 노래방 사장님께는 미리 자격증 취득 소식을 알리며 사람 구하실 시간을 드렸다.
나중에 온 사람에게 나만의 꿀팁을 전수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누군가는 아르바이트일 뿐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겠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갑작스러운 통보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퇴직금 대상이 아님에도 쌈짓돈을 챙겨주시며 말씀하셨다.
“넌 무엇이든 잘 될 거야.” 시간이 흐른 지금, 퇴직금보다 그 따뜻한 한마디가 더 깊은 위로로 남아있다.
하지만 응원과는 별개로 취업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워크넷과 알바몬을 매일같이 뒤지고 교수님께 간절히 연락을 드려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마땅한 곳이 없네”라는 자동응답기 같은 말뿐이었다.
세상은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고 싶다"는 나의 절박함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수십 장의 이력서와 면접 끝에, 마침내 한 회사의 시설관리직으로 발을 내디뎠다.
밤을 새우는 교대근무였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간절함이 앞섰다.
적어도 전기 자격증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뿌듯함은 찰나에 불과했다.
시설관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실상은 '잡부'에 가까웠다.
내가 꿈꾸던 전기 실무는 아득히 멀었다.
주된 업무는 땅을 파고 꽃을 심는 조경이었고, 주기적으로 전신 장화를 신고 대표실 연못에 들어가 물고기 수를 세어가며 뜰채질을 해야 했다, 연못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수도 아닌 내가 나무 별장의 색이 변했다는 이유로 한 달 내내 샌딩기를 붙잡고 나무를 문지르기도 했다.
내가 한 유일한 전기 업무라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형광등 교체 정도였다.
기술을 배우러 온 나에게 그 시간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물론 모든 것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 배워놓으면 쓸모가 있겠지'라는 낙관과, 밤샘의 대가로 받는 내 경력 대비 적지 않은 급여가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손에 꼽을 정도의 전기 업무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한번 가서 해봐."
가르침 없는 무책임한 지시는 사고로 이어졌다.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현장에 투입된 나는 온몸으로 전기를 받아냈고, 입안에서 탄내가 나는 경련을 경험해야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던 건 일을 향한 아쉬움과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1년이 흐른 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니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전기 회로도가 아니라 꽃 이름뿐이었다.
스스로 공부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무언가 배우려 해도 허용되지 않는 회사라는 폐쇄적인 환경과 밤새 휴대폰 게임에만 몰두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과 동화되어 가는 내 모습에 환멸을 느낀 순간, 미련 없이 사직서를 던졌다.
나는 그저 조금 더 잘하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천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 삶을 짓누르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진짜 실력'을 갖고 싶었다.
나의 퇴사는 도망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