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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하 Oct 07. 2024

데이트 도중 아이들 옷을 산 실수

연애를 다시 시작한 지 5개월 정도가 지났다. 지난 5월에 한국에서 그녀를 만난 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녀가 미국을 방문하고 나도 한국을 방문하며 장거리 연애는 빠르게 진도를 뽑았다. 결혼얘기가 오가고 꿈만 같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이제 50대 중반이 된 나에게 이런 Sweet 한 만남이 왔다는데 감사했고 또 삶에서 이런 행복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만남에서 원치 않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일단 Relationship과 Dating 관한 책들을 보면서 관계에서 중요한 생각과 행동들을 다시 배우며 나 자신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를 들여다 보고 상대의 문제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했다.  배우지 않으면 모든 연애는 실패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연애도 배워가면서 서로가 성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같이 보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지난달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안에 내재해 있던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여느 커플처럼 가까운 서울 근교에서 박물관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쇼핑 아웃렛에 들렀다. 골프를 자주 치는 나에게 좋은 옷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그녀의 배려였다. 한국의 골프옷은 스타일과 재질이 훌륭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들어선 첫 가게에서 이미 난 푹 빠져 버렸다.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나의 아이들이었다. Cool하게 생긴 light padding jacket을 보는 순간 곧 동부로 돌아가게 될 대학생 2학년인 아들이 떠올랐다. 옷 입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녀석에게 이 옷을 입히고 싶었다. 난 서둘러 내 옷보다는 아들의 옷을 골랐고 곧 딸의 옷까지 골랐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옷을 사주었기 때문에 난 어렵지 않게 맞는 사이즈를 고를 수 있었다. 같이 동행한 그녀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빨리 쇼핑을 마치고 그녀에게도 한벌 고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못해 셔츠하나를 고르더니 기분이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아무런 눈치도 챌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당시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 설명하며 그녀는 자신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녀는 미혼이었고 돌싱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만나는 남자가 아이들이 있는 아빠라는 정체성이 그녀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현실적인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순간 데이트하는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나의 매너가 실수임을 인식하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를 강요당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과를 강요당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 순간 엄청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다. 나의 배려가 부족했음이 사실이니까 나는 군 소리하지 않고 정중히 사과했다. 사과를 강요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그런 깊은 배려에는 경험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내 사과를 얻어냈지만 다른 뭔가 더 큰 것을 잃은 듯 했다. 그 후 차 안에서의 대화는 어색하게 진행이 됐고 돌아오는 내내 불편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약간의 휴식을 취했지만 낮에 있었던 그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건의 핵심은 이러하다. 오랜 시간 미혼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아이 둘 딸린 돌싱남자와 사귀는 게 엄청난 현실적 타격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주로 만나온 남자들은 같은 또래의 싱글이거나 연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젊은 남자 친구들은 같이 쇼핑할 때 여자의 핸드백을 들어주기도 하고 입고 나온 옷을 보고 이쁘다는 멘트를 날려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에겐 순간적으로 이런 그림들이 머리를 스쳐 갔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나는 너무 아저씨 같은 행동을 했고 남자 친구가 아닌 애기 아빠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애들 옷을 산 행동자체가 아니라 자신한테 양해를 구하지 않은 나의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먼저 양해를 구했다면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내용의 대화를 밤늦게 까지 주고받으며 난 큰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해 밤새 미안해해야 했다. 그리고 우린 한 방에서 따로따로 잠을 잤다. 난 괴로웠다.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어색하고 민망한 기분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당장 짐을 싸고 호텔을 나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건 성숙한 행동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특별한 방법이 없었고 일단은 이 밤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누워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난 후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분으로 남은 일정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갈등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갈등의 본질은 Clashes of two different identities였다. 나는 ex-married man이었고 그녀는 unmarried single woman이었다. 그녀가 기대한 남자는 멋진 데이트를 같이 할 수 있는 남자 친구였고 내가 원하는 여자는 곧 같이 살게 될 새로운 아내였다. 관계가 깊어지자 나는 이미 그녀가 내 아내가 된 듯 행동했고 그녀는 나의 행동이 남자친구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으로 비쳤다. 연애를 다시 시작한 마당에 나는 남자친구나 애인의 문화와 매너를 가지고 데이트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이에 익숙하지 않고 서툴렀다. 이와 같은 사건은 그 이후에도 여러 종류로 반복됐다. 예를 들어 샤부샤부를 같이 먹는데 여자에게 먼저 국물을 퍼주지 않고 내 것만 퍼서 먹은 경우. 선물로 옷을 사줬는데 주문했던 것과 다른 옷이 와서 내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해버려서 그녀가 기분 상한 경우. 그녀는 내가 아이들을 언급하거나 ex-wife를 언급할 때조차 불쾌해했다. 내 생각 속엔 여전히 ex-family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내가 아직 새로운 여자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사건의 발생이고 지금부터는 나의 분석이다. 나는 분명 과거의 습관 때문에 나와 다른 미혼의 삶을 살아온 여성에게 불쾌한 행동을 했다. 이 부분은 내가 시간을 두고 고쳐나가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건 나의 과거는 앞으로 지워가길 바라면서 자신의 과거는 깨끗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결혼을 했었고 그녀는 미혼이었지만 그녀 또한 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지금 보여주는 행동은 내가 지금 보여주는 행동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경험에서 형성된 오래된 습관일 뿐이다. 그녀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도 모두 과거의 산물인 것이다. 내 과거의 산물이 결혼에 의한 산물이라고 해서 더 나쁘고 그녀의 산물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We are all the products of the past. 예를 들어 혼자 미혼으로 오래 산여자는 결혼 생활 20여 년을 한 여자들과 다른 까다로움이 있다. 기혼 여성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노처녀의 까다로움과 예민함이 있다. 이런 날카로움을 좋아할 남자는 없다. 자신은 과거가 깔끔해서 결혼하기에 준비가 되어있고 나는 결혼생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아직 준비가 안 돼있다는 게 그녀의 논리이다.


결혼 준비가 안 돼있는 건 사실 그녀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선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가? 집? 차? 우린 둘 다 이런 물질적인 것은 준비되어 있는 나이이다. 그럼 비물질적인 어떤 게 준비가 되어야 하는 가? 첫째, Commitment. 헌신, 작정, 결심, 약속 이런 가치들이 결혼에 필요한 첫 번째 가치이다. 사랑이 결혼에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낭만주의(Romanticism)의 문화권에 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는 착각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Eros)적인 사랑을 말한다. 성적인 관심과 만족 없이 결혼 생활은 불가능하다. Sex 없는 결혼은 졸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 사랑은 연애할 때 필요한 조건이다. 결혼은 연애가 아니라 일상을 장기간 같이 사는 문제이다. 사랑의 감정은 일정할 수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앞으로도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려는 의지뿐이다. 결혼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의지적인 사랑이다.


둘째, Sacrifice 자기희생.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제적으로는 참고 사는 태도를 말한다. 서로 다른 두 남녀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참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 이보다 좀 더 긍정적인 방법은 서로 고쳐가며 성장하는 방법이다. 물론 서로가 변화하며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상적인 건 항상 쉽지 않다. 결혼 생활 20년을 해보면 안다. 자신의 배우자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럼 이런 현실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서로가 양보하고 참고 사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상당히 지혜로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희생을 별로 해본 경험이 없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관용적인 행동을 해본 적이 있냐고. 그녀는 관용을 베풀면 살 기회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녀는 매너를 중요시한다. 남자의 태도를 중요시한다. 이렇게 뭔가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기준이 높고 관용성이 낮다. 그리고 선택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남자는 곧바로 아웃이다. 결혼 생활은 계속된 관용의 일상을 사는 것이다. 코를 고는 남편을 참고 사는 것이고 매일 잔소리하는 아내를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포기한다라고도 표현하지만 실상은 상대의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한다는 뜻이다.


좋은 옷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사랑하는 아이들이 떠오른 것은 내 과거의 삶에 의해 형성된 내 모습이다. 쇼핑할 때 자신의 핸드백을 들어주고 멘트를 날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녀 과거의 삶에 의해 형성된 모습이다. 우린 이렇게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우리는 관계를 끝내야 하는 것인가? What matter is not the difference itself, but how to handle it. 자신이 결혼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이런 다름을 극복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이 다름이 너무 크게 보여서 감당할 수 없다면 당신은 아직 결혼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건 우린 여전히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삶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건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점들을 극복하지 못해 갈등하는 그녀에게 난 좀 서운하다. 이런 일로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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