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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Nov 25. 2022

시작은 보리차

대학교 복학을 결심했다. SNS를 보니 같이 학교 다녔던 동기들은 다 졸업하고 해외에서 요리사를 하거나 서울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었다. 난 늦게나마 복학을 결심했다. 다행이도 같이 복학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핸드폰에서 친구 전화번호를 찾아 복학하기 전에 학교 근처에서 살 자취방을 같이 구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군대를 갔다오고 서로 일하느라 거의 3년 만에 전화를 걸었는데 3년 전이랑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복학하기 전에 친한 형 자취방에서 얹혀살면서 자취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는데 너무 좋았다.  형의 자취방은 컸다. 투 룸에 큰 분리형 주방, 단색으로 꾸며진 인테리어, 심지어 신축.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할 생각에 기대가 차올랐다.   

   

복학하기 1달 전, 친구랑 같이 자취방을 알아보기로 약속한 날이 왔다. 오전 11시까지 학교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리자 엄마는 큰소리로 알람 끄고 더 자라고 말했다. 알람인 줄 알고 핸드폰을 보니 배경화면에 11시가 찍혀있었다. 나는 그 때 일어났다. 전화를 받으니 친구는 전화로 화내면서 본가까지 나를 태우러 온다고 했다. 친구는 나를 만나자마자 재촉하며 말했다.   

  

  “너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여전하다 새끼야.”   

  

학교에 3년 만에 도착하니 많이 바뀌었다. 자주 가던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배달 전문 식당들이 많이 생겼다. 친구랑 학교 다닐 때 자주 가던 밥집에서 간단히 점심밥을 먹으며 계획을 짰다.      


"부동산 껴서 집 구하면 돈 더 많이 들고 우리 둘이 동시에 들어가면 월세도 깍을 수 있을꺼야 그러니 그냥 우리끼리 돌아다니면서 구하자."   

 

자취방에 붙어 있는 번호에 전화를 돌려가며 방을 보러 다녔다. 둘 다 워낙 귀찮은 일을 싫어해서 점심밥이 소화되기도 전에 지쳤다. 친구가 먼저 말했다. "어차피 1년만 있으면 되고 학교랑 가까운 게 최고야, 남자 혼자 사는 집 좀 안 좋으면 뭐 어떠냐" 나도 맞다고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원룸에 전화를 했다. 들어가서 방을 보니 꿈꿨던 자취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형 원룸, 유행 지난 벽지, 좁은 주방. 그렇지만 학교와 거리가 가장 가까워서, 또 자취방을 더 둘러 볼 자신이 없어서 사장님과 계약을 했다.    

  

“학생들, 둘이 붙여서 방을 줄까?”

사장님이 물었다.

“아뇨!”

친구와 나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는 한 칸 떼어 달라고 했다. 나는 403호, 친구는 405호로 계약했다. 둘이 같이 들어와서 관리비도 월세도 조금 깎을 수 있었다.    

  

개강 3주 전 택배 스 2개를 들고 나는 자취방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 찬 기운이 쏟아졌다. 본가에서 엄마, 아빠가 짐을 많이 챙겨줬지만 "어차피 뭐 잘 안 해먹을거에요" 라며 딱 잘라말했다. 짐을 풀고 청소를 하고 자취방을 쓸고 닦았다.     

 

다 하고 나니 몸에 힘이 없었다. 라면이나 간단하게 끓여먹고 내일 마저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주방에 섰다. 찬장이 너무 낮아서 냄비에 물 올리고 라면 꺼내면서 머리를 4번 부딪혔다. 짜증이 솟구쳐서 그대로 두고 침대에 누워 배달 어플을 켰다. 배달비가 적고 최소주문금액이 낮은 음식을 시켰다.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니 혼자 먹을 음식인데 만원 넘는 돈이 들고 양도 너무 많았다.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쑤셔 박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평소처럼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정수기가 없었다. 심지어 컵도 없었다. 맞다, 여기는 자취방이지. 집 앞 편의점에서 물을 사마셨다.  

   

나는 자취를 시작하면 형이랑 같이 있었던 때 처럼 맛있는걸 많이 해먹고 건강한 음식도 먹고 돈도 아끼고 멋있게 살 줄 알았다. 하루만에 그 생각은 부셔졌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살았다. 배달음식 시켜먹고 그걸로 다음날 끼니까지 때웠다.   

   

어느새 자취방은 애매하게 남은 배달음식과 넘쳐나는 포장용기와 플라스틱 물통이 가득했다. 이렇게 살기는 너무 싫어져서 집 앞 마트에서 2리터 대용량 보리차 티백과 물통을 사왔다. 차근차근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물부터 끓여먹기로 결심했다.   

   

큰 팬에 물을 가득 채우고 인덕션을 켜 물을 끓였다. 물통에 티백을 담고 펄펄 끓는 물을 부었다. 물이 조금 남아서 텀블러에도 차를 끓였다. 별거 아니고 단순한 차 끓이기지만 그럴듯한 자취에 시작점이 될 거 같았다.     

보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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