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확실히 알게 된 것

확실히 알게 된 것

by 할매

우리 부부 산골에 살 때였다. 어느날 약 800여평의 논을 구입하게 되었다(20년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산골인지라 논(畓)은 높낮이도 모양도 면적도 각기 달랐다. 8개의 다랑치로 이뤄진 층층이 논이었다. 논 가운데에는 쫄쫄쫄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냇물 양 옆으로는 사람이 쌓아 올린 돌 축대가 엉성하게 쌓여져 있었다. 오래 되어 군데군데 무너진 곳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농장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내가 면사무소 근무할 때 였다. 군(郡)의 지원 사업이 있었다. 뽕나무 묘목 지원 사업이었다. 지원 사업이란

일정액은 자비 부담이고 일정액은 군(郡)이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우린 그 지원으로 500개의 뽕나무 묘목을 농장 여기저기에 두루 심었다. 빼곡하다 싶을 정도로 심었다. 심고 보니 뽕나무는 성장 속도가 무척 빠른 나무였다. 한 해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심고 보니 밭도 만들어야 해서 빽빽한 뽕나무가 걸리적거렸다. 산적은 다랑치 둘레에만 뽕나무를 남겨두고 어느 정도 자란 나무는 뽑아서 여러 사람에게 나눠 줘버렸다.


캐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 뒤, 다랑치 별로 밭을 만들었다. 온갖 나무도 심었다. 배나무, 사과나무, 단감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목련나무 등등 생각 나는대로 심었다. 나무들은 우리 부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무럭무럭 자랐다. 열매도 열리기 시작했다. 봄에는 나물 캐는 재미, 가을엔 과실 따는 재미, 시절 따라 피는 각종 야생화와 예쁘기만한 여러가지 꽃 보는 재미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여름, 강력한 태풍이 몰아쳤다. 엄청난 폭우였다. 우리집 앞의 개울도 넘쳐버렸다. 도로가 온통 물바다였다. 우린 집도 집이지만 농장도 걱정되었다. 농장은 집 위쪽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산골이라는 지형 자체가 그렇다. 층층이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농장 양 옆의 개울 축대도 부실한 터였다.


폭우가 휘몰아치고 세력이 약해질 무렵 우린 농장으로 가 봤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농장 맨 위의 길쭉한 다랑치와 좌측 개울 건너 작은 두 다랑치만 제외한 다랑치들을 엄청난 물이 덮치며 흘러 내리고 있었다. 면적도 가장 넓었던 맨 아래 다랑치. 가로로 길이도 꽤 길었다. 그 다랑치 전체를 물이 휩쓸어 내리고 있었다. 마치 축소시켜 놓은 나이아가라 폭포 같았다. 우린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 보았다. 우와~ 이게 뭔 사건이여~ 오메오메 어찌까~~

그랬던 폭우가 그쳤다. 개울을 살펴보니 지름 1m, 길이 3m 정도 되는 크고 묵직한 시멘트 관이 흘러내려와 가로막혀 있었다. 얼마나 거센 폭우였는지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우리 농장 바로 위 상류에는 타인의 조그만 밭이 있었다. 그 밭은 개울을 건너가야 했다. 어느날 그 밭 주인은 보다 쉽게 개울을 건너다니기 위해 개울을 가로지르는 크고 묵직한 시멘트 관 2개를 개울 바닥에 가로로 놓았다. 그 위에는 흙으로 덮었다. 나는 그걸 보며 개울이 위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울 양 옆의 축대도

부실했다. 하지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내 남편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하물며 딴 남정네에 있어서랴~

할 말이 없었다.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다툼이 일어날 게 뻔하니까.

그랬던 관 하나가 흘러내려와 우리 농장을 관통하는 개울을 막아버린 결과였다. 그 작은 나이아가라 폭포는 자연 재해도 재해지만 무지한 인간으로 인한 인재(人災)이기도 했다.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나는 그걸 보며 불교(佛敎)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불교에는 삼독(三毒)이라는 게 있다. 탐(貪), 진(嗔), 치(痴). 욕심, 분노, 어리석음. 많은 서적들이 죄다

'탐진치' 라고 한다. 나는 그걸 보며, '탐진치'가 아니라 '치탐진' 이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와이셔츠 단추는 첫 단추부터 잘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는 탐내거나 분노하는 일이 드물다. 왜냐면 탐내고 욕심부리는 일도 결국 어리석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고 화가 나는 것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이에겐 덜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불교 서적들이 그런 면을 소홀히 했다고 여겨왔다. 어리석음을 먼저 깨우쳐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서적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베껴쓴 듯 탐진치라 한다. 그걸 지적해 주는 사람 하나 없다.


나는 폭우 사태를 겪으면서 사소해 뵈는 잘못 된 가르침 하나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빚어내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책으로만 배우는 것과 직접 경험하여 배우고 확인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나는 어릴 때 부터 책을 좋아했었다. 책 보는 일을 결코 소홀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먹고 살기 빠듯할 때엔 책 볼 틈도 없었지만 결코 잊진 않았다.

책과 경험이 합일 될 때 그건 보다 더 확실한 지식이 된다. 이론과 실무가 병행될 때 그 배움은 보다 더 확실한 것이 된다. 농장의 나이아가라 폭포수가 내게 일깨워 준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 밭 주인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았더라면 그런 인재(人災)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분명 No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안다. 온전치 못함도 안다. 그래서 자주 곱씹어 본다. 이게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생각이나 행동일까 하고~~ 그래서인지 어느 찰학자도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하지 않던가~

탐진치가 아니라 치탐진(痴貪嗔)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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