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에서
('삶과 죽음 사이' 연재글, 끝 글입니다. 2016년 1월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아주 조금 수정 했습니다. 세월이 너무 빠릅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군요. 글 쓸 시간이 없어 새 글 대신 이 글로
갈음합니다)
뭘 먹고 뭘 입을지, 어떻게 살지, 몸도 마음도 다 내려놓고 살다보니, 남녘 땅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나는 종종 실감한다.
진눈깨비 온다는 예보더니 우중충한 날씨였다. 아침 나절 우리 부부 읍내에 나갔다. 율무며 돼지감자 등
몇가지 볶아 올 요량으로. 읍내 초입에 있는 K방앗간.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몇 십년 째 잘 돌아가고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변의 오래 된 방앗간. 방앗간 옆 한켠에 우리는 모닝차를 세웠다.
5일 장날은 특히 더욱 북새통을 치르는 집인지라 하루 앞서 갔는데도 방앗간 기계들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여러대의 가루 내는 기계며 쌀을 찌는 서너개의 커다란 찜솥 등. 각종 곡물들을 볶아내는 3대의 기계 옆에
나는 가져간 것들을 부려놓고 순번을 기다렸다.
하릴 없어 도로변에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섰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지나가다 말고 되돌아와 "인간극장에 나오셨죠? 딱 봉께 기구만~" 하며 지금도 닭 키우냐 어쩌냐 하며 궁금증을 풀어 놓으신다.
그걸 기화로 방앗간 앞에서 얼쩡거리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내게 볶은 검정깨 한웅큼을 주시길래 손바닥에 낼름 받았더니 환장하게 뜨겁다. "앗 뜨거!! 이히히히~" 나는 왜 이럴 때도 웃음이 나올까이~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깨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니 고소함 짱이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 신이 난 듯 이것저것 계속 갖다 주신다. "우리 아들이 호주에서 왔는디 이렇게 볶아서 가루 내 주면 갖다가 잘 먹는단 말이요~" 하면서 계속
쫑알거리신다.
나보다 살짝 연상인 듯한 그 아주머니. 최근에 운전면허를 따셨단다. 그래 가끔 차를 몰아보는데 남편이 차를 차지해버려 아쉬워 죽겠단다. 우리 차를 보더니 작아서 좋다며 자기 차는 엄청 큰 차란다. 근데 가끔 운전대를 잡으면 조수석에 탄 남편이 차에서 내릴 때까지 잔소리를 해 댄단다.
"빨리 가랑께 오메~ 속 터져~~" "뒷차가 욕하것다~흐미~~" "워메~ 자넨 조선팔도에서 제일 멍청한 여자여~~아~밟으랑께~밟아~~" "씩씩씩~ 그래도 애들은 다 잘 나났어~"
온갖 소리를 해가며 자기더러 조선팔도에서 제일 멍청한 여자라고 한다며 하소연 하신다. 천연덕스럽게 내 손에 뭔가를 계속 갖다주며 하소연 하는 통에 웃음 헤픈 이 아낙, 웃음이 멈춰지지 않는다.
아하하하하 히히히히히~ 도로변에 울려퍼지는 내 특유의 웃음소리.
그러자 방앗간 안에서도 웃음 소리가 일더니 여기저기 분주하던 방앗간 주인 아주머니가
"뭣이 그리 재밌소~" 하며 웃어 보이신다. 방앗간에 도착할 때부터 삶에 지친 인상을 팍팍 쓰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 나는 내심, 히히히 드뎌 웃겼다~ 기뻐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
조선 팔도에서 제일 멍청한 여자에게, "그러면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쑈~ 애들은 80%가 엄마 혈통이라 잘났다고~" 그러면서 주인 아주머니, 내게도 엄마 혈통에 대해 구구절절이시다.
우헤헤헤~ 나는 웃느라 배꼽이 빠질 지경인데 주인 아주머니 왈~ "남편이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봐야것고만~" 하며 이리저리 분주하다. 그러자 마침 조선팔도에서 제일 멍청한 여자의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나타났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여자의 남편임을 알고 와하하하하 웃어제끼는데, 조선팔도에서 제일 멍청한 여자에게
그 남자, "다 됐어?" 라고 하자, 방앗간 주인 아주머니, 내 바로 옆에 서 있던 울 산적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예예~ 저보쑈~ 지가 못났구만~ 예예~ 저 보란 말이요~" 이리저리 왔다갔다 기계를 계속 다루면서도
산적에게 몇번이나 저기 좀 보라던 주인 아주머니.
보라는 곳에는 이런 아저씨가 서 있었다. 조선팔도에서 제일 멍청하지만 키도 크고 후덕해 보이는 여자와는 달리, 얼굴엔 핏기라곤 없는 허여멀쑥하고 밥 맛 없게 생긴 주름 투성이의 그다지 명석해 뵈지 않는 얼굴의
깡마른 아저씨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서 있었다.
귀가 길, 산적에게 들어 보니 엄청 크다던 차는 1톤 봉고 트럭이었다. 우하하하하~
그나저나, 방앗간에 배꼽을 빠뜨리고 온 이 아낙이 조선팔도에서 제일 멍청한 여자인 것 같은데 어쩌까잉~
그 귀한 배꼽을 빠뜨리고 왔단 말이요~~ 히히히히~
(많이 웃으셨나요? '삶과 죽음 사이'의 연재글 30화를 이 글로 끝냅니다. 어느 작가분께서 매거진에 먼저 글 올리고 나중에 연재북에 올리는 게 좋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저는 연재북 글부터 올렸던 것 같습니다. 잘 몰라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연재북 3번 째 인지라 어느 정도 익숙해졌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인도 배낭 여행'입니다. 기왕 연재북부터 시작했으니 의리있게 연재북에 계속 올리겠습니다. 대략 30화 정도면 배낭여행기를 마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 다음에 매거진에 올리겠습니다.
지금처럼 매주 '화,금'요일 올릴 예정입니다. 삶이 힘들지라도 많이 읽어주시고 재밌어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뭐 안 웃으셔도 무방합니다. 저처럼 배꼽이 빠진 줄도 모르고 살아가시면 곤란하니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