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자 내러 가는 날

비자 내러 가는 날

by 할매

세상은 넓었다. 아니 한국은 넓었다. ㅎ~ 꼬딱지만한 나라가 넓다니~ 시골쥐인 내 눈엔 그렇게 느껴졌었다. 전날 인천에서 잤던 터라 새벽 5시에 일어났었다. 아침 6시 반에 출근하는 사위 차를 얻어 타야 했으니까.

안양 석수동에서 내렸다.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려 차를 갈아탔다. 한남동까지 갔다. 한남동 전철역을 막 빠져 나오자 내 눈에 보이던 풍경. 와아~ 한남동이 이렇구나~ 너무 이국적이었다. 한남대교로 가는 길인데 왼쪽 언덕배기를 꽉 채우고 있는 크고 작은 집들이 마치 내가 유럽의 어느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언덕 오른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교회의 뾰족한 첨탑을 위시하여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함께 어우러져 어찌나 예쁘고 이국적으로 보이던지 새벽 바람을 맞으며 나는 한참을 바라봤었다.


우리나라도 아파트만 즐비하게 세울 것이 아니라 이런 특이함이 느껴지는 곳을 발굴하여 유럽풍으로 재 정비하면 관광지화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롱다롱한 우리나라 풍의 컨셉(concept)으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그런 곳. 전주 한옥 마을도 좋긴 한데 인위적인 곳이 아닌 인간 냄새 나는 그런 동네로~ 왜 우리나라 행정가들은 이런 발상들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못 하는건지 안하는 건지~ 담배 한개비 다 피우고 걷기 시작하는 산적의 뒤를 나는 쫄래쫄래 따라갔다. 인도를 위시하여 제 3세계 국가들의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곳을 향해서~ 비자 내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와~ 진짜로 인도를 가긴 가는 모양이네~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 산적이 달리 산적이남~

그래봬도 자타가 인정한 무등산 산적인데~ 하겠다는 건 끝까지 해야지~


우린 인도 비자 발급 센터를 찾아갔다. 8시반에 제1착으로 도착한 우리. 9시가 되어가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센터가 오픈되자마자 내부를 꽉 채워버렸다. 후줄근한 차림새인 무등산 촌사람 둘이 제1착으로 들어서서 발급 절차를 밟는데 어딜가나 잽싼 사람들은 있었다. 센타가 오픈 되자마자 여행사 직원이라고

소개하던 사람들이 후다닥 일을 처리하곤 우리보다 먼저 가버렸다. 에구~

직원이 시키는대로 했는데도 서류에 사인도 잘못했지, 번호표도 늦게 뺐지, 대기 시간은 길지, 늦어져 버렸다. 번호표를 두번 빼는 줄 꿈에도 몰랐었다. 내가 얼떨결에 한장 더 빼긴 했는데 비자용 사진이 아닌 여권용 사진을 가져가는 바람에 번호를 놓쳐버렸다. 에효~


헌데,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했다. 일이 지체되는 사이, 지난 주 K시 무각사 장터에서 봤던

티벳의 스님을 딱 만났다. 그분도 인도 비자를 내러 오셔서~ 치렁한 빨간 옷차림 그대로~

어찌나 반갑던지 한참을 바라보며 서로 웃었었다. 그 스님과 같이 오신 스님의 도반이 솔선하여 비자를 내시는데, 티벳 사람이지만 인도 국적으로 되어있어 뭔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우린 절차를 끝내고 먼저 나왔다. 북새통에 잘 가시라는 인사도 못 드리고.


우린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한남동의 길거리로 다시 나왔다. 오랫만에 찾은 서울의 거리. 어딘가를 구경할까 하다 그냥 기수를 돌려 무등산골 우리집으로 향했다.

강남 터미널. K시행 고속 버스표를 사면서 우린 또 은근히 행운을 기대해봤다. 전날, 광주에서 인천으로 향할 때도 일반 버스표를 샀었다. 고속버스보다 개인당 만원이 싸길래~ 헌데, 그 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다른 고속버스가 투입되어, 널널하고 쾌적한 차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었다.


그런 행운을 또 기대해봤다. 행운이 또 따라주더냐고? 어림 서푼 어치도 없었다. 행운이란 막 퍼붓어 주는 게 아니었다.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자 행운은 따라주지 않고 이상하게 미친 여자가 있었다. 찌린내 폴폴 풍기며 왔다리 갔다리 배회하면서 계속 '미친ㄴㅕㄴ'이라고 씨부렁거리고 다녔다. 헐헐~ 나~ 참~


우린 일반 고속 버스를 타고 빨치산이 기다리고 있는 산골집으로 향했다.

?? 빨치산???

다음에...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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