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케역과 3번째 호스트

사테역과 3번째 호스트

by 할매

(위 사진은 방글라 사히브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DlGAn8mSas

(산적님이 만들어준 인도 사진 모음입니다)


새벽부터 싸르르 아파 오던 배가 변소에 갔더니 주루룩 빗소리를 냈다. 그럴까봐 그토록 조심했는데~

물 마시는 것조차 자제했는데~ 가지고 갔던 비상약 중 설사약을 급히 찾아 먹고서도 세번이나 변소를 더 들랑거리던 나는 노심초사했다. 행여 울 산적이 알면 날 떼 놓고 갈까봐~ 제멋대로 산적이잖아~ ㅋㅋ~

비스킷 몇개로 아침을 때운 나는 산적과 함께 호스트 차에 올라 탔다. 뉴델리 남쪽 사케(Saket)역으로 가기 위해. 거기서 3번째 호스트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 사케역으로 가는 길은 양쪽에 숲이 있었고 원숭이들이

가족 단위로 놀고 있었다.


드디어 사케역에 닿았다. 우린 자신을 부정 부패와 싸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파리다받의 두번째 호스트와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때 마침 치러진 인도의 선거에서 자기가 지지하던 당이 승리했노라던 두번째

호스트. 부정 부패로 얼룩져 있던 집권당이 패배해 너무 기쁘다며 탄성을 지르던 파리다밧의 두번째 호스트. 만약 그가 정치인이 된다면 부정 부패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데 한표를 던진 나는 씁쓸한 미소로 그를 떠나 보냈다.

금방 우리를 알아보는 세번째 호스트. 차림새도 외모도 미국인 같은 인도인이었다. 세번째 호스트를 따라

걷는데 어마나 세상에~ 사케역 주변의 도로는 파리다받보다는 넓었고 도로 양쪽으로 즐비한 상점 앞엔 덮개 없는 시멘트 하수로가 설치돼 있었다. 하수로엔 더이상 더러울 수 없는 구정물이 거무죽죽 흐르고 있었다.

하수로에서 건져 올린 시커먼 쓰레기도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사케역은 파리다받보다 더 지독한 교통 지옥이었다. 거리 양쪽에 나뒹구는 쓰레기와 문득문득 풍겨오는 찌린내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던지. 그나마 넓은 우리나라 2차선 도로만한 길에 빼곡히 들어찬 차와 릭샤와 오토바이와 사람들과 개와 소들.

사람들에 떠밀려가며 약 5분 가량 걷자, 3번째 호스트가 도로가의 어느 건물로 들어섰다.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있는 반 지하방. 두평 남짓한 방에 들어서자 찌린내가 진동했다.

방에는 3살배기 사내 아이와 아이 엄마의 오빠라는 사람과 그의 애인이 있었다. 우리까지 모두 합해 7명

그 좁은 방에 웅크리고 앉았는데 숨통이 턱턱 막혀 왔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받아 놓은 밥상인 것을~


원룸형 방 한쪽은 더블 침대가 벽에 딱 붙어 있었고, 벽 한쪽은 씽크대가 놓여 있었다. 자그만 옷장과 침대

사이의 성인 한사람 겨우 누울만한 공간이 우리에게 배정되었다. 우리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던 아이 엄마의 오빠와 그 애인은 이내 슬그머니 방에서 나가버렸다. 울 산적과 호스트가 담배를 피운다며 나간 사이 33살이라던 아이 엄마와 나는 대화를 나눴다. 아이 엄마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서두로 많은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비싼 집세와 신통찮은 벌이로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아이 분유마저 오늘 부로 바닥났노라고~

밖에서 담배 피우고 들어온 울 산적은 호스트에게 몇가지를 부탁했다. 달러도 바꾸고 맥주도 마시고 싶노라며 돈을 건네 주었다. 착해 뵈는 인상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종일관 시니컬(cynical)한 표정이던 호스트.

오토바이로 갔다 오겠다며 얼마 후, 거스름돈까지 착실하게 건네주는 심부름을 해 주었다.


첫인상이 착해 뵈던 그 젊은 부부. 시간은 어느새 기울어 저녁 시간. 3번째 호스트와 우린 맥주 3병을 한병씩 나눠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울 산적이 행복하느냐고 묻자마자 호스트는 No! 라고 소리쳤다.

행복하냐고요? 노!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화산이 폭발하듯 자기는 행복하지 않노라고 항변했다.

해발 2,400 m의 쉼라가 자기의 고향이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 내비쳤다. 자기는 쉼라로 돌아가고 싶은데 와이프가 반대한다 했다. 와이프는 그가 밖에 나가고 없을 때 내게 말했었다.

그는 대학(University)에서 컴퓨터 공학과(Department of Computer Engineering)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그래서인지 호스트의 영어 발음은 다른 사람과 달리 정확했다. 산적과 대화가 되겠다 싶었는지 쉴새없이 쏟아지던 34살 아이 아빠의 현실 개탄.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갈 곳 없어 하는 젊은이들의 사정이 비단

우리나라 현실 만은 아닌 성 싶었다. 인도 역시 그런 문제점으로 젊은 청춘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리는

모양이었다.

이슥한 밤이 되어 옴쭉달싹 못할 공간에서 산적과 함께 모로 누운 나는 그날도 뜬눈으로 밤을 밝혔다. 밤이

깊어지도록 잠 들줄 모르던 3살배기 사내 아이는 '마비가조가~ 마비가조가~' 하며 아빠가 꺼 버린 TV만화를 켜 달라고 울어댔다. 아이가 그 만화를 계속 보길래 잠깐 봤었던 그 만화는 학대 받던 아이가 끝에 누군가를 쥐어패던 만화였다. 어쩌면 아이는 그렇게 만화에서 대리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전 그의 아내는 내게 또 말했었다. 그는 술만 들어가면 난폭해진다고~ 아이도 쥐어 팬단다. 그날도

그러려는 걸 울 산적이 말렸었는데~ 그러니 아이가 안주할 곳은 TV 만화 밖에 없을 듯한 비참한 현실이었다. 두번째 호스트 집에서의 잠자리는 그곳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어디선가 여자의 짧은 비명 소리도 들렸다. 밖에 비하면 찌린내 진동하던 그방은 분명 천국일 것이었다. 적어도 성폭행 당할 일은 없는~


그곳에서의 밤은 그렇게 가고, 새벽 먼동이 트려하자 우린 어둠 속에서 행장을 꾸려 그 집을 나섰다. 떨어졌다던 분유와 과자도 사 줬으니 며칠간은 그나마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위안으로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지우며~ 울 산적은 방에서 그 아내에게 1,000루피를 더 쥐어 주었다. 행복하라는 말과 함께~


움직거릴 때마다 물씬거리는 찌린내와 싸우며 밤을 밝힌 날, 여행 6일 째인 2월 11일 이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이른 아침 우리를 사케역까지 배웅 나온 세번째 호스트는 니자무딘 역으로 간다며 오토 릭샤를 잡아 주었다. 대부분의 열차가 거의 통과하게 돼 있는 니자무딘역. 우린 하리드왈 행 열차를 예매해 놓고 있었다.

사케역




니자무딘역 근처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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