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생이별 할 뻔 했던 인연

생리별 할 뻔 했던 인연

by 할매

New Delhi again

(산적님이 만들어주신 인도 사진 모음입니다. 우리집에 왔던 외국 여행객도 있네요)


인도 여행 8일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 버스였다. 출고 상태 그대로인 듯 의자나 선풍기에 씌어 있는 비닐도 제거되지 않은 신형 버스였다. 헌데, 삐까번쩍한 새차임에도 승객은 우리 둘 포함 겨우 3명 뿐이었다.

그렇게 우린 내리 사흘을 머물렀던 리시케시.

낮이면 그토록 온순하던 개들이 밤이면 숫사자로 돌변하듯 사자 같이 포효하던 리시케시.

인도 입국한지 처음으로 주택가 골목길에서 맡아보던 생선 굽는 냄새가 고소하던 리시케시.

스님(Buddist monk)이 죽으면 락시만 줄라의 1/5 지점, 가장 깊은 갠지즈 강물 속에 수장시킨다던 리시케시. 헌데 묘하게 수십년간 사체(死體 = Corpse)가 한번도 떠 오른 적이 없었단다. 아무리 돌을 매달아 수장시킨다 해도 한,두구 쯤은 떠 오를 법도 하련만~ 스님들의 수행심이 깊어서인지, 그 지점의 수심이 깊어서인지, 이유를 알 길 없던 리시케시.

무엇보다, 쿤달리니 각성을 이룬 분을 만나뵀던 리시케시에서의 사흘 간의 여행을 뒤로 하고 하리드왈의 버스 종점에 들렀다. 20여분간이나 정차하던 새차를 타고 우린 뉴델리로 향했다.


거리에는 뉴델리에서 열린다던 시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행렬이 걸어가고 있었다. 울긋불긋 단장한 축제의 소품을 어깨에 걸머진 개인과 소규모 단위의 사람들이 끝없이 걸었다. 행렬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도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수행을 일상화 한 사람들 같노라고.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걸어서 가잖아~

그것도 어깨에 무거운 소품을 걸머 메고서~


버스는 11시경 무자파나가르 고속도로 휴게소에 정차했다. 마치 휴양지처럼 꾸며진 고급 레스토랑과 공중

화장실까지 갖춘 휴게소. 나는 그 휴게소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다. 여성 화장실에는 칸마다 문지기가 있었는데 사람이 오면 문을 정중히 열어주었다. 화장실을 나올 땐 그 답례로 팁을 줘야 했지만~ ㅋ~

인도는 어딜 가나 화장실 내부에 화장지가 없다. 아예 화장실 자체가 없는 곳도 많으니 더 무얼 말하랴만

우리 산적 왈~ 남자 화장실은 그렇지 않았단다. 우리나라는 화장실 문화에서 만큼은 자부심 느낄만한

지구상의 최선진국이다.


운전 기사를 두명이나 교체하며 휴게소에서 30여분씩이나 정차하던 버스는 시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화려한 예비 행렬을 끝없이 보여주기도, 야무나 강을 건너기도 하며, 7시간 반 만에 드디어 뉴델리에

도착했다. 혼잡함이 극심한 뉴델리의 매트로. 우리는 그 혼잡한 전철을 타고가다 뉴델리의 3개 환승역 중 하나인 카슈미르역에 내렸다. 차따뿌르역으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맨 뒤에 쳐져있던 나는 울 산적과 하마터면 생이별 할 뻔 했으니~

나는 어딜 가든 울 산적 뒤를 따른다. 헌데, 산적이 전철에 올라타자마자 전철이 출발해버리잖아~ 으아~

겁이 덜컥 나는 순간, 울 산적이 메고 있던 배낭이 문에 딱 걸렸다. 전철 문이 다시 열렸다 닫히는 순간,

잽싸게 올라탄 한국의 이 촌년.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흐미 참말로~

고맙게도 산적이 메고 있던 노란 배낭은 인도에서 끊어질 뻔 했던 산적과 나의 인연을 그렇게 이어 주었다.

헌데 그뿐이랴~

종점인 차따뿌르역에 내려 혼잡스런 출구로 나가려다 또 한번의 생이별을 할 뻔 했으니~



새차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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