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바싼트 쿤지의 귀족 부부

바싼트쿤지의 귀족 부부

by 할매

New Delhi 4

(산적님이 만들어 준 인도 사진 모음입니다)


꾸뜹미나르 역에서 전동차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어느 인도 여대생의 조언으로 황급히 내려 전동차를 갈아타기도 하며, 우린 종점인 차따뿌르역에 도착했다. 인도의 뉴델리는 우리나라 서울과는 게임이 안된다. 인구도 훨씬 많고 복잡, 혼잡하다. 전철역에 내려 사람들에게 떠밀리며 출구로 나가는데, 나는 그만 산적을 놓쳐 버렸다. 전철 티켓을 아무리 출구에 터치해도 문이 안 열려 나갈 수가 있어야지원~

산적은 그런 줄도 모르고 인파에 섞여 멀어져 가버렸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나를 보고 마침 출구에 있던 어느 역무원의 도움으로 전철역 출구를 급히

빠져나온 나는 사색이 되어 황급히 달려 갔다. 그 복잡한 도시에서 산적을 잃어버리면 어쩔 것이여~

말없이 따라가고 있던 지아비가 눈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렸으니 이놈의 노릇을 어쩔 것이여~

순종형인 이 조선여인이 그 험한 인도에서 어쩔 것이여잉~~ 다행히 인파 속에 떠밀려 앞서 가던 울 산적.

뒤따라오던 내가 없다는 걸 깨닫고 되돌아오고 있었으니~ 흐히휴~~


두번이나 생이별 할 뻔 하며 다다른 4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 4,5층 규모의 고급 맨션형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바싼트 쿤지(Vasant Kunji )였다. 워낙 넓어 입구가 각기 다른 주택 단지. 우린 B-4 입구로 들어가

몇번 헤매다 경비원의 도움으로 카우치 호스트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릴 반갑게 맞아주던 젊은 인도인 부부. 태연스레 배고파 죽겠다는 울 산적의 너스레를 듣곤 바로 러시아

스파게티를 끓여주었다. 그런대로 입맛에 맞아 모처럼 정말 맛있게 다 먹어 치운 우린 그날 저녁, 호스트의

친구들이라며 찾아온 드러머들과 기타리스트, 그리고 호스트 부부와 함께 멋진 연주 속으로 빠져 들었다.

호스트 부부는 인도인인 남편과 러시아인 아내였는데, 남편은 기타리스트이자 고급 수제 기타(Handmade guitar)를 손수 만드는 비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아내는 러시아에서 인기를 날렸던 여가수였었고.

인도 생활 3년째라던 아내의 노래 실력은 대단했다. 우리나라의 패티김 정도랄까~

칠,팔십평 규모의 아파트엔 연주홀로 사용하는 넓은 홀이 있었고, 방 2개와 주방으로 구성 되어있던 아파트. 우린 한껏 재주를 부리는 인도의 젊은 음악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11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인도 여행 10일째인 다음날 아침, 나는 산적보다 1시간 늦은 7시에 일어났다. 전날 산적보다 1시간 먼저 잤는데도 피로가 누적됐는지 일어나는 것이 더뎠다. 일어나보니 넓은 홀에서 자다가 일어난 친구들이 어제 밤의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 분명히 드럼과 기타를 치던 젊은이들이었는데 인사 나누고보니, 우리처럼 카우치서핑으로 그 집을 찾아 온 두명의 청년이었다. 호주에서 온 배낭 여행족들. 러시아인 청년과 한국계 호주인 청년. 한국계 호주인은 6살 때 호주로 이민갔단다.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2년간 다녔고. 둘 다 20대로 1주간 인도에 머물다 파키스탄으로 간단다.


타국에서 만난 여행자들끼리의 대화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주요한 정보 교환(Information exchange)이 되기도 한다. 산적과 그 친구들은 이런저런 여행지의 정보를 교환했다. 8시 반에서야 뒤늦게 일어난 호스트 내외. 마침 인도인인 남자 가정부가 출근하여 타 준 짜이 한잔씩 마시며 우린 그날 여행 계획을 서로 나눴다.

우리보다 먼저 9시에 꾸뜹 미나르 여행길에 나선 그 젊은 청년들. 배낭은 그 집에 놔 둔 채. 그집에서 2박

하기로 했단다. 우리 역시 그랬었고.

우린 한국에서 만났던 인도인을 11시에 만나기로 했던 터. 호스트의 개인 정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는데,

호스트는 1층 아파트 바로 앞에 개인 소유의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정원엔 잘 가꾸어진 잔디와 각종

나무,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정원 역시 인도인인 정원사가 고용되어 관리하고 있었다. 정원 옆으론 큰 길이 나 있고, 길 옆엔 가난한 인도인의 초라한 움막이 비어 있었다. 인도의 부와 빈은 그렇게 극과 극을 달렸다.

그러면서도 서로 불편해하지 않고 공존했다.


인도는 그렇게 모든 것이 혼재했다. 부와 빈, 미와 추, 선과 악, 진과 위, 질서와 혼돈, 등등. 그 모든 게

다종교(multi religion), 다인종(multiracial) 속에 용해되어 굴러가는 것 같았다. 서로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서.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 서푼 어치도 없을텐데~


어쨌거나, 우린 차따뿌르역에서 만나기로 했던 인도인을 만났다. 한국 여인과 결혼하여 인도와 우리나라 K시를 왔다갔다 하며 살던 '뿌리'라는 이름의 인도 남자. 어느날 우연히 남광주역에서 만나 알게 됐던 사람.

산골 우리집에도 다녀갔던 사람. 얼마나 반갑던지~ 인도에서 만나니 더 반가운 것 같았다.

어떻게든 타인을 돕고 살라는 윤리 강령(Code of Ethics)이 철저히 배어있던 사람.

우린 그를 만나 함께 전철을 탔다. 그리고 라지브촉 역에 하차한 우린 시크교도들이 주로 이용한다던 시장에 들렀다. 산적이 쓸 터번과 내가 쓸 스카프를 사려고. 물론 그분이 기어코 사 주셨지만~

그리곤 '방글라 사히브'에 들어갔는데...

다음에...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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