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맥글레오드간지

맥그로드간지

by 할매

https://www.youtube.com/watch?v=oTEybY7Z__Y

(산적님이 만들어주신 인도 사진입니다)


대기장엔 버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람살라 방향은 대기인들이 유독 많았는데, 빨간 법복을 입은 스님들도 여럿 보였다. 우린 다람살라로 간다던 어떤 스님과 함께 시간 맞춰 버스에 올라 탔다.

어느새 짙게 내려 앉은 어둠을 뚫고 다람살라까지 12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눈부시던 차량들의 불빛도 점점 사그라들며 빠니밧 휴게소에 30분간 정차하던 버스는 모두 잠들어 버린 승객들을 태우고 새벽 4시 반, 간이 휴게소인 디아라 휴게소에 정차했다.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몇몇 사람만이 내려

소피를 보기도 했다.

우린 그곳에서 짜이 한잔으로 새벽의 추위와 허기를 달랬다. 드디어 새벽 6시 반,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모두들 총총히 사라져가는데 우린 갈 곳이 없었다. 다람살라에서 우릴 재워주기로 했던 카우치 서퍼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 마침 함께 탔던 스님께서 맥그로드 간지까지 가신다며 우리와 동행하자고 했다.

택시료가 200루피였는데 100루피씩 분담하자며~

새벽 어둠 속, 선택의 여지가 없던 우린 스님과 동행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어스름 속에 우릴 태운

택시는 비좁은 오르막 산길을 요리조리 잘도 올라가더니 맥클레오드간지 주차장에 멈춰 섰다. 스님께선 더

올라가신다며 우릴 내려주고 휭 떠나버렸다.


날은 그새 밝았고, 맥그로드간지의 작은 주차장엔 새벽에 도착하는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려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들이 벌써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린 그 중 착해뵈는 남자를 따라 갔다. 가서보니, 운 좋게도 인터넷상에 올라있던 좋은 평판의 FRAND HOTEL이었다. 1박에 300루피, 숙박료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주변 풍광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좋은 전망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 여장을 푼 우린 2월 24일 화요일, 19일째의 여정을 여유로이 보낼 수 있었다. 맥그로드간지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특히 빨간 승복을 걸친 승려들은 떼를 지어 다니기도 했다. 우린 게스트하우스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던 학교도 구경하고, 인도로 망명했던 티벳의 14대 달라이라마가 머무르셨던 템플도 구경했다.

마침 그곳에는 한국의 의료 봉사단이 도착하여 다음날 무료 의료 봉사 준비로 한창이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끌던 것은 입구 한쪽에 있던 벽화였다. 우리나라 3.1 운동 때의 유관순 모습이 그곳에 그대로 옮겨와 있는 듯한 벽화. 중국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으려는 티벳의 독립운동을 그린 부조물이었는데, 어쩜 그리 우리나라

3.1 운동 모습과 흡사하던지.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는 티벳의 독립과 달라이라마의 건승을 기원하며

목례를 올렸다.


숙소로 돌아오며 우린 그곳에서 하룻밤 더 묵기로 작정, 맥주 2병과 모모(인도 만두)를 사 들고 돌아와 편안한 밤을 보냈다. 맥그로드간지에서의 이틀째, 잔뜩 찌뿌렸던 하늘에선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인도

여행 이래 두번째 내리는 비였다. 천둥 번개를 동반했던 비. 우린 빗길에 땜뚝(인도식 수제비)을 먹으러 나섰다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아가씨 한명과 청년 둘이었는데 1달 8일 간의 일정으로 여행 다니고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역시 피는 콜라보다 진했다.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이라니~

그것도 우리 딸래미보다 어린 젊은이들.

우린 그 식당에서 여행 정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ISBT에서 10여 시간 만에 다람살라에 도착했다했더니 그들은 더 했단다. 슬리퍼 버스를 탔는데 경미한 사고가 나는 바람에 32시간이나 버스를 탔노라고~


작은 반도국가이면서 그나마 분단돼 있는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땅덩어리가 크긴 큰 나라가

바로 인도였다. 해발 1,500 미터가 넘는 고지대의 맥그로드간지에서의 이틀쨋 날은 하룻내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며 전기마저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인도의 전기는 삼상인데 맥글로드간지는 정전이 잦다 한다.

우린 비바람 속에 비를 맞아가며 구석구석 돌아다녔는데, 영락없이 우리나라 사람 같아 보이는 인종들이 아주 많았다. 외모가 닮았다는 점만으로도 친근감이 들던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맥글로드간지에서 이틀밤을 보낸 뒤인 2월 26일 목요일 21일째 아침, 다람살라로 향했다.


마침 다람살라의 카우치서퍼와 연락이 닿아 그곳에서 2박 하기로 해서. 아침까지도 정전이어서 우린 간 밤 사 뒀던 촛불을 켜고 여장을 꾸렸다. 전날 빗속에 여기저기 돌아다녀서인지 이삼일 전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던 산적은 이미 감기가 만창이었다. 그래도 그런 걸 극복 해내야하는 게 바로 여행이었다. 우린 빨간 승복의 승려들이 열심히 웅얼거리는 게송 소리를 뒤로 하고, 밤새 하얀 눈이 내려 덮힌 인드라하라바쓰 산봉우리도

뒤로 했다.


다람살라에서 맥그로드간지까지는 해발도 높은데다 노폭도 좁은 오르막길이어서인지 싸이클릭샤나 오토릭샤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택시가 다녔는데 택시비가 무조건 200루피였다. 우린 오다 말다하는 빗속을 씩씩하게 걸어 내려왔다. 도중에 작은 미니 버스를 만나 차삯을 물어봤더니 1인당 10루피란다.


그 덕에 우린 다람살라까지 편안히 도착, 7번째 카우치 서퍼와 만나 그의 사무실로 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던 7번째 호스트. 그의 사무실은 제법 사무실다웠다. 특별히 고가의 장비는 없었지만 여러대의 컴퓨터가 있었고, 서너명의 젊은이들이 열심히 모니터 앞에 앉아 일에 열중이었다. IT 산업의 떠오르는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 일에 열심이던 청년들의 열성으로 보아 그 미래가 허상 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린 그 호스트의 집에 여장을 풀고 뚝바 한그릇씩 사 먹으러 나갔다가 결국은 식당을 못 찾아 그냥 숙소로 돌아와야했다. 뚝바 대신 미세한 모래 그림으로 유명하다던 박물관 구경에 만족하며~

그렇게 7번째 호스트 집에서 여행 21일째의 저녁을 맞이했는데,...

다음에...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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