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꾸룩쉐트라에서의 비명

꾸룩쉐트라의 비명

by 할매

https://www.youtube.com/watch?v=vX2ltSnAkm4

(산적님이 만들어주신 인도 사진 모음입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 묵(먹물. 악인)을 가까이 하면 까매진다)~ 그새 인도에서의 탈법과 불법의 요령을 터득해 버린 산적. 일반표로 슬리퍼칸에 타는 편법을 현지인들에게서 배운 터라 원래 9시반 출발 기차표로 8시10분발 기차를 탔다. 어느 사회, 어느 국가나 원리 원칙주의자는 있게 마련. 그 열차의 검표원은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꼼꼼하게 일일이 한사람 한사람 표를 검사해오더니 산적이 내민 표를 보고 열차삯을 더 받아 냈다. 산적은 군말없이 200루피를 건넸다. 200루피로 편법 행위를 벗어 던진 우린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그 검표원을 지켜봤더니, 그는 정말 자기 직무에 충실했다.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열차에 새로 탄 사람들의

표를 검사했다. 내, 외국인 할 것 없이 우직하게 편법을 쓴 사람들에게서 추가요금을 받아냈다.

여행 11일째의 아그라행 열차에서 산적에게 돈을 더 받아 내던 검표원과는 태도와 자세가 사뭇 달랐다. 아그라행 검표원은 착복하려는 마음이 느껴졌었는데 꾸룩쉐트라 검표원은 정칙과 원칙을 준수하려는 마음가짐이었다. 모르긴 해도 받아낸 추가요금은 자기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아침 7시,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자던 사람들이 수십명이던 역 구내의 찌린내와 쓰레기와 악취가 진동하던

암리짜르역을 출발한 열차는 비 내리는 인도의 평야지대를 달리고 또 달렸다. 인도 여행 24일째 만에 처음으로 철로 주변에 서 있던 굴삭기를 보았다. 한두대도 아닌 수십대. 헌데 마냥 서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폼으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도중에 지나쳤던 암발라역암발라 CITY역과, 암발라 CANTT역으로 구분되었는데 암발라씨티역 근처의 철로변에는 수십동의 천막촌이 있었다.


드디어 2시경, 꾸룩쉐트라에 도착했다. 근데 아뿔싸~ 경계를 늦추고 있다가 내리려고 나간 곳이 하필 식당칸으로 들어가버렸으니~ 식당칸은 내리는 문이 아예 잠겨 있었다. 급히 되돌아 뛰어서 열차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을 제치고 열차에서 내리고, 밀쳐진 사람들이 올라타자마자 열차는 출발해버렸다. 더군다나, 내린 역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인도는 대리석이 흔해서인지 어딜 가나 대리석 바닥이 많다. 그곳 역시 대리석과 시멘트 바닥이 섞여 있었는데 비가 온 탓에 바닥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더우기 나는 싸구려 중국산 오천원짜리 하얀 플라스틱 신발을 신고 있었으니 오죽 미끄럽겠냐고. 빙판을 걷는 것 같았다.


조심조심 걸어나온 역전엔 비가 오는 바람에 오토릭샤 이십여대가 발이 묶여 서 있었다. 사람들은 강한 빗줄기 속에 어디론가 다들 뿔뿔이 흩어져 갔다. 한참을 망설이던 우리는 비를 맞으며 역 구내를 빠져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숙소를 찾아야해서 바짓가랑이를 걷어부치고 걸어다니며 호텔을 찾아다녔다. 헌데 형편 없는 시설에 비해 숙박료가 비싸도 너무 비쌌다. 1,000루피 이상이 대부분, 어떤 곳은 1,400루피를 부르기도,

어떤 곳은 아예 우리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렇게 헤매다 비 맞으며 용감하게 운행하던 릭샤를 잡아 타고 겨우 찾아 들어간 곳. 700루피를 500루피로 깎아 들어갔는데 여장 풀고보니 호텔 개업한 이래 한번도 청소를 안 한 것 같은 화장실이었다. 소변을 보려고 좌변기에 앉으려던 나는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러대야 했다. 짧고 시커먼 머리카락 다발이 변기 둘레에 뭉텅이로 붙어 있었던 것. 마치 사람의 머리를 잘라 그곳에서 털을 밀어버린 것 같았다. 오싹 돋는 소름을

진정시키고 아쉬운대로 대충 청소를 했다.


젖은 옷가지도 널고 저녁 식사까지 해결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개업한 이래 한번도 빨지 않았는지 거무칙칙해진 담요에서 풍기는 이상야릇한 냄새라니~ 우천시의 추위로 할 수 없이 덮긴 덮어야 했다.

마침 휴대용 벌레 모기 스프레이가 있어 담요에 떡칠한 뒤 여름 휴대용 덮개를 먼저 덮고 그 위에 담요를 덮고 잤다. 설상가상, 밤 내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는데 냄새는 고사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했다. 3월 1일 여행 24일째의 날은 행운의 여신이 그렇게 우릴 외면했다. 꾸룩쉐트라가 힌두교 성지라 볼

것이 많다 했는데 다음날도 비가 온다는 날씨였다. 비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엔 여행 종반전이라 일정도 빠듯하고 여건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우린 고민하다 힌두 성지 구경은 포기하기로 했다. 경비도 아낄 겸 조용한 곳에 며칠 머물다 귀국하기로 했다. 귀국하기 위해 델리로 돌아가는 행로에 있던 빠니밧을 택했다.

검색 결과 조용하고 깨끗하다 해서.


다음날 아침 6시 기상, 한국에서 가져갔던 인스턴트 커피를 마지막으로 타 마시고 열차역으로 갔다. 다행히 비가 소강 상태를 보여 걸어갔는데 개똥, 소똥, 사람똥, 쓰레기가 비에 섞여 침수돼 있는 도로라니~ 그곳의

도로는 하수 시설이 전혀 없었다. 흐휴~


다다른 역의 플랫폼, LED 전광판에 원래 타기로 했던 12960 열차의 안내가 계속 안 떴다. 할 수없이 빠니밧을 경유한다는 12716편 열차를 탔는데 일반석 차량을 타야해서 신나게 달려 겨우 탔다. 인도의 열차는 워낙 길어서 타야할 차량을 찾기가 쉽지 않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신나게 달려야 한다. 그래서 여행도 젊어서 다녀야하고~


타고보니 여태 탔던 열차와는 객석이 달랐다. 중앙에 통로가 있고 통로 양쪽으로 좌석이 3개씩 배치된 객차였다. 재밌는 것은 자량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청군, 백군 마주보듯 좌석이 배치돼 있었다. 빈 좌석 하나없이

꽉 찼던 열차. 우린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열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열차에 몸을 맡겼다. 들에는 모내기 한 경작지도 보이고, 빗물이 흥건히 고여있는 농경지도 보였다. 열차를 잘못 탔노라고 다음역에서 내리라던 터번 두른 겸표원은 추가요금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KANAL역에 한참을 정차하던 열차는 드디어 빠니밧에 도착했다.

다음에...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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