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빠니밧에서의 여유

빠니밧의 여유ㅣㄴ

by 할매

https://www.youtube.com/watch?v=As3AKVv45zs

(산적님이 만들어 주신 인도 사진 모음입니다)


빠니밧판다바스에 의해 세워진 고대 도시이며 3번의 대전쟁이 치러져 유적과 유물이 거의 사라져버린

도시였다. 또한, '드하바' 라는 식당에 가면 펀잡 지역의 음식이 유명하다는 도시였는데, 섬유와 직물로도

유명했다. 클리어 트립을 통해 검색해 놓은 파니밧의 호텔들을 우린 찾아다녔다. 비구름마저 걷혀 있는 가운데 서너군데의 호텔들을 눈으로만 훑고 다니다가 괜찮다 싶은 갤럭시 호텔이라는 곳에 여장을 풀었다. 1일

숙박료, 900루피를 700루피에 머물기로하고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3층의 206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월 6일 출발하여 3월 6일 귀국하기로 한 터라 인도 여행도 거의 끝나가는 단계. 이젠 느긋이 쉬어가며 출국하기로

작정. 우린 공사중이라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점심으로 어느 식당에서 짜왈을 사 먹고 맛이 그런대로 괜찮아 저녁 때 먹으려고 주문 포장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1시간 이상이나 헤매며

와인과 인도 소주 1병까지 사 들고서. 우리는 집에서도 저녁마다 한잔씩 해야 기분 좋은 애주가들. 인도라고해서 오래 된 버릇이 사라질리 없었다. 술 파는 가게에 맥주가 없어서 포켓용 보드카 같은 작은 와인 한병과, 우리나라 소주처럼 투명하고 맑은 인도 소주 한병을 사 들고 돌아왔는데, 400 미리 정도 되는 소주에서는

공업용 알콜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걸 마시면 영원히 뻗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알콜 도수가 50%이던 와인 한병으로 우린 얼큰히 취해버렸다. 때이른 술시, 오후 4시부터 홀짝거렸으니~

만사 제치고 떨어져버렸다. 그렇게 갤럭시 호텔에서의 1박은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에 잠이 깨다 말다 하던 밤이었다. 여행 26일째. 아침부터 나는 설사를 했고, 산적은 만창이던 감기가 낫지 않아 코를 풀어대야했다. 화장지도 바닥났는데~

인도의 화장실 문화는 미개해서 화장실 관련 산업이 낙후되어 화장지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술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고행길이다. beer shop이라는 가게에서만 술을 판매한다. 가격도 비싸다. 인도 여행 중 애로 사항이라면 애로 사항이었다. 여행 마무리 단계, 마음에 드는 호텔에 투숙했겠다, 경비도 남았겠다, 뭔 걱정이겠는가~ 긴장이 풀려버렸는지 한사람은 설사병, 한사람은 감기로 끙끙 댔으니~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 대한(大韓)의 남아, 여아가 아니던가~ 특히 나는 환갑이 된 낡은 여아~


씩씩하게 아침 9시 반 경, 빠니밧의 시장 구경에 나섰다. 인사르 바자르는 우리나라 청계천 같은 시장이었는데, 얼마나 미로로 이어졌는지 한참을 헤매야 했다. 좁은 골목길 양쪽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섬유의 고장답게 포목점, 옷가게, 담요가게, 신발가게등이 많았었다. 인도는 향료로도 유명한 나라. 빠니밧의 시장은 유독 향료를 많이 썼는데 좁은 골목 양쪽에 빼곡히 들어찬 가게에서 향을 피우는 바람에 골목길엔 희뿌연 연기와 향냄새가 진동했다. 그런 거리를 한참이나 헤맸으니, 어느 순간 허기가 느껴지더니 머리가 몽롱해지며 강한 현기증이 났다.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을 겨우 가다듬고 무사히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대로변에는 단과 대학들이 여럿 있었는데 섬유 관련 학과들이 많은지 여학생들 또한 많았다. 점심을 해결하려고 여대생들이 붐비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역시 우린 아직 젊어도 너무 젊은 모양이었다. 여대생들이 즐겨 먹던 햄버거가 우리 입맛에 딱 맞았으니~ 우린 시장에서 '짜니뜨 뻬리오' 라는 노란 참외도 사고, '까쥬' 라는

파스타치오 비슷한 견과류와 '쁘따~암'이라는 아몬드 비슷한 견과류도 샀다. 속이 빨갛고 겉은 푸른 우리나라 수박 같이 생긴 큰 과일도 샀는데 숙소로 돌아와 그걸 쪼개던 우리는 기겁을 했다. 어찌나 똥냄새가 지독하게 풍기던지~

우린 그걸 호텔 카운터 직원에게 통째로 줘 버렸다. '비센드라' 라는 이름을 가진 카운터 청년은 그걸 익혀

먹으면 참 맛있는 과일이라며 재미있어 했다. 며칠 간의 비로 인해 한쪽 대로변은 온통 물에 잠겨 있었는데, 그에 아랑곳 없이 잘도 굴러다니는 각종 차량들. 그 도로의 물이 어디론가 빠져 버렸던 3월 3일 2박째, 저녁 일찌감치 잠이 들었는데,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킨 꿈을 꾸다 퍼뜩 깼다. 깬 순간, '나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일었다. 나는 무엇인가~ 사실 나는 불교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 인간은 본래 무일물이라는 어느 선사의 말을 추호도 의심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다. 아무 것도 아닌 무에서 형체를 갖춘 우리들. 형성된 육신으로 인해 온갖 걱정, 근심, 갖은 망상과 욕망으로 허덕이는 존재. 나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인도에 와서 누군가 내게 주문이라도 건 양, 자다 깨어 수없이 파고들던 질문. 불현듯, 그래~ 번뇌 한조각일뿐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다.


산적도 깼는지 어둠 속에서 또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한참만에 "어이~ 이것 좀 보소~" 하며 내게 보여줬던 동영상 한편. 시크교 유튜브에 올라 있던 짧은 동영상. 내용은 이랬다. 늙은 아버지와 중년의 아들이 숲 속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숲을, 아들은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다. 나무에 앉아있던 새. 아들은 새라고 대답했다. 한참만에 아버지가 같은 질문을 했다. 아들은 또 같은 대답을 하고~ 몇번을 그렇게 질문과 대답이 오가다 급기야 아들이 버럭 화를 냈다. 몇번을 말해야 하느냐고~ 한참 말이 없던 아버지는 조용히 아들에게 말했다. "애야~ 네가 아주 어렸을 때 너도 내게 똑 같은 질문을 했단다. 나는 스물한번이나 반복되는 네 질문에 여전히 새라고 가르쳐주었단다" 라고. 그러자 아들은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아버지를 꼬옥 안아주던 동영상이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짬뽕된 꿈 뒤에 번뇌 한조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크교 동영상은 내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잠을 설칠 정도로. 갤럭시 호텔에서의 3박째인 여행 27일째. 새벽 5시부터 이슬람 사원에서는 아침을 알리는 코란 독송소리가 울려 퍼졌다. 술 취한 노인네가 횡설수설 주사를 부리는 듯한 가락과 음성으로~ 우린 일어나 아침 9시부터 근처 사원 탐방길에 올랐다. 유서깊은 유적 유물은 파괴되고, 새로 지은 듯한 작은 시크교 사원을 들러 하지라트 부왈리샤라는 이슬람 모스크, 힌두 사원데비 템플까지 순례자라도 된 양 차례로 각각 20루피씩 지불하며 보았다. 그리곤 또 인사르 바자르를 헤매고 다녔다.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가난뱅이인 우리들, 인도 여행도 지인들에게 10만원씩 갹출하여 오지 않았던가~ 순차적으로 갚겠노라며~ 그러니 선물도 값싸고 인도다운 것을 골라야했다. 생각해보니 인도산 라면과 비리가 적격이었다.


'비리'는 인도산 잎담배로 인도의 서민들이 즐겨 피는 담배다. 담배잎으로 담배잎을 돌돌 말아 놓은 아주 짧고 원시적인 담배. 그걸 파는 가게를 찾지 못해 헤매고 돌아다니다 결국 못 사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마지막으로 물어물어 간 곳에서 라면 몇개와 비리를 살 수 있었다. 인도라는 나라는 그랬다. 아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모르는 사람에겐 진을 빼게 했다. 인도뿐이겠나마는~


3월 6일은 인도의 홀리 축제일. 벌써부터 거리엔 물감 바른 사람들이 등장했다. 헤매다 겨우 찾은 Beer Shop 앞에도 술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우린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를 홀리 축제를 기막히게 피해 가는 일정이라며 빠니밧 기차역으로 가서 30분 가량 줄지어 기다리다 델리행 기차표를 예매,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 여행 도중 썼던 메모지를 펼쳤다. 더러웠던 싸구려 사원인 깔란다촉힌두사원, 하누만, 락시만 시타, 시바링가, 크리슈나가 등등 메모가 빼곡했다. 인도 여행 온 한국 무등산의 촌부 두명인 우린 그렇게 열심히 사진도 찍고 인사도 드렸었다. 이름이 '리틱' 이라던 14세 소년의 자청 안내로 800년 전 술탄왕의 전설이 깃 든 사원도 둘러보고 마지막 찾아간 데비 템플에서 11학년이라는 여학생 둘을 만나 사진도 찍었었다. 이름이 '안질리' 와 '쏘냐'였다.


사원 경내의 나무엔 열매 달리듯 까마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도 보았고, 사원 입구에서 물동이 앞에 쪼그려 앉아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샤워하던 할머니도 보았다. 인사드바자르 골목에서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며 식사하던 돼지 가족도 보았다. 엄마, 이모, 고모, 아기돼지들. 골목을 한바퀴 헤매 돌아 다시 그 자리에 갔을 때는 아빠돼지도 합류해 돼지가 12마리나 되었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엄마돼지에게 달라붙어 열심히 젖을 빨고 있던 자그만 아기돼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드디어 델리 공항으로 가는 날, 3월 5일 목요일 28일째 아침. 빠니팟 열차역엔 거대한 아나콘다가 움직이는 것 같이 화물차가 지나갔다. 그곳 플랫폼에도 여행 기간 동안 자주 목격했던 침 뱉는 인도인들이 있었다. 인도 어딜 가나 보이던 모습. 이빨 사이로 속사포처럼 침 뱉는 인도 남자들. 하얀 침이 아닌 빨간 침. 인도 커리 색깔의 침. 하얀 침을 뱉는 사람은 왠지 인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선 울긋불긋 원색의 옷을 입고 있으면 웬지 띨띨하고 맛이 간 사람처럼 보이는데, 강렬한 원색의 옷차림이 당연하듯 보이던 인도 사람들. 홀리 축제용인 듯 페인트 통을 든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가운데 우린 드디어 델리행 기차를 탔다.

다음에...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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