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
혼자 집에 있던 나는 채소를 뜯으러 뒷뜰로 나갔다. 헌데 웬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물고 나타났다. 어미는
나를 보더니 새끼를 채소밭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새끼가 어딘지 이상해 보였다. 아픈 기색이 완연한 것 같기도 했다. 새끼는 기운이 없는지 제대로 몸도 못 가누더니 그 자리에 드러누워버렸다. 그러자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곁에 앉아 새끼를 핱아주었다. 그 때 어디선가 똥파리 한마리가 날아왔다. 한마리 또 한마리, 자꾸만 꼬여드는 똥파리들. 똥파리들은 새끼의 눈 주위로 몰려 들었다. 처음에 똥파리를 쫓는 듯 하던 어미는 지쳤는지 새끼 곁에 조용히 앉았다. 멀거니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고양이의 모습이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새끼에게 어서 빨리 건강하라고 간절히 비는 것 같기도 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어미는 새끼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줘야할지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안타까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망부석이 된 듯한 어미는 계속 새끼 곁을 지켰다. 이윽고 해가 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뒷뜰로 나가보니 새끼는 죽어 있었고, 어미는 돌부처 같이 그대로 밤이슬을 맞으며 새끼 곁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나는 어미에게 말했다. "안됐지만 새끼는 살릴 수 없어~ 보내야해~ 고양이야~ 나도 슬프지만 어쩔 수 없어~~"라고.
그리곤 조그만 종이 박스를 챙겨 다시 뒷뜰로 갔다. 그러자 어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새끼 곁에서 물러났다. 내가 박스에 새끼를 담아 자리를 뜨자 어미 고양이는 힘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이번에도 나는 백년도 더 넘은 고택 한옥의 뒷뜰 둔덕으로 갔다. 둔덕은 뒷뜰보다 2,3m 가량 높았다. 잡풀이 우거져 있는 곳도 있었고 밭으로 일궈진 곳도 있었다. 나는 풀 숲 양지 바른 곳에 새끼 고양이를 묻어 주었다. 검웅이가 묻힌 곳 근처였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라고 한다. 만물의 영장은 무슨 놈의 만물의 영장~ 택도 없다.
동,식물보다 못 할 때도 많다. 고양이는 태어나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나 아무 생각 없이 죽는다. 하지만 새끼를 낳으면 어미는 지극 정성을 다해 새끼를 기른다. 그리고 새끼가 장성하면 주저없이 새끼 곁을 떠난다. 새끼 역시 어미가 떠나면 저절로 홀로서기를 한다.
이번처럼 새끼가 아프면 사람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내가 조금만 철이 들었던들, 지금 같은 시대만 됐던들, 아기 고양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네 인간들은 그 어미 고양이 같은가? 자기가 낳은 아기를 굶겨 죽이고 학대해 죽이지 않던가~ 그런 걸
보면 인간은 그런 점에선 둥물보다 더 열등한 생명체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는 그 짧았던 하루의 사건으로 母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순수한 모정이야말로 어떤 생명체든지 간에 숭고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숭고(崇高)란 숭엄하고 고상하다는 뜻이다. 아픈 새끼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던 어미 고양이의 모정을 어찌 고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춥디 추운 겨울 찬물 속에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하는 인간 어미의 모정, 아이를 트렁크에 갇아 숨지게 하는 인간 어미의 모정, 때리고 굶기고 학대하는 인간 어미의 모정. 그런 인간 어미들의 모정보다 새끼의 죽음을 슬퍼하여, 밤 이슬 맞으며 차마 곁을 떠나지 못하던 어미 고양이의 모정이 얼마나 더 숭고하고 고상한가~
못 된 인간 어미들의 일을 보고 들을 때마다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인간의 참 된 본성(本性)을 잊고 사는 사람들. 내게 母情에 대해 다시 한번 반추하게 해주던 어미 고양이 사건 이후, 우리집엔 또 하나의 생명체가
합류했다.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