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뤄지던 교감
아침에 눈 뜨고 나오면 꼬리 흔들며 달려오던 검웅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은 지 100년도 훨씬 넘은 오래된 고택의 마당에서 주인 가족들이 나오기만을 늘 애타게 기다리던 귀여운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희미한 온기마저 사라져 버린 불쌍한 검웅이의 몸뚱이. 마침, 울딸 등교 안하는 일요일. 애틋한 마음, 불쌍한 마음, 이별의 슬픔 등등이 뒤얽혀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눈물부터 쏟아내던 우리 두 모녀. 딸래미의 왕방울 만한 눈에서 흐르는 눈물과 와이셔츠 단춧 구멍 같은 내 뱁새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홍수를 이뤘다. 눈 큰 울딸이나 눈 작은 나나 눈물샘은 컸던지 둘 다 눈물 께나 흘려댔다.
그리곤 오후, 우리 모녀는 집 뒤 둔덕 호젓한 양지 바른 곳에 검웅이를 묻어주었다. 다음 생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당부와 함께. 나는 그 때 생후 처음으로 동물과 교감 다운 교감을 나눴다. 동물과의 이별도 인간과의 이별 못지 않게 슬프다는 것을~ 동, 식물 할 것 없이 깽동깽동 움직이며 함께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는 부지불식 간에 생명체로서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진한 사랑이 꿈틀대 자란다는 것을~
어린 강아지와의 사별은 우리 마음에 동굴 입구 같은 시커먼 구멍을 뚫는다는 것을 체감해야 했다.
특히 나는 남편과 딸아이가 출근, 등교하고 없는 집에서 그 녀석과 더 오랜 시간 함께 했었다. 집 앞 공터에 동네 개들이 모여 놀 때면 나는 으례 먹을 것을 들고 나가 우리 검웅이에게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주었다. 혹여 다른 개가 우리 검웅이를 괴롭힐 적엔 나는 가차없이 그 상대놈을 혼내 주었다. 그러면서 검웅이의 특별성을 나의 애정으로 감싸며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어느 개보다 촉기도 있고 당당했다. 녀석은 우리집에 오자마자 얼마 안 돼 집 앞 푸세식 똥통에 빠진 적이 있었다. 마침 내가 부엌에서 일하다 발견, 놈을 건져내어 살린 적이 있는데 발효된 똥물을 먹어서인지 영리했다. (아항~ 발효 똥물을 먹으면 영리해지는구낭~ㅋㅋ)
그렇게 이쁜 녀석이 죽다니~ 울 엄마 가실 때 만큼이나 슬펐다. 이별은 늘 슬픈 법. 물론 기쁜 이별도 있겠지만~ 나쁜놈과의 이별~ㅎ. 희노애락의 교감이 많을수록 사별의 정은 더 슬펐다.
그렇게 슬퍼하는 우리 모녀를 위로해줄 겸 남편이 데려갔던 식당에서도 우린 둘 다 눈탱이가 붓도록 울었다. 세상만사 세월처럼 고약한 것도 없고 세월처럼 잘 듣는 약도 없다. 시간이 흐르며 검웅이는 서서히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