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렇게 알려졌다(라)

그렇게 알려졌다.

by 할매

결국은 사돈네 논 사면 배 아프다는 차원이었다. "너만 잘 났냐? 너만 잘났어?" 라는 시기와 질투가 불러 낸 참사였다. 텃세(Territoril) 문제도 결국 공론화 되었다.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그러면서 차츰 국지적으로 자정화(self cleaning) 됐다.

세월이 흐르며 재방 횟수도 차츰 줄어들었다. 그 사이 고명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간 강사 생활을 했다.

그리곤 고향이나 다름 없던 수도권으로 다시 올라 갔다. 나는 나대로 민박 활성화를 위해 면사무소도 그만 뒀다.

해가 몇번 바뀌며 민박 손님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우린 생활비와 여타 경비를 마련하느라 닭장을 팔았다.

작은 땅이라 몇푼 되지 않았다. 부족한 생활비는 그걸로 벌충됐다. 기르던 닭은 지인들에게 무료로 몇마리씩 나눠드렸다. 우린 살아야 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일,이십명의 회원들에게 농장에서 키운 각종 채소를 택배로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택배 사업이 거의 없을 때였다. 택배용 아이스박스도 드물던 때였다. 종이 박스에 채소를 보내야 했다(농산물 택배 사업의 효시가 아니었나 싶다).


1년이 다 될 무렵이었다. 고마움에 서비스 차원으로 한달간 무료로 농산물을 보냈다. 그러자 어떤 분에게서 이런 걸 보내냐고 항의 전화가 왔다. 농사 지어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농약을 하지 않고 키운 농산물은 벌레가 먹고 모양도 볼품 없다는 것을~ 그러자 산적(남편)은 그분에게서 받았던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 그 일도 접어버렸다.


우린 다시 먹고 살기 위해 얼굴 있는 순회 장터, 일명 '얼짱' 이라는 일을 시작했다. 미리 공지하고 농가(農家) 몇몇이 모여 각자의 집 마당에서 농산물이나 여타 물건들을 팔기로 했다. 하지만 반년도 못 돼 접어야 했다. 별 소득이 없어서. 플리마켓(flea market)의 효시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그 후, 크고 작은 규모의 플리마켓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이제 우린 농장에서 나오는 것들을 마음에 드는 마켓을 찾아가 팔기 시작했다. 대개 플리마켓들은 1주일에 한번 꼴로 열린다. 한번 가면 5만원도 벌고 10만원도 벌었다. 문제는 가을이 지나면 팔 게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 누군가 꽃차를 파는 걸 보았다. 우린 꽃차 만드는 법을 배웠다. 소상공인(과세 특례자) 등록도 했다. 그리고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꽃차 만드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꽃차는 비싸다. 사람들이 쉬 사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게 보리 강정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려움이 많았다. 꽃차보다도 더 어려웠다. 어느날 나는 나만의 기막힌 방법을 찾아 냈다. 칼로 써는 방법이 아니라 손으로 잘게 뭉치는 방법이었다. 강정은 갈 때마다 불티나게 팔렸다. 완판의 행진이었다.


당시 우리 차는 적재함이 있던 2인승 경차, '모닝'이었다. 꼬딱지만한 적재함에 가판대며 뭐며 실을려면 부피가 작아야 했다. 강정도 많이 싣지 못했다. 팔 만큼만 만들었다. 그래서 돈은 몇푼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린 그에 힘입어 유유자적 살았다. 민박도 폐업했다. 민박으로 활용했던 별채도 한 채 두 채 시차를 두고 팔았다. 부동산은 쉽게 팔리지 않는 거라서~


그러는 와중에도 방송 출연은 끝나지 않았다. 섭외는 잊힐 만 하면 들어왔다. ㅋBS, ㅇBC, ㅇBS, ㅇBS 등.

그럴 때마다 산적은 입장 표명을 분명히 했다. "우리가 사는 모습 그대로를 방영한다면 응하겠소.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라 하면 나는 안 나가겠소!" 실제로 몇 장면의 연출을 부탁했던 PD를 울린 적도 있다.


우리 모습은 말 그대로 촌놈, 촌년이 사는 모습이었다. 산골 흙집 낡은 오두막에서 아궁이에 군불 때고 사는 모습. 겨울이면 장작 패는 모습. 불꽃이 나풀대는 벌건 아궁이. 타오르는 불길 앞의 동그란 알루미늄 원탁 상. 그 위에 놓인 막걸리 사발 들었다 놨다 하며 홀짝이는 모습들. 농장에서 잡초와 씨름하며 일하는 모습들. 마당에선 강아지들이 꼼지락 대며 재롱 떠는 모습들. 애써 부화시킨 토종닭 병아리와 어미닭이 모이 쪼는 모습들. 발로 흙을 파헤쳐 지렁이 하나라도 나오면 어미가 병아리들을 구구구구~ 부르던 모습들.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사람 소리에 놀란 강아지들이 본채 옆에 마련된 취사 부엌으로 도망쳐 싱크대 밑에 숨던 모습, 모습들.

우리 부부 꾸밈없이 사는 모습들이었다.


강아지들은 복순이, 복실이, 복남이, 복길이... 등, 이름도 다양히 지어줬다. 산적은 강아지가 태어나 한두달 후면 어김없이 파보 바이러스(virus) 예방 주사를 손수 놓았다. 파보 바이러스는 어린 강아지들이 잘 걸리는 치사율(Fatality rate) 높은 병이다. 인천에서 강아지를 그렇게 잃어봐서 알게 된 병이었다. 똘똘해진 강아지들은 지인들에게 무료로 분양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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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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