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그렇게 알려졌다(마. 마지막)

그렇게 알려졌다

by 할매

마당이 있는 집으로 분양된 강아지들은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잘 자랐다.


한편, 섭외가 들어오면 사전 답사팀이 먼저 다녀 간다. 답사팀은 보통 두세명, 또는 서너명으로 이루어진다. 대개 작가와 PD가 다녀 간다. 인간극장 때는 감독님과 PD 각 한분이 왔었다. PD들은 촬영 내내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피사체(subject)를 촬영한다. 다큐(docu)를 선호하던 산적은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는 단호히 거절했었다. 촬영은 산적(남편)의 연출 긋기 선언대로 가감없이 진행되었다. 섭외도 꾸준히 들어왔다. 그리고 매년 한,두편씩 방영되었다.


한 해 두 해, 해가 바뀌며 10년이 넘었다. 그러고도 섭외는 이어졌다. 12년이 지난 어느날 부턴가 산적은 우리 그만 나가자며 거절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터지기 전 해가 마지막 촬영이었다.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 것이 올스톱 되었다. 섭외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곳은 무등산 산골이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수도권과 지방은 정서(情緖- 사물에 부딪쳐 일어나는 온갖 감정)가 다르다. 환경 자체가 다르다. 서울과 수도권은 콘크리트 정글이지만 지방은 녹색 정글이다. 핸드폰과 인터넷도 지금처럼 활성화 되기 전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도 달랐다. 인구수도 달랐다.

수도권은 정치와 경제에 민감하다. 정부 청사와 방송국, 굵직굵직한 대기업 본사, 각국 국내 주재 대사관 등이 많은 서울은 특히 더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 바로 알아차린다. 지방은 먼 거리에 비례해 뒤늦게 알아 챈다. 그런 점에선 서울도 마찬가지다. 지방의 일을 뒤늦게 알아 챈다(지금은 실시간으로 안다. 핸드폰으로).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인구도 적다. 더우기('더욱이' 가 아닌 '더우기'는 민중서림 엣센스 국어사전의 표기다. 이희승 박사가 감수한 1985년 개정판 사전에 이 표기가 나온다. 난 이 표기가 맞다고 본다), 이곳은 전국 최하위로 돈이 없는 곳이다. 경제적 취약 지대가 바로 이곳이다. 평야 지대도 많고 섬도 많은 이곳은 먹거리 만은 정말 풍부한 곳이다. 하지만 내 놓을 만한 큰 공장이 거의 없다. 수도권과의 거리상 물류 비용(logistics cost)이 많이 들다보니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지방은 수도권과 달리 사람에 관심이 많다. 정서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종종 터지던 본방과 재방 덕에 우리 부부는 부지불식 간에 지방의 유명 인사(Celeb)가 되어 있었다. 거리를 가다 보면 우릴 알아보고 인사들을 했다. 어떤 분은 산적을 알아보고 복권 사야 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2015년에 인도에 갔을 때도 여행 왔던 한국인이 우릴 알아 보았을 정도였다. 2025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알아 본다. "여전하시네요~" 라며.

결국, 시절 인연이 맞아 우린 세상에 알려졌고 코로나로 인해 잊혀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알려졌을까~ 표면상이야 글이 마중물 역할을 했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 또한 우연일까 필연일까~ 방송은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 주었을까~ 인간극장 촬영분들이 그랬었다. 부자 되시라고~

하지만 우린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극장이 우리에게 주었던 크나큰 자산(資産)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덕에 우린 무전여행을 원만히 마칠 수 있었다. 다종교(多宗敎) 국가라던 인도 여행도 한달 간 잘 했다. 태국, 라오스 동남아 여행 역시 한달 간 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하심(下心)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을 낮추는 마음. 낮출 줄 아는 마음.


나는 전생(前生)이라는 세계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전생은 분명히 있다. 중국의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이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특정인을 지칭하여 어떠어떠했노라고 전언(傳言)하지 않던가~

우리들은 엄마 뱃속에 열달 간 있다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엄마 뱃속에서의 일은 새까맣게 모른다. 그저 느낌과 감각으로 엄마의 존재를 알 뿐이다. 우리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산소 역시 그렇다. 평소에는 그 존재를 까맣게 모른다. 아니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산소가 부족해지면 그제서야 산소의 진가를 알게 된다. 그게 어떤 존재인지를~


인간만사 순우분의 고사(古事)처럼 남가일몽(南柯一夢)이다. 덧없는 한 때의 꿈일 뿐이다. 그 한 때의 꿈 속에서 우린 희,노,애,락을 겪으며 울고 웃는다. 그러면서 살아 낸다.

그대~ 지금 괴로운가? 너무 괴로워 말라~

그 또한 한 때의 괴로운 꿈이며 곧 지나갈지니...


*세월이 흘렀지만 이자리를 빌어 각 방송사의 프로 담당자분들과 PD님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가족, 저희 부부, 가감없이 반복되던 방송 덕에 참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저는 방송이 몰아다 준 수많은 사람들 덕에 보다 큰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연령대, 다양한 직업들, 다양한 시각들의 인파를 누볐습니다. 제 인생 길 앞에 놓여진 과제인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보다 깊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물론이려니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조각, 발에 채이는 돌부리 하나에도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음도 보았습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저희에게 베풀어 주던 것은 다름 아닌 애정과 사랑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서로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해와 달과 별과 지구와 은하수와 우주. 그 모든 것들은 결국 거대한 유기체(有期體)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네 인간들 단 한사람도 유기체적 존재 아닌 사람 없습니다. 관대할 땐 관대(寬大)해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 땐 베풀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곰팡이가 피면 균(菌)에 맞는 처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몸짓입니다.

어쩌면 저는 방송 덕에 막연하던 공부를 보다 더 밀도 있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공부는 제 인생길 위에 주어진 필수 과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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