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알려졌다
이번엔 집단 괴롭힘이 시작됐다. 사사건건 트집 잡았다. 손님들의 주차도 못하게 했다. 주차된 차에 긁힌 자국도 생겼다. 어르신들도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네놈 배때지를 칼로 쑤셔버린다고 윽박질렀다. 산적(남편)은 그자리에서 태연히 받아쳤다. "쑤셔버리쇼~" 라며. 마을 회관 회의에 나가면 산적 뒤에 앉아 쿡쿡 찔러대며 이사 가라고 협박했다(우리 부부, 2000년도에 그 마을로 들어갔었다).
지독한 텃세였다. 그렇게 몇 달을 버텼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산적은 어느날 구안와사(구안괘사 라고도 한다)에 걸려버렸다. 한쪽 입이 돌아가버렸다. 산적은 양방(洋方), 한방(漢方), 병원을 동시에 다녔다. 스스로도 노력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먹을 수 있는 풀들이란 풀들은 죄다 뜯어 왔다. 그리고 녹즙을 짜 먹기 시작했다. 녹즙 먹기 시작한지 이삼일이 되자 자기도 맡지 못할 정도의 지독스런 냄새와 시커먼 변이 나오더라 했다. 그러면서 나날이 변이 누르스름해지며 급기야 아기 똥 같이 노오란 색으로 변했다고 했다. 돌아가버렸던 입도 제자리를 찾아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하늘도 놀랐다. 불과 3개월 만에 돌아갔던 입을 되돌려 주었다.
나도 놀랐다. 산적의 지성(至誠)과 집념을...
한편, 텃세가 계속되자 우리 가족은 심각하게 회의를 했다. 고명딸(=외동딸)과 우리 부부 세명.
"계속 이렇겐 살 수 없다" "민박을 때려 치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정공법은 피를 부른다" "삼십육계 줄행랑은 묘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 튀자!!"
그렇게 해서 산적은 급히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웠다. 돈은 안 받을테니 우리가 없는 동안 우리집을 돌봐다오~ 민박 손님도 알아서 받고 밥도 알아서 챙겨 먹으시오~ 모든 건 자유요~ 희망자 있거들랑 나오시오~ 그랬더니 조폭 뺨치는 거대한 체구의 듬직한 청년과 오동통한 청년이 지원을 했다. 산적은 쾌히 승락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우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 두사람은 0.5톤 타우너 짐칸에 텐트를 싣고 여행 다니기 시작했다. 고명딸은 학교 다녀야 했으니까.
그 후, 별 수 있겠어?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기지 뭐~ 괴롭힐 상대가 있어야 말이지. 흐흐흐~
개울 복개 문제도 산적이 공론화(public debate)시켜버렸다. 군수님께 정중히 청정한 개울 사진을 들이밀며 군(郡) 홈페이지에 이런 아름다운 개울을 복개해서야 되겠소~ 우리 가족, 이 개울에 반해서 이사왔오~ 생각해 보시오~ 동복댐의 최상류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는 복개 반대요. 산적의 협박 아닌 협박에 군은 나가 떨어졌다. 개울 복개가 추진되지 않았다.
2005년에 복원된 서울 청계천의 영향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였다. 공론화 시켜버린 덕에 전국 각지에서 개울 복개 반대 붐이 일었다. 지자체 별로 개울 복개가 전면 중단되었다는 소리도 들렸다.
한편 우리가 텃세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여기저기 나돌았다. 일련의 사람들은 우리 처세 때문이라 했다. 아니었다. 할만큼 했었다. 어르신들 관광 가실 때마다 과일 박스 실어드렸다. 읍내 가실 일 있으면 태워다 드리고 태워 왔다. 도울 일 있으면 알아서 도와드렸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