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알려졌다
그 땐 본채 앞마루의 안방 문 옆에 지정된 로고, 민박집 이름과 전화번호가 기재된 표지판을 걸어두어야 했다. 직사각형으로 가로 세로 약 40, 30Cm 정도였다. 헌데 우리를 촬영하던 분들이 워낙 소규모(방 두개) 인데다 사심없이 사는 게 마음에 드셨는지 윗 선에 보고하여 노모자이크 처리를 해 주셨다.
시간 맞춰 TV를 보는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불과 1,2초 사이에 노출된 그 번호를 보고서. 전화를 받자 산적의 핸폰도 울렸다. 전화와 핸폰이 동시에 울리기도 했다. 우린 TV를 보다말고 전화 받기에 정신이 없었다. 다음날부터는 늘 열려져 있던 대문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전화 받고 막간을 이용해 사람들을 민박집으로, 농장으로, 닭장으로 안내했다.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먼저 도착한 손님들이 늦게 도착한 손님들을 우리 대신 여기저기 안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농장으로, 닭장으로, 개울 건너 민박집으로 한 채, 한 채 이어가며 인간띠를 형성하며 돌고 또 돌았다.
5부작이 끝났다. 그러나 우린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낮이고 밤이고 전화가 시도때도 없이 왔다. 20대부터 7,80대 까지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딸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프로였다. 작고 여린 가냘픈 몸집이었다. 아빠를 닮아 예쁜 얼굴이었다. 0.5톤 타우너로 잡은 닭을 배달하는 모습, 개조한 콤바인으로 닭장에 볏짚 옮기는 모습, 닭들에게 줄 풀 뽑는 모습, 우리 부부랑 농장 밭을 일구는 모습, 손수레에 퇴비 실어 밭에 뿌리는 모습, 사랑의 물레방앗간 짓는 모습 등등, 여러 모습들이 담겼다.
딸은 예쁘다. 0효진 닮았다는 소리가 들렸다. 딸을 보려고 청년들이 대거 몰려 왔다. 어떤 청년은 밤에 대문을 넘어 오기도 했다. 며느리 삼고 싶다는 분들의 발길도 잦았다. 심증만 있던 조폭들도 내방했다. 딸은 딸대로 학교 앞에 얼쩡거리며 대기하던 청년들을 마주쳐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컴퓨터 홈페이지가 '트래픽 초과(접속자가 일시에 몰려 접속 불가능 상태)'로 수시로 다운됐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썼던 글을 딸에게 읽어주던 짤막한, 두세 컷의 영향이었다. 지친 산적이 옆에서 낮잠자며 냅다 방구 뀌던 모습도 그대로 방영되었다. 소리까지 들리며.
웃음끼 많은 내가 신나게 웃어제끼는 모습도 그대로 방영되었다. TV에 우리가 나온다는 뒤늦은 전화가 빗발쳤다. 본방이 끝나고 재방이 되었다. 또 나온다는 전화가 왔다. 행복하시라는 전화도, 언제쯤 가겠다는 전화도 왔다. 내용도 가지각색이었다. 민박 예약은 풀로 찼다. 우리가 자던 안방도 손님 차지가 되었다. 우린 문간방으로 내몰렸다. 그마저도 부족하자 우리 부부는 농장에 손수 마련해 뒀던 캠핑카 구조의 부속물에서 자기도 했다. 손님들의 일정상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마당 가운데 텐트 치고 자기도 했다.
그 땐 민박집에서 손님들 식사를 허용하던 때였다. 부엌에선 쉴 새 없이 압력솥의 치익 칙칙 하는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밥도 압력솥에 해 먹던 시절이었다. 늘 그늘지던 창고의 한쪽, 흙바닥 속에 묻어두었던 김칫독의 묵은지는 날이 갈수록 닭 백숙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자는 시간 몇시간을 제외하곤 일의 늪에 빠졌다. 재방은 적당한 간격으로 계속 터졌다. 사람들도 계속 몰려왔다.
몇 달을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마을 어르신들의 자제분들이 들고 있어났다. 산적은 마을 유산각으로 불려 갔다. 십여명의 장정들이 둥그렇게 도열해 앉아 산적을 노려보며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마을을 소란스럽게 하느냐였다. 네가 뭔데 개울 복개를 반대하냐였다. 네가 뭔데 마을을 도둑놈 소굴로 만드냐였다.
우리집 앞엔 조그만 개울이 흐른다. 우리가 이사 갔을 때만 해도 개울에서 가재를 잡기도 했었다. 그 개울을 복개한다 했다. 산적은 반대했다. 청정 개울을 복개하면 쓰레기 투기가 심화될 것이다. 개울이 좋아서 이사 온 건데 시멘트로 덧칠해지는 것은 반대다. 나는 자타 공히 산적이다. 산적이 사는 곳을 산적소굴이라 하는 것도 문제냐~ 이름 때문에도 사람들이 더 쉽게 기억하고 우리 마을을 찾아온다. 더불어 이 고장이 많이 알려졌다.
내가 그러지 않았느냐~ 방 하나만 개조하여 민박을 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소개해 준다고~ 하지만 반대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더이상 말도 못하게 하고선 무조건 잘못했다 빌라고 했다. 말 그대로 인민재판이었다.
그 땐 우리 부부 둘이서 개울에 던져진 쓰레기를 종종 걷어 올려 치우곤 했었다. 산골 오지 중의 오지였던 마을은 집성촌이었다. 그 당시엔 마을로 들어오는 큰 도로가 없어서 저수지 뚝길로 차가 다녔었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큰길이 뚫렸다.
산적은 잘못을 빌라는 말에 No! 했다. 그러자,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