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後)
차가 준비 됐으니 어서 가시자고~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 나오자 승용차 한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고 보니 초등생 한명과 기사님 포함 6명.
빗줄기가 더 거세진 가운데 서서히 차가 이동했다.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다른 차량들은 헤드라이트 켜고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었다. 드디어 교차로 부근. 우리가 탄 차는 편도 3차선의 2차선에 신호 받아 정지했다.
우(右)측 차창 밖으로는 옆차로의 승용차 바퀴가 3분의 1쯤 물에 잠긴 상태로 신호 대기 중.
이윽고 교차로 좌(左)측 차량들이 조심스레 빠져나간 뒤, 신호 바뀌어 마주보던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용차 한두대가 지나가고 뒤따라 견인차가 승용차 한대를 끌고 좌회전하며 밀려 있던 차들에 막혀 몇미터
가지 못하고 서 버렸다. 그걸 보던 동승자 한분. "우리 아들 견인차 같은데 번호판이 안보여 잘 모르겠네~"
하셨다. 몇 분 뒤 우리 차도 신호 받아 서서히 이동. 고개를 우측으로 완전히 젖혀 멈춰 서 있던 견인차를 바라보던 동승자. "맞네! 우리 아들 차네~~"라며 걱정 어린 말을 하셨다.
몇 분 지나지 않은 뒤 우린 목적지에 다다랐다. 기사분 말씀. "잠시만요 안전한 곳에 내려드릴께요~" 내려보니, 건너편 도로 위를 거센 물줄기가 콸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발만 적셔질 정도. 집 도착 전 산적, "어이~ 집에 가면 베란다에 나가지 마! 누전 차단기 내리고 확인할테니까!"
드뎌 집 도착. 산적의 놀이터인 베란다엔 납땜기며 여러가지 전기 공구들이 창문 바로 옆에 있었다. 멀티탭은 물론이고~ 응접실 문 너머로 베란다를 보니 바닥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그래도 예상 보다는 덜 들이쳤다.
다행이다. 하지만 콘센트는 이미 물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 자칫 잘못 하다간 감전 위험이 있던 터.
우선 실내 에어컨부터 끄고 완전히 꺼지자 베란다 멀티탭 코드를 뺐다. 물기 닦고 조심스레 살핀 뒤 이상 없음이 확인 됐다. TV를 켜니 각 시(市), 군(郡)이 물에 잠기고 쓸려가고 생난리였다. 베란다 너머의 하천 역시
거센 탁류가 거칠게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애타게 TV 화면을 응시했다. 눈길 끄는 한 장면. 맨홀에 빠져 있던 어느 할아버지. 상체만 겨우 맨홀 위로 드러나 있던 상황. 사람인지 물인지 구별이 안되는 상태. 물살이 드세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듯 했다. 그걸 발견한 어떤 남자분. 홀로 드센 물살을 헤치고 조심조심 다가가 할아버지를 빼려는데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손에 손 잡고 인간띠 형성. 맨 가장자리 사람은 도로변 철책을 붙잡고 나머지 사람들을 잡아주었다. 그래도 난항을 겪자 승용차 한대가 맨홀 윗쪽을 가로로 주차. 장정 여러명이 승용차를 떠받치며 물길을 막아주자 할아버지를 꺼내려던 두세명이 드디어
구출 성공. 아슬아슬하게 할아버지는 장정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이번 수해(금년 7월)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말 그대로 휴먼 스토리였다. 한명의
사람을 살리려는 인간 동료들의 진정한 인간애. 나는 감동했다. 눈물이 비칠 정도로.
(이번 7월 수해 피해자분들 죄송합니다. 저희만 안전해서요. 어서 빨리 수마의 피해를 극복해 내시길 바랍니다. 이 글(그날 前, 後)이 올라가는 시점엔 복구도 어느 정도 되셨을테지만요~
헌데 공교롭게도 이 글 올라가는 시점(9월 5,9일)에 군산은 물폭탄을 맞아 많이 잠겼다네요.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글은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좋은 례(例)의 글이다. 사실, 재가 복지 노인 요양보호사에 관한 글을 쓰려다가 홍수를 만난 일이 더 커서 그 부분이 너무 커져버렸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노인에 대해 알게 됐던 점들을 써 보련다.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나이 든 사람의 일반적 호칭은 '노인'이다.
노인의 부정적 의미를 줄이기 위해 '노년' 이라고 한다.
중립적 의미로 사회 복지 실천 현장에서는 '어르신' 이라고 한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늙은 사람, older person. 나이 든 사람, aged.
연장자, elderly. 선배 시민, senior citizen. 황금 연령, golden.
프랑스에서는 '제 3세대'라 한단다. 중국에서는 60대 - 長年. 70대 - 존년(尊年)
일본에서는 실버(silver), 또는 노년 이라 한다.
우리네 인간들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게 된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죽는 사람도 있지만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 현실이다. 우리 부부, 노년이 되고 보니 죽음을 생각 안할 수가 없다. 누가 먼저 쓰러질지도 알 수 없는 일. 그렇다면 집에서 서로를 돌보기 위해 일주일이라도 젊을 때 교육을 받기로 했다. 겨우
이틀 받았는데 객관적으로 노인을 바라보게 되었다.
노인은 신체, 정신, 사회적으로 퇴화, 상실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과정에 있는 노인이지만 늘어나는 경직성을 지연시키기 위해 열심히 브런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브런치의 젊은 분들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고 산다. 젊은 분들은 내게 있어 한결 같이 좋은 스승님들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배울 점이 많다. 그래서 참으로 행복하기도 하다.
지금쯤 산적(남편)은 열심히 수강 중일 것이다. 나는 다음 회기로 미뤄진 상태. 정원이 다 차 버려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7월23일이다. 9월 초까지 시간적 여유가 생긴 셈. 브런치에 올릴 글들을 미리 써 둬야 한다. 동태눈으로 글 쓰는 일이 쉽지 않은데도 늘 애쓴다. 산적은 이제 오늘의 마지막 강의를 듣고 있을 터.
1시간 후면 귀가할 그를 위해 뭐라도 요리해야겠다. 말로만~ ㅎㅎㅎ
아프리카 속담 하나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짐과 같다'
물론 현실에선 개차반 같은 노인도 많다. 하지만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묵묵히 걸어오며 지혜가 쌓인 노인은 더 많다. 나는 특히 우리 산적(남편)이 죽으면 도서관 2개가 사라짐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다양한 경험과 깊은 지식이 있는 산적이다.
영원히 바위 같을 줄 알았던 산적도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