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과 오는 길
아침 5시 반에 깬 우리 둘. 조반, 화장실, 외출 채비 다 마치고 길을 나섰다. 어제 쏟아지던 폭우는 밤새 그쳐 시골 새색시 마냥 유순해져 있었다. 쨍쨍한 햇살은 포부도 당당히 온 산야를 달굴 기세로 벌써부터 춤추고 있었다. 교육 받기 위해 시골지역 버스구간 서너개 가량의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가야할 예정.
"그냥 걸어가세~" 산적의 말에, "응" 이라는 말도 생략한 채 걷기 시작했다. 아침 8시 반을 넘긴 시각. 어제 온 비로 습도가 높은 상태. 하늘엔 몇 조각 구름만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따갑게 내리쏘는 햇빛. 챙모자를 쓰긴 했는데 뜨겁다. 다행인 건 햇살을 등진다는 점.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쏟아지는 땀방울.
폭우 속에 어제 저녁 지나왔던 교차로를 건넜다. 도로가엔 보도 블럭이 솓구쳐 나뒹굴고 어느 구간은 둥그레한 모양으로 블록과 흙이 동시에 들떠 있는 곳도 있었다. 오른편 4,5미터 높이의 경사지가 이어져 있던 곳엔 흘러내린 나뭇가지와 검불뎅이들이 도로가에 연이어 뒹굴대고 있었다. 어제 저녁 때의 심각했던 상황을 반증이라도 하듯~ 걸어가는 내내 버스 한대도 지나가지 않던 길. 버스가 그만큼 드문 구간. 드디어 목적지 도착. 산적의 핸폰에 찍힌 발자국 수, 2,700보. 소요 시간 30분. 2Km 약간 못되는 구간이었다.
곧 이어 수업 시작. 출석 체크부터 했다.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강사님이 수강자의 얼굴을 익히는 타임.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투명인간인데요~" 하자 강사님이 어리둥절~ 여차저차해서 나는 정원 밖의 잉여 인간, 대기자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늘 붙어다니던 탓에 함께 있게 됐던 것. 어차피 나는 뒤로 밀려나 다음 회차에 다시 수강 받고 시험 치러야 한다.
이내 시작된 수업. 나는 고민했다. 피곤해 죽을 지경. 그보다도 더 한 것은 수강자도 아닌 것이 점심을 축내야 한다는 점. "어이~ 나 그냥 집에 갈라네~ 밥 얻어 먹기가 좀 그래서~" 앞에 앉았던 산적, "그래? 갈라면 가~ 근데 어치피 집에 가도 밥 먹잖아 그냥 먹고 가~" "그래?" 잠시 고민하다 그러기로 했다.
쉬는 시간 후 다시 재개된 수업. 재미있었다. 아니, 활기가 느껴졌다. 다 늙은 내가 수강하고 있다는 사실에. 늘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던 나. 하다못해 무생물에게서도 곧잘 배우곤 했었다. 내겐 그 모든 게 스승이었으니까. 하지만 얄궂게도 산적(남편)과 헤어져 공부해야 한다는 점. 하지만 어쩌랴~ 규정상 그렇다는데~ 정원이 한정돼 있다는 데~
어쨌거나, 중식 후 잡담 시간.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웃고 떠들어댔다. 우린 둘 다 잭상에 엎드려 취침 모드. 피곤해서. 결국 나는 점심 먹고 귀가하려던 마음을 접고 오후 강의까지 다 받고 귀가 하기로 했다. 오후 강의 시작. 서,너시 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5시 가까이 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래도 어제보단 약했다.
5시경 수업 끝. 청소 끝. 헤어질 시간. 빗줄기는 약간 거세진 상황. 어제 우릴 데리러 왔던 직원이 우리에게 태워다 주겠노라 했다. 사양하고 우산 받쳐들고 걷기 시작했다.
보행자가 거의 없는 구간. 도중에 생뚱맞은 식자재마트가 보였다. 규모가 괘 컸다. 들어가보니 천정이 홀처럼 높은 마트. 매장 직원 몇명만 있을 뿐 손님 한명 없었다. 이런 한적한 곳에 생겨야 할 이유가 없던 마트. 지역적 특성과 미래를 봐도 내 눈엔 쓸모없어 보였다. 매장을 돌고 돌아 산적이 먹을 우유와 무설탕 캔디만을 사들고 나왔다.
다시 걷기모드. 내리는 비에 무릎 아래까지 다 젖은 바짓가랑이, 무겁다.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려 피로감이 엄습한다. 일찍 저녁 먹고 잘 요량으로 저녁상 차림. TV를 켜니 이곳저곳 물난리가 장난 아니다. 넘고, 잠기고, 휩쓸리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죽고, 다치고... 이번(2025.7월) 비로 폐사한 가축만도 약 6만마리 정도란다. 가축 피해도, 인명 피해도, 정확한 피해 규모가 아직 집계되지 않은 상황. 그렇게 맹위를 떨치던 폭우도 하루 이틀 사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오고 감. 왕래(往來), 生과 死. 인간이 이 세상에 오는 데는 순서가 있다. 하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가는 사람도 있고 1세기(100년)를 넘기고서야 가는 사람도 있다. 그 살아내는 세월 동안 인간은 참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는다. 이번 비처럼 물폭탄을 직접 맞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한다. 예보가 있어도
어쩌지 못하는 자연 재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재해. 그 재해 앞에 우리네 인간들은 그저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래도 또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가 있는 인간들.
주먹만한 우박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을 어찌 막겠나마는 사람들의 앞길이 보다 더 평탄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나 혼자 피해 없음에 안도하지 않고 그 누구라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빌었던 시인의 마음이 되어...